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여행가게 됐는데요, 남의 돈으로요.
말 그대로 남의 돈으로 여행을 가게 됐다.
나로 말하자면, 흔하디 흔한 로또 5등도 한번 된 적 없고,
재미로 해본 스피또도 한번 된 적 없으며,
사다리게임에서 이겨본 적이 손에 꼽는,
횡재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다.
횡재수가 없는 걸 억울하게 여기거나 부러워해본 적은 전혀 없다.
노력하는 만큼 얼추 결과가 따라주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라고 하면 좀 재수 없나?
어쨌든 요점은, 그만큼 '횡재'는 나와 엮일 일이 없었다는 거다.
그래도 막상 나에게 이런 횡재가 생기니, 기쁜 마음을 억누를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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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은, 여느 때와 같은 하루에 불현듯 찾아왔다.
오후 근무가 한창인 시간이었다. 남자친구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서로의 근무시간을 꿰뚫고 있는 만큼 근무 중에 전화를 하는 일은 우리 사이엔 드물었다.
그래서 예정된 바 없던 그 전화가 조금 낯설었다.
"여보세요?"
그는 길게 이야기하기 어려우니 카톡을 확인하라는 당부만 남기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급박하게 재촉한 것 치고는 달랑 사진 한 장이 도착해 있어 조금은 김이 샜다.
그렇게 도착한 사진은 화면을 대충 캡처한 것처럼 보였는데
'이벤트 당첨'이라는 문구가 시선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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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코엑스에서 데이트를 한 날이었다.
쇼핑도 할 겸 코엑스 내부를 거닐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길래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이른 곳이 '홍콩 미니어처 전시회'였다.
정교한 데다 꼼꼼히 보지 않으면 놓칠 수 없는 작가의 묘한 센스까지 숨어있는 미니어처가 제법 흥미로웠다.
홍콩의 거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리얼리즘에 우리는 신나서 이리저리 사진을 찍었고,
사진이 생각보다 잘 나온 탓에 SNS 인증샷 이벤트에 응모했을 뿐이었다.
정말 당첨될 걸 예상 못했냐고?
솔직히 말하자면, 공짜커피를 기대하며 2등 상품인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노리긴 했다...
그런데 커피 1잔이 홍콩행 비행기 티켓으로 돌아올지는 정말 몰랐다.
먹을 게 없어 박을 썰었더니 금은보화가 나왔을 때의 흥부 기분이 이랬을까?
예상치 못한 행운에 오후 내내 얼떨떨했다.
퇴근 때가 되어서야 내 행운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내 남자친구의 행운인가?)
어쨌든 그렇게, 횡재수 없는 여자의 남의 돈 여행기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