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화내지 말고 들어봐

by 최열음

2015년의 한 계절, 나는 불현듯 글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정확히는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겠다는 꿈이다. 당시엔 예술인으로서의 불확실한 미래보다 당장 아빠의 허락을 구하는 게 더 걱정이었다.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예술가가 되겠다는 건 투쟁이니까. 온 가족이 똥고집인 우리 집에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사실 아빠보다는 엄마가 나를 이해하기 수월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문학가였고… 충만한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피아노를 치거나 시를 쓰겠다고 할 때도 엄마는 조용했다. 현실적으로 안 될 거라고 퇴짜를 놓는 사람은 아빠 쪽이었다. 설계를 하는 사람이니만큼 탄탄한 토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러니까 탄탄한 토대라면… 부정할 수 없는 재능 같은 것?


그러니 글을 쓰겠다는 건, 어쩌면 인생을 걸고 무의미할 지도 모를 고생을 하겠다는 폭탄선언인 것이다. 아빠는 당연히 노발대발했다. 소리를 질렀으면 차라리 대들기 편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화를 삭이며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세상 물정도 모르는 딸이, 안 그래도 돈 벌기 어려운 세상에서 글을 팔겠다고 했으니까. 나는 답답한 사람이 되기는 싫었고… 그러나 보여줄 건 없었기 때문에 눈물만 났다. 초딩 때부터 꾸준히 타왔던 글짓기 상으로는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내가 첫 알바를 마치고 다리가 아프다며 찡찡거렸을 때도, 괜찮냐는 말보단 남의 돈 벌어먹기가 제일 어려운 거라는 말을 해주었다. 실제로 아빠에게는 그런 세상이었을 거다. 돈이란 게 너무 치사하고 쪼잔해서 남의 걸 조금씩 캐내오는 심정으로 살았을 거다. 그러니 아빠가 그런 푸념을 할 때마다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치사한 자본주의 속에서 열심히 발을 굴러가며 나와 동생을 치켜들었을 테니까.


나도 내 생각을 꺾을 마음이 없었고, 아빠도 처음엔 그랬다. 나는 아빠에게 말을 걸려면 눈물을 장전해야 했고, 말문을 열자마자 폭포수처럼 흘러나오게 내버려 두었다. 한 번은 할머니집에 가던 중에 입시 전쟁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지친 마음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글을 쓰겠다는 내 말이 끝날 때마다 공무원 소리가 달라붙는 걸 듣다 못해, 싫다고 냅다 소리를 질러버렸다. 아빠는 그 얘기가 아니지 않냐며 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 얘기 맞잖아…


결국 우리는 차를 돌려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할머니댁에 가기 싫었던 아빠의 핑계인 것도 같지만, 어설픈 변명으로 할머니에게 양해를 구하는 건 어차피 나였다. 아빠의 두통이 너무 심해서 차를 돌려야겠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아빠는 내게 평범해질 것을 요구했으나 나는 비범해지고 싶었다. 그가 말하는 평범함은 적당히 벌고 적당히 먹고 적당히 사는 것. 나는 나의 창조성이 외면당하지 않기를 바랐다. 엄청나진 않아도 적당한 대우를 받게 해주고 싶었다.


아무리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다지만, 독서광인 엄마의 영향만이 나를 이렇게 만들 수는 없을 거였다. 분명 내게는 남들에게 없는 재능이 있는 거라고 믿었다. 직접적이진 않지만 내가 살아온 삶이 나를 쓰게 만들었다는 건 확실하다. 그렇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속설이 우리에게도 적용되어 아빠는 백기를 들었고, 믿고 맡기는 심정으로 내 위태로운 미래를 용인해 주었다. 월 4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네이트온으로 습작 과외를 받기 시작했고, 입시를 위한 시를 생산하게 됐다.


그러다 입시 지원서를 넣기 직전에 문예창작과를 포기했지만 말이다. 아마도 아빠에게는 큰 파괴였을 거다. 그 아까운 돈을 땅에 버렸다고 생각했을 테다. 나야 지금을 이루는 자양분이 되었다는 합리화를 할 수 있지만, 그건 내가 남의 돈을 벌어서 남에게 투자해 본 적이 없어서 할 수 있는 편한 소리겠다. 그는 내게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주었고, 매월 그 돈을 입금하며 조금의 희망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 돈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 크게 성공할 거라는 막연하지만 달콤한 그런 꿈 말이다.


사춘기도 거의 없었던 내가 아빠와 싸움 비슷한 걸 해볼 수 있었던 것도 다 입시 때문이었다. 그렇게 진지하고 중요한 문제만이 우리를 다투게 한다. 나는 아빠가 바라는 것보다 큰 야망을 품었고, 아빠에겐 모두 벅찼을 테니까. 지금도 준비된 폭탄들이 있는데, 언제 어떻게 터뜨려야 할지를 고민 중이다. 이러니 부모가 되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일생에 비밀이 가득한 나 같은 딸을 키우면 관심법이라도 쓰고 싶을 테니.


나는 아빠에게 화도 한번 못 내지만, 눈물을 질질 흘리면서도 야망을 끼워 넣는 투쟁가의 기질을 가졌다. 은근하게 애교를 부리는 유연한 마음은 내 것이 아니었고... 곧 전역할 남동생도 미술 쪽을 생각하던데, 두 번째 전쟁이 시작되는 건가 두렵기도 하다. 우리 남매의 예술 유전자는 어디로부터 온 걸까. 그냥 동생에게는 아빠가 화를 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열망이 분노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니까.


그럴 때마다 우리 집에 어른이 두 명이기를 바란다. 한 명이 화를 내더라도 다른 한 명이 그 불길을 걷잡아주면 좋을 테니. 하지만 나와 동생에겐 아빠의 입김이 전부였고, 그가 화를 내면 그건 화낼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이번엔 내가 동생을 지지하는 편에 서야 할 테다. 나를 거쳐 한번이라도 완충 작용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쩌면 내게는 없었던, 그나마 어른에 가까운 방패막이 되어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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