오늘은 치킨 시켜 먹자

by 최열음

일주일에 한 번, 우리는 레드소스를 추가한 교촌 허니콤보를 주문한다. 느끼한 건 못 참는 매콤 인간인 나와, 달달한 치킨이 좋은 아빠의 절충안이다. 그건 일종의 해방이기도 하다. 보통 치킨을 먹자고 제안하는 건 아빠 쪽인데, 아빠가 봐도 집에 먹을 게 없다 싶으면 차려 먹기를 포기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우리가 치킨이 먹고 싶은 것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아빠와 나는 냉장고 속 식재료에 대한, 또는 먹다 남은 음식에 대한 해석이 다른 듯하다. 한 번은 꽉 찬 냉동실을 보던 아빠가 먹을 건 하나도 없는데 이렇게 꽉 차 있냐며, 냉장고 정리의 필요성을 논한 적이 있다. 아빠는 정리하자는 말을 하고 싶었겠지만, 나는 아빠가 그 모든 재료들을 음식 재료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니 매번 차려진 음식을 먹는 사람이 요리에 있어서 얼마나 창의성과 상상력이 부족한지 알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냉장고에 두부와 고춧가루, 간장이 있고 냉동실에 파와 다진 마늘이 있다면 나는 두부조림을 만들겠다고 생각할 거다. 아니면 돼지고기를 한 주먹 사 와서 김치찌개를 끓인다거나. 아빠는 아마 냉장고 문을 열자마자 닫아버릴 테다. 내가 집에서 차려진 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은 배달음식이 왔을 때, 그리고 음식을 포장해 왔을 때다. 우리 집에선 누구도 나를 위해 요리한 적 없다는 게 참 슬픈 일이다.

사실 치킨을 받아 들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지금이야 콤보 덕분에 먹고 싶은 부위를 마음껏 먹을 수 있지만, 자연의 섭리 그대로 닭다리가 두 개밖에 없을 때는 아빠와 동생이 하나씩 차지하곤 했다. 아빠가 먼저 하나를 집고, 하나는 내가 동생에게 양보했던 것 같다. 애초에 양보하지 말았어야 하나 싶지만, 처음에는 그게 미덕이라고 생각했고 지금은 당연시되었다. 나는 주로 날개나 허벅지살을 공략했는데, 그래서인지 모두 내가 다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콤보를 시켜 먹는 지금은 닭다리가 아주 맛있다.


동생이 함께 있으면 한 끼에 치킨 한 마리도 부족할 때가 있다. 하지만 동생이 없는 지금, 꽤나 소식가인 나와 아빠에게 치킨 한 마리는 두 끼 식사도 가능한 메뉴다. 작년 이 맘 때쯤 다이어트를 한 이후 햇반의 절반만으로도 충분해졌고, 아빠는 건강을 생각해 소식을 지향하는 편이므로. 치킨 한 마리가 우리의 한 끼 내지 두 끼 식사를 해결해 주는 셈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할머니 입맛의 호박잎 쌈이나 콩국수 같은 구수한 음식들을 찾게 되었다. 아직 스물 넷인데, 벌써 아빠와 입맛이 맞는 게 조금 신기할 뿐이다. 고기에 대한 소화력이 많이 떨어진 아빠는 채소나 생선 같은 걸 더 많이 찾는 편이다. 돈까스보다 생선까스를 먹는 사람이 되었다. 같이 샐러드를 시켜 먹어도 될 만큼 프레시한 식단이 가능하다는 게 오히려 감사하기도 하다. 그런 우리에게 치킨은 대중성의 극대화로부터 타협한 편의랄까.


예전엔 우리의 해방구가 치킨보다 삼겹살, 목살, 가끔은 항정살이었다. 정확히는 구워 먹는 고기. 주말이면 집에서 빈둥대는 나와 동생을 위해 아빠가 고기를 구워줬다. 아마도 아빠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요리였던 것 같다. 집에서 구워 먹는 고기가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안다. 게다가 고기가 다 구워지면 우리는 바로 먹을 테지만 아빠는 프라이팬을 먼저 닦을 것이다. 그런 날엔 어른 존재가 주는 안정감 속에 밥을 먹었다.


하지만 반전은, 밖에 나가서 고기를 구워 먹을 땐 아빠가 집게를 들지 않는다는 거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은 아빠도 많이 귀찮아졌는지, 자기는 친구들이랑 고깃집에 가도 친구들이 다 구워준다며, 집에서 자기가 고생한다는 걸 친구들이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빠가 집에서 고기를 몇 년이나 구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자기의 손을 떠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도 내가 뒤늦은 사춘기를 겪고 아빠와의 관계를 논하는 데 있어서 치킨이 완충제가 된 것은 확실하다.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저녁을 먹는 날도 있어야 하니까. 친구들과 밥을 먹고도 집에 오자마자 아빠의 저녁을 확인하는 나의 본능이 조금은 위로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성공적인 밥상을 차려내지 않아도, 저녁을 완성시키는 것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진 출처: KFC China 2018 Christmas campa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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