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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삘(feel)이 오는 곳

가게 자리 찾기

by 행복한 요리사

내 가게를 해보겠노라고 마음을 먹은 후, 가게 자리를 찾으러 다녔다. 서귀포 법환동에 1여 년간 살며 이곳을 너무 좋아했던 나는 이 근방에서 자리를 알아보았다. (언젠가는 이 마을에 다시 사는 것이 내 꿈일 만큼 나는 법환동을 사랑한다.) 잔디 마당이 있는 1층 상가가 그나마 마음에 들었는데 내 마음에 뭔가 찝찝함이 있었다. 고심을 해보니 그 찝찝함은 그 자리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내 첫자리가 제주도가 맞을까 하는 것이었다. 제주도는 내 고향 부산에 비해 주거 인구가 너무 적었고 그러다 보니 단골손님을 많이 만드는 게 어려울 것 같았다. (서울이 인구가 제일 많긴 하지만 서울에서는 살기 싫었다.) 성수기와 비수기가 뚜렷하고 관광객 의존도가 너무 높은 점도 내 마음의 걸림돌이었다. 나는 고민 끝에 내 첫 가게를 부산에서 하기로 결심하고 부산으로 다시 돌아왔다.

분명 태어난 곳도 부산, 고등학교도 부산에서 나왔지만 내가 주로 성장하고 자란 곳은 김해였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하느라 어딜 나다니질 않았으며 대학교와 직장생활은 서울에서 했으니 부산에 대해 내가 아는 거라곤 거의 없었다. 부산의 자리를 알아보러 여러 부동산과 이곳저곳을 3개월 정도 열심히 누볐다. 위치 선정에 있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가 있었는데 이를 다 만족시키는 곳이 잘 없었다.

1. 유동인구가 많은 곳.

2. 근처에 지하철 역이 있는 곳.

3. 비수기와 성수기가 딱히 없어 비교적 연중 내내 사람들이 찾는 동네.

4. 주거인구도 많지만 관광객도 같이 잡을 수 있는 곳.

5. 초중고등학교가 근처에 있는 곳.

6. 내 업종의 주 고객 연령대가 많이 살거나 찾는 지역. (나의 경우 20~40대 여성)

7. 그 동네 주민의 구매력. (한식에 비해 양식의 가격대가 더 높다.)

봤던 자리들 중 그나마 제일 낫다 싶은 곳 앞에 죽치고 앉아서 밤낮으로 유동인구를 체크하기도 했고 위 조건들을 따져도 보았지만 무엇보다도 삘!(feel) 느낌이 안 왔다.

어설프게 괜찮은 자리에서 첫 시작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조금 더 하면서 여유롭게 자리를 찾아봐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던 차에 부동산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왠지 내가 마음에 들어 할 자리를 찾은 것 같다면서. 약속을 잡고 도착한 곳은 광안리 해수욕장이었다. 맨 처음 그 자리를 만났을 때 '아 여기다'하는 직관적인 느낌이 들었다. 외부의 빈티지 갈색 벽돌이 내 마음에 들었고... 구체적으로 무엇 무엇이 마음에 들었다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내 자리였다! 나는 15평 정도의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작은 규모를 바랐는데 여기는 15평보다 더 작은 11평 남짓한 공간이었지만 이미 삘이 와버렸다. 빵을 직접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없었지만 이 자리는 이미 내 마음에 들어와 버렸다. 좋아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단 생각해 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말했다. 일주일간 밤낮으로 가게 건너편 인도에 앉아 유동인구와 연령대를 체크했고 위의 나열한 조건들도 따져보았는데 역시 이 자리가 맞다는 판단이 들었다.

계약을 하기로 결정했다. 계약날, 여름비가 쏟아졌다. 하늘도 오늘을 축하해 주는 건가! 드디어 나도 내 가게를 가지는구나 하는 설렘과 두려움을 가지고 계약장소(가게 자리)로 향했다. 주인아저씨(건물주)와 마주 보고 앉아 계약서에 서명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주방 천장에서 물이 새는 게 아닌가! 그걸 보는 순간 마음이 철커덕 내려앉았다. 어떡하지, 정말 어렵게 마음에 든 자리인데. 나는 이 계약을 하는 게 맞을까 안 하는 게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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