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 같은 남자 안 만날래

by 최열음

내 남자친구는 전라도 출신이다. 아무래도 우리의 출신이 우리의 토대를 구성하는 건 확실하다. 살아온 곳에 따라 마음의 크기, 모양, 형태도 가지각색인 듯하다. 내가 경험하기로 전라도는 화끈한 면이 좀 있다. 꽤나 직설적이며 화악 불타오르는 사람들인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을 아껴두지 않는다. 전라도 음식이 유명한 이유도 양념 맛이 진해서라고 하던데, 같은 맥락이지 싶다.


여자친구인 나는 충청도 출신이다. 엄마와 아빠, 양쪽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두 충청인이다. 우리는 뼛속까지 야들야들해서 하고 싶은 말을 빙빙 돌린다. 누군가의 뼈를 때리기도 무섭고 뼈를 맞기도 겁나서 그런 것 같다. 그니까 하고 싶은 말이 차올라도 숨겨두는 편이다. 꽤나 조용하고 잔잔한 동네다. 그래서 정치색도 명확하지 않은 곳이다. 투표 결과를 알고 싶으면 충청도의 민심을 살피라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연애 초반에 서로의 표현 방법에 적응하느라 애를 썼다. 나는 말없이 티 나게 삐치는 사람이었고, 남자친구는 필터링 없이 날 것을 말하는 사람이었다. 연애는 끊임없이 서로를 알아가고, 맞춰가는 과정이라는 것이 우리를 통해 증명되었다. 내가 배운 충청도식 화법이 연애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우리 집은 상처를 뒤집어엎지 않고 조용히, 무던하게 평범해지기를 원하는 집이었으니까…


남자친구를 교회 오빠로 만났고, 처음에는 친분이 없었지만 썸을 타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썸을 타게 된 계기는 그가 내 꿈에 나왔기 때문이었는데, 안중에도 없던 그가 꿈에 나온 뒤로는 자꾸만 신경 쓰이기 시작한 거였다. 왠지 신비롭고 깨끗하고 자상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실제로 그는 다정했고 나를 나라는 존재로 대해주었으며 격려의 말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관계보다 다른 사람들의 말이 더 신경 쓰일 때도 있었다. 이를 테면 ‘딸은 아빠 같은 사람 안 만난다고 말해도, 결국 아빠랑 똑같은 사람 만난다더라’ 하는 식의 무례한 일반화들. 대체로 사실이겠지만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말들. 그래서 나는 오빠에게서 아빠의 모습이 보이면 난리를 떨었다. 예를 들면 오빠집에서 오빠가 먹은 컵들을 내가 설거지하고, 오빠는 그 사실을 모르는 경우. 또는 오빠가 나를 밥 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될 경우.


처음에는 그를 집안일의 외부에 두기 싫어서 밥도 덜 해주려 하고, 오빠집 살림과 관련된 일에서 아예 손을 떼려고 했다. 아무리 자주 드나들어도 내 집은 아니라고 말했다. 실은 마음껏 퍼주고 싶었는데 나나 그에게 익숙해질까 두려워서 피했다. 그러나 경계할수록 나는 작은 일에도 오빠와 아빠를 겹쳐 봐야 했고, 그건 꽤나 고달픈 일이었다. 오빠는 영문도 모른 채 아빠를 미워하는 내 마음까지 짐작해야 했다. 결국 이건 내 문제지 오빠의 문제일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나의 이런 경계심을 알고 있는 오빠는 최대한 내가 까무러치지 않도록 애써주었다. 나를 위해 밥을 해준다던지, 같이 먹은 음식의 설거지로부터 제외시켜 준다던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사실 그는 혼돈 속의 질서 스타일에 가까워서 태어난 김에 사는 느낌으로 집을 꾸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 나와 다른 부분이니 적절한 타협이 필요한 거다. 그래도 집안일을 맡는 데 예민한 나를 알고 아는 대로 행동해 주는 오빠 덕에, 나도 베풀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내게 아빠 같은 사람이라는 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는 요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고 다음으로는 무뚝뚝한 사람이다. 평생 자기 아빠 같은 남자와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고 있으므로 딸들이 진저리를 치는 거다. 태어나서 20년간 보았던 아빠와, 20년 이후로 보는 아빠는 또 다른 사람이다. 사실 아빠는 같은 사람인데 내가 자란 걸 테다. 우리 아빠는 실제로 말이 적고 표현은 더 적은 사람이므로, 좋든 싫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을 짐작만 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쿨하게 잊어버리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말을 하지 않으니 마음에 품어두고 생각하는 쪽이다. 나의 잦은 외박으로 인해 화가 났을 때도, 아빠가 아닌 동생에게 그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 아빠의 친구가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을 때도, 공황장애를 앓을 만큼 충격을 받았지만 일언반구도 없었던 돌 같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와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는 내가, 아무것도 몰랐다는 게 이제와 미안할 뿐이다.


그에 비하면 오빠는 무뚝뚝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길을 걷는 사람이다. 그게 내가 오빠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빠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춤을 추고 노래하는 사람이며, 내 앞에서 랩을 하다가도 무자비한 뽀뽀 공격을 하는 사람이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정확하게 말하는 사람인 데다가 쉬고 싶을 땐 오늘은 쉬자고 말할 용기도 있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덕분에 나도 쉬고 싶을 땐 쉬자고 편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 확실한 건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지만, 어차피 만날 수도 없을 거라는 거다. 내가 아빠를 대놓고 미워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나를 변함없이 사랑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리 잘못된 선택을 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무뚝뚝하지만 언제나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아빠를 잔뜩 미워하다가 잠깐은 사랑하다가, 잔뜩 긴장했다가 잠깐씩 풀어진다. 나는 그의 세상 속에 살지만 그를 내 세상으로 불러들이는 일은 달랐다. 그래서 나만 아빠를 사랑하게 되면 우리의 문제가 반쯤은 해결될지도 모른다. 아빠는 나를 그대로 사랑하는 대신, 방식을 바꾸기만 하면 되니까.


결국 내가 사랑해야 할 두 남자는 각자의 세상을 뛰어넘고 만나야 할 사람들일 뿐이다. 아빠 같은 남자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려고 목을 매고만 있다면, 그건 이미 오빠와의 만남이 아닐 테니까.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운동과 집을 좋아하고, 고기는 더 좋아하며, 흥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만 안다. 그의 세상에만 머물러도 평생을 알아갈 것 투성이일 거다. 그러니 그 세상 속에서만 살고 싶다. 그가 나를 나라는 존재로만 사랑해 줬던 것처럼, 그를 유일하고 독보적인 존재로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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