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는 이름, 세상 모든 걸 쥐어주면서도 모든 걸 내려놓게 만드는. 자라나는 딸의 마음을 충분히 알 것 같았지만 실상은 많은 것을 놓쳤음을 깨닫게 되는 것. 모든 시간과 노력을 다해 주어진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지만, 운이 좋다면 대가가 돌아오는 것. 우리 아빠는 운이 좋은 사람일까.
지금까지 철저히 나의 입장에서 글을 써왔다. 나의 좁은 시야로 보는 것들에 대해, 나를 둘러싼 불공평하고도 아름다운 세계에 대해. 주로 가족이었고, 그중에서도 아빠였다. 그는 내게 가장 큰 사랑을 주고 가장 큰 미움을 받은 사람이다. 표현되지 않는 사랑이 있다면 바로 그의 것이 아닐까.
나는 아빠에게 많은 것을 받고 또 받았지만, 더 받기를 원하는 자식이다. 이기적인 딸과 아들의 마음은 끝도 없다. 아빠는 내게 아늑하고 평화로운 집과 음식과 돈과 안정감을 주었고, 나는 그 두터운 것들 아래 쌓인 얇은 부조리들을 고발하는 중이다. 이를 테면 아빠의 탈부엌 욕망이나, 나와 엄마의 기시감 같은 것들. 더는 내 마음이 평화롭지 않다고 쓴다.
아빠의 생애를 돌아볼까. 그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현도면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1남 3녀라는 고귀한 출생이 그의 삶을 예견한다. 아빠의 아빠가 돌아가시면서 유일한 남자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흔히 장남이라고 하는 것. 그것이 특권이기도 하지만 7살 애한테는 버거운 짐일 뿐이다. 하지만 당시엔 그 정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거다. 낯설지만 당연한 것이 생길수록 아빠는 답답해졌을 것이고…
누나와 동생으로부터 반찬을 양보받고, 가난한 집안의 소중한 무엇을 독차지하며 산다. 작은 현도면에서 건축 일을 배우고 싶어서, 멀리 증평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시내버스로 왕복 2시간이 걸리는 거리지만 해낸다. 졸업을 하고 바로 취직한다면 꿈과 생업을 일치시킬 수 있으니. 그러니 대학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던 해,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는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사람을 멈추게 해야 마땅하지만, 아빠는 멈출 시간이 없다. 집안의 어른들이 모두 사라졌으니 이제는 가장이라는 타이틀을 얻는다. 위로 누나가 두 명이나 있고 그들 모두 일을 하지만, 어쨌든 아빠의 몫이 된다. 그 명분으로 군면제까지 받았다. 한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며 여동생과 함께 자취를 한다. 아빠 곁에는 늘 책임의 대상인 동시에 밥상을 공급하는 여성이 있다.
그렇게 일을 하며 야간대학도 다니는 갓생을 살게 된다. 그리고는 동네 친구의 결혼식에 갔다가 나의 엄마를 만난다. 엄마는 다섯 남매의 막내 되는 사람이다. 새침데기에 책을 좋아하는 공주였지만, 아빠가 사랑하기에 충분했고, 그녀 역시 아빠를 충분히 사랑했다. 그렇게 그들은 싸우지도 못하는 충청도 커플이 되어 나와 동생을 낳는다.
쉬지 않고 전문직으로 일했던 아빠에겐 작은 아파트를 살 돈이 충분했고, 이제 모든 것이 충분해 보였다. 딸은 사랑스러웠고 아내를 닮았으며, 아들은 자신을 닮았고, 적당히 까불대는 게 귀여웠다. 그렇게 자식들을 품에 안은 지 10년 만에 유방암으로 아내를 잃고 또 한 번 유일한 가장이 된다. 이번엔 유일무이한 어른으로 남는다. 그리고 한부모라는 타이틀을 얻는다.
올해로 엄마가 떠난 지 14년째, 자기 엄마와 똑같은 새침데기에 글을 좋아하는 딸이 있다. 엄마는 글을 읽는 편이었지만 딸은 글을 쓰는 쪽이다. 딸은 손도 안 대고 키운 것 가지만, 가끔은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자식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째서 그렇게 조용한지. 밖에서는 춤도 추고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하지만, 집에서는 어쩐지 말이 별로 없다. 그 이유는 무얼까…
딸과 아들이 모두 스무 살을 넘겼다. 어쩐지 자신의 남은 시간이 쓸쓸하게 느껴진다. 더는 안락의자에 앉아 티비를 보는 게 미래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혼자 있는 밤 시간이 적적해서 아는 친구들과 골프를 치러 나간다. 그 취미가 자신을 살아있게 한다. 아무래도 딸과 아들은 곧 자신을 떠날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입 밖으로 꺼내진 않지만 실은 알고 있다. 우리가 한 지붕 아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이제는 자신의 미래를 고민해봐야 할 때다. 딸과 아들의 미래를 고민하고 그것을 위해 많은 시간을 일하며 보냈지만, 딸과 아들은 더 이상 자신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딸이 대학을 졸업하면 유럽 여행을 가겠다고 했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기도 하다. 자신은 세상을 좁고 깊게 사느라 여유가 없었지만, 딸은 세상을 넓게 쓰려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여유가 자신의 노력으로부터 나왔음을 믿는다.
아빠라는 이름이 불릴 때마다 그 감각을 되살린다. 자신의 지난 시간을,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대비하는 마음으로 듣는다. 그 어떤 이름보다 오랜 시간을 견뎌온, 사랑과 노고의 타이틀로 남을 것이다. 아빠는 영원히 나의 아빠일 테니까. 더는 그에게 어떤 타이틀도 짐으로 남아있지 않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