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영원한 딸이기를 포기합니다

by 최열음

세상에는 수많은 딸들이 있다. 철없는 딸, 착한 딸, 살가운 딸, 애교스러운 딸. 딸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뜨뜻하고 말랑한 수식어들. 그리하여 고뇌에 빠진 한 사람이 여기에 있다. 아빠의 순순한 딸이 되기를 자처했고, 동생에게 쉬운 누나가 되기로 작정했던 나. 그리고 그들에게서 조금은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는 지금.


나는 집 밖에서도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청년부 회장이자 여자친구이고, 그냥 친구이기도 하다. 요즘은 학생이자 글 쓰는 사람이고, 스타벅스 바리스타이다. 그중에서도 오랜 시간 아빠의 딸이라는 데 마음을 쏟는 것은, 그것이 나를 가장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딸이라는 자리가 너무도 지리멸렬해서, 아빠에게 마음을 줬다가도 조금만 수틀리면 다시 빼앗아 오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스물넷이 된 지금은, 미래에 자식을 낳는다면 딸이나 아들 중 어느 쪽이 좋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물어본다. 보통은 여자인 친구들인데, 다들 딸을 낳겠다고 한다. 나중에 자신을 잘 챙길 것 같고, 자신의 친구가 되어줄 것 같다며. 나 역시 같은 이유로 딸을 낳고 싶었다.


어째서 딸이 더 살갑다고 느껴질까. 애교 많은 아들들을 보면 딸 같은 아들이라고 한다. 애교가 없는 딸을 보면 그냥 무심한 딸 같다. 나는 아양을 떨고 싶지 않은데, 그럼 내가 마치 아빠나 가족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스스로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게 온전히 내 생각인지, 내가 가져야 마땅한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딸로 살아남기가 이렇게 어려운지도 모른다. 가지지 않아도 될 책임들을 지려고 하니까. 집에 식사를 책임질 사람이 없으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래서 실제로 엄마나 아빠가 없을 때면 딸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은근히 다가오는 책임을 대놓고 회피하기도 어렵다.


남동생이 전역을 앞두고 있다. 이번 추석만 지나면 걔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없을 때는 조금 그립기도 했는데, 휴가 기간 동안 함께 생활해 보니 그리움은 잠시였던 걸로. 걔가 시켜 먹은 떡볶이, 족발, 커피 같은 것들이 모두 나나 아빠의 손을 거쳐 정리되었다. 걔가 있는 동안은 더더욱 모든 일이 챙김의 연속이다. 기쁨 없는 돌봄과 노동은 피로일 뿐이다.


아빠는 내게 시간 나면 과일을 씻어두라고 한다. 가끔은 먹기 편하게 까놓으라고도 한다. 그래서 전에는 귤을 서너 개씩 까놓았던 적이 있다. 집에 종일 박혀 있는 동생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내가 재수할 때는, 집에 있는 동안 청소나 빨래를 하라고 해서 화가 치밀었던 기억이 있다. 나의 재수 생활이 아빠에게는 딱 그 정도였던 것이다. 당시에도 동생은 집에서 빈둥댔다.


딸로서 지켜야 할, 조심해야 할 모든 것에 신물이 난 사람으로서 같은 이유로 딸을 낳고 싶다고 한다면 그건 대물림에 불과할 거다. 살가운 딸을 기대하면서, 딸로서 지녀야 할 아양을 기대하면서 자식을 초조하게 하진 말자. 자기한테 애교 유전자가 없다고 자책하게 하지는 말아야 하니까.


우리 아빠도 그런 말을 참 많이 들었을 거다. ‘그래도 딸이 있어서 참 다행이야’, ‘너희 딸은 정말 착해’. 이게 열 살짜리 딸이 아침에 일어나서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면 듣는 말이다. 실은 냉장고에 있는 반찬이나 밥과 국 등을 꺼내서 데우고 펼쳐놓은 것이 전부지만, 그렇게 책임감이란 걸 학습한다. 가족의 식사가 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실감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또한 첫째 딸로서, 우리가 조금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책임감을 부여받은 대신, 동생들보다 어른에 가까운 존재로 성숙함도 인정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판단과 선택이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때가 많다. 인정하기보단 인정받는 게 익숙한 습성도 그렇고. 나도 가끔은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고는 흠칫 놀란다.


오랫동안 평범한 가족의 평범한 딸이 되기를 바랐다. 대부분의 첫째 딸들이 그렇듯 듬직하지만 무뚝뚝하고, 나설 줄 알지만 가끔은 모부의 도움을 구하는. 나는 분명 평범하지 않은 가족의 평범한 딸임에 틀림없다. 엄마만 빠졌을 뿐, 많은 첫째 딸들이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이면 같은 역할을 감당하리라 짐작해 본다.


그러니 오랜 시간 성공적인 밥상에 부담을 가져온 딸로서,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맏딸로서 작별을 고한다. 더는 평범한 딸로 남지 않겠다고. 하늘 아래 모든 딸들이 비범하게 생각하고 움직이기를 바라며 마지막 글을 쓴다. 책임감에 기반한 희생이 얼마나 큰 부담과 불만으로 돌아오는지. 그건 엄마의 죽음이라는 상실에 흐물거리는 반창고를 하나 붙이고 아무렇지 않다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죽도록 노력해야 겨우 막아내게 되는 파도이고, 절대 완전히 채워질 수 없는 구멍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든지. 누군가의 죽음과 소멸과 상실을 쉽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건 큰 오만이다. 애써 도망가기보다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하고, 아파하다 보면 어느새 슬픔의 끝자락에 가까워져 있을 테다. 그러니 어떤 마음이든 마음껏 품에 안고 놓아주지 말자. 알아서 어련히 가겠다고 할 때까지 말이다.



나의 기나긴 애도의 과정이 누군가의 상실에 큰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연재를 마칩니다. 세상의 모든 딸과 아들, 엄마와 아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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