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좋아, 2층!
그렇게 유타설계사무소의 소장님, 실장님 이렇게 두 분과의 설계가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아파트는 주차장, 엘리베이터 위치 그리고 방의 위치나 크기가 다 정해진 채로 소비자가 구매를 한다. 하지만 건물을 설계한다는 건, 이 모든 것을 우리가 정하는 것이었다.
먼저 건물 전체의 퍼즐을 맞춰야 했다. 몇 층으로 지을 건지, 주차장을 어디로 둘 것인지, 엘리베이터는 어디에 설치할지, 계단을 외부로 둘지 내부로 둘지, 심지어 계단의 높이를 얼마로 할지까지. 한 번 결정을 내리고 시공이 시작되면 그 결정을 되돌릴 수 없다는 마음이 들어 하나의 선택에도 굉장한 마음의 부담이 얹어졌다. (바꿀 수는 있다. 변경에 추가 시공비가 엄청나게 소요될 뿐.) 주차장, 엘리베이터, 계단의 위치를 정하는 게 단순 도면으로는 쉽게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아서 8가지 정도의 모형을 준비해 주셨다. 모형을 전달받으면 바로 정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며칠을 360도로 돌려보며 고민을 하고 나서야 결정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을 것만 같지만, 법의 규제도 따라야 했다. 가게는 무조건 1층이어야 한다는 고집이 있었지만 건물 층별 업종 및 규모에 따른 필수 주차대수를 1층에 채워 넣으니 1층에서 로옹을 하는 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1층에 가게를 두면 지난 가게보다 더 작은 가게에서 새로 오픈할 판이었다. (확장 이전이 아니라 축소 이전이라니!) 내가 너무 서글퍼하자 소장님은 "요즘 맛집은 찾아가잖아요! 2층도 충분히 좋을 수 있어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결국 로옹은 2층에 위치하게 되었다. 대신에 1층에 가게 창고, 베이킹실을 위치시켰다. 2층으로 정한 후에도 이따금씩 불안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설계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2층 매장을 강추한다. 일단 문을 열면 바로 외부가 아니라서 단열이 잘된다. 지금 12월 겨울임에도 히터를 켜지 않아도 매장 내부 온도가 23-24도를 유지한다. (이건 단순히 2층이라기보다는 건물 자체가 단열이 잘 되어서 일수도 있지만.) 플러스로 예전에 1층에 있을 때는 손님이 들어오고 나갈 때 파리가 한 마리 같이 들어오면 잡느라 애를 먹었는데, 2층에서는 그럴 일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비가 많이 와도 걱정이 없다. 우리는 2층이니까! 1층에 있을 때는 일을 하며 시선이 밖을 많이 향했다. (밖에 사람이 좀 다니는지, 앞집은 손님이 많은지 등등) 2층에 위치하니 그 시선이 내 가게와 스스로를 향하게 되어 훨씬 좋다. 나의 좌우명 '오히려 좋아!'하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가게와 집 내부의 설계도 쉽지 않았다. 기존가게에서 인테리어를 한 번 해봤으니 가게 설계는 그나마 용이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앞 가게보다 면적이 넓어졌고 완전 0에서 시작하다 보니 이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주방을 건물 전면으로 둘 것인지, 중앙이나 뒤쪽으로 뺄 것이지도 고민이었고, 각 경우에서의 홀 테이블 배치와 동선도 하나하나 다 따져보아야 했다. 주방과 홀의 크기 비율도 고민해야 했다. (앞 가게는 너무 쪼꼬만 해서 비율 따위를 따질 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가게보다 집의 설계가 더 어려웠다. 방의 개수와 크기뿐만 아니라 화장실, 출입문, 침실의 위치까지 퍼즐 맞추듯이 온갖 경우의 수를 다 생각해야 했다.
설계라는 과정이 마냥 즐겁지는 못했다. 땅 자체가 크지 않다 보니 무슨 선택을 해도 포기해야 할 것이 꼭 한 가지는 있었기에 무엇이 더 중요한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했다. 설계 기간 6개월가량 동안 2-3주에 한번 미팅을 했다. 미팅하는 날만 회의를 하는 게 아니었다. 지난 미팅에서 던져주신 숙제를 고민하여 1차 결정을 하여 전달하면, 그 결정을 반영한 도안을 다시 받았고, 앞선 결정을 수정하는 일도 허다했다. 처음 해보는 설계이니 질문이 많았기에 소장님, 실장님과 거의 매일 카톡과 전화를 주고받았다. 설계하는 6개월 내내가 미팅이었다.
설계의 마무리 과정에서 3D 영상을 만들어주셨는데, 아직 건물이 설 자리를 허물지도 않았는데 벌써 지은 것 같은 감동이 있었다. 6개월간 공부하고, 묻고, 고민하고, 결정한 시간의 결과물이었으니 말이다. 아직도 설계도를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다. 어려운 설계과정을 지금 좋은 시간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유타의 소장님과 실장님 덕분이었다. 소장님은 설계를 할 때 지금 당장이 아닌 향후 10년을 바라보고 공간의 크기, 위치, 개수를 정하라고 조언을 주셨는데 그 말씀이 매번 결정을 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거 물어보면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싶은 질문도 흔쾌히 받아주시고 답해주신 삼촌 같은 실장님에게도 감사하다. 역시 일은 좋은 사람과 할 때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 같다.
이제 이 설계를 바탕으로 누가 짓느냐, 그게 고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