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안부를 묻는 일, 하루 동안의 평범하고도 특별했던 일들을 듣는 것. 언제부터 그런 걸 묻지 않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가끔은 평범한 것이 가장 특별해 보일 때가 있다. 다른 집에서는 그냥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 집에서는 기적처럼 느껴지곤 한다. 매번 정갈하게 차려진 끼니를 먹는다든지, 가족끼리 하루의 일과를 나눈다든지 그런 것들. 계절마다 여행을 가는 것도.
가족의 의미가 많이 축소되면서 간편한 쪽을 택하는 집들이 많아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간편함 속에서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진리다. 아빠가 보낸 대학에서 내가 무얼 하며 사는지, 요즘은 무슨 생각을 하며,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친구들과 만나면 항상 나누는 내용이지만 아빠에게는 가볍게 던질 수 없는 것들이다.
이제 대학의 막학기를 앞두고 있는 나로서는 앞으로의 진로나 취직이나, 글쓰기의 생업화 같은 것들이 가장 큰 고민이다. 하물며 출판사 취직도 안 된다고 반대하는 아빠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겠지만. 그래서 더더욱 이런 얘기를 꺼낼 수 없는지도 모른다. 말을 꺼내자마자 험악한 얼굴을 하리란 걸 알고 있으므로.
내년에 졸업을 하면 길게 여행을 하고 싶다거나, 그러면서 글을 쓰고 싶다거나 하는 중대한 사안들. 아빠의 컨펌을 거치지 않을 수 없지만 이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스타벅스에서 알바까지 하고 있으니, 판은 다 벌려놓은 셈이다. 그리고는 아빠의 허락을 구하는 시스템이다. 한 번도 집을 나가 살아본 적이 없는 내가 첫 자취를 유럽에서 한다면 아빠는 아마 까무러칠 테니, 적당한 때를 노렸다. 동생이 휴가를 나온 지금, 입을 열 수 있는 적절한 타이밍이 온다면.
아빠에게 돌아온 답은 ‘만약 친구와 함께 간다면 ok’. 조건이 붙었지만 꽤나 호의적인 대답이었다. 이 정도면 선방한 셈이다. 실은 나도 겁이 많은 사람인지라 혼자 가기는 두려웠다. 아빠와 더 가까운 딸이 되기 위해, 아빠가 궁금해할 나의 미래를 공유하고 싶었다. 그리고 윤곽을 잡아가는 중인 나의 계획들도. 아빠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안부를 묻고 답하는 일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같은 지붕 아래서 서로가 무얼 하며 사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니까. 내가 즐겨 보는 미드 중에 ‘모던패밀리’가 있다. 거기엔 자식들의 건강과 행복에 미쳐 있는 아빠와 엄마가 있고, 그들을 귀찮아하면서도 사랑하는 자식들이 있다. 주는 사랑을 받기만 하면 되는 것, 그리고 자연스레 그 사랑을 돌려주게 되는 것. 이 드라마를 숱하게 보면서 그런 이상적인 가족을, 정확히는 그런 아빠의 모습을 부러워하게 됐다.
나는 아빠와 수직적인 관계다. 분명 아빠와 딸이지만,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사랑이 아닌 아래서부터 위로 솟구치는 사랑 같다. 아빠가 주니까 덥석 받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챙겨주는 그런 사랑. 그게 귀찮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그릇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내가 그런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서 이런 일이 생겼으려니. 그러니 드라마 속의 이상적인 가족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이상적인 형태를 만드는 편이 빠를 것 같다.
한 번은 아빠가 고민을 얘기한 적이 있다. 두 이야기 모두 내게 너무 충격적인 것들이라 소화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나는 아빠와 같은 사무실을 쓰는 고모부가 아빠에게 은근히 갑질을 한다는 내용이었고, 다른 하나는 멀지 않은 과거에 아빠가 공황장애를 앓았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당사자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봐야겠지만 고모부가 자기 아내의 오빠에게 어떤 식으로든 갑질을 한다는 게 너무 괘씸했고, 둘째는 가까운 분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신 후에 아파했던 아빠를 눈치채지 못한 내가 괘씸했다.
두 이야기 모두 내가 아빠에게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였다. 부엌에서 물을 마시다가 그런 얘기를 하는 아빠의 얼굴을 보니, 누가 봐도 수척하고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보이지 않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아빠는 아빠의 이야기를 하는 것. 묻지 않아도 그런 선순환이 일어나면 좋을 테지만, 우리는 그런 가족이 되지 못했다.
한편 나는 최근에 외로움에서 비롯한 우울감을 느꼈던 적이 있다. 평소와 달리 혼자 집에 있는 게 기쁘지 않고, 밤이 가까이 올수록 고달파졌다. 아빠가 골프 모임에 갔다가 자정이 되어서야 들어올 때면 안도감을 느꼈지만, 그에 대해 한 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본디 외로움을 잘 타는 인간이니 그럴 수 있다고 합리화하면서. 그렇게 유약한 마음으로 아빠에게 기대어본 적도 없었고, 그럴 방법도 몰랐다. 이러다 나도 시간이 흐른 뒤에 물을 마시다가 문득 그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이런 건 배우고 싶지 않은데.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부지런히 묻기 시작해야 한다. 서로가 아등바등하며 삶의 고난들을 헤쳐가고 있을 때, 적어도 그걸 알기는 해야 하니까. 그런 지지의 구석이 되어주고 싶으니까… ‘따로 또 같이’를 실천하고 있는 우리지만. 가족이라는 복잡하고 아름다운 집단이 주는 안정감을, 그 존재의 온기를 서로에게 전해줄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