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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여기서 나가야겠다.

설계를 시작하다.

by 행복한 요리사

비가 아주 많이 오는 어느 날이었다.

주방 식기세척기 밑으로 빠지는 하수구에 배수가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신랑과 나는 하수구 안을 들여다보려고 식기세척기를 앞으로 빼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그 순간 세척기 밑의 날카로운 어딘가에 신랑의 손이 심하게 베었다. 힘줄이 보일 정도로 크게 상처가 나서 피가 줄줄 흘렀고 둘 다 너무 놀라 어쩔 줄 몰랐다. 마감 직전이라 손님은 없었고 우리는 부리나케 근처 병원 응급실로 갔다. 의사는 힘줄이 다쳤으면 다친 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너무 겁이 났고, 억울했고, 화가 났다. 천만다행으로 수술을 한 후 의사는 힘줄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해주어 안도감이 들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내 속에서는 말로는 표현 못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1985년도에 지어진 이 가게는 비가 많이 오면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비가 올 때마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이곳에서는 더 이상은 장사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일종의 정이 떨어져 버렸다고나 할까. 이 날 이후 우리는 개인적으로 하수구 업체를 불러 100만 원 가까이 되는 돈을 주고 하수구 안을 내시경 하고 청소하는 절차를 진행했다. 업체에서는 오래된 건물이라 배관자체가 너무 좁고 노후되었고 세월이 쌓이다 보니 관 자체에 이물질이 너무 많이 쌓였다는 말을 들었다. 이로 인해 비가 너무 많이 오거나, 물을 많이 쓰면 역류가 되었고, 당시의 관청소로 잠시는 괜찮을 수 있지만 관의 직경이 너무 좁아서 쓰다 보면 다시 문제가 재발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건물주 아저씨는 이 비용을 하나도 보태주지 않으셨다.)

여하튼 나는 잠시의 문제는 해결했지만, 나와 신랑은 이제는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이 시점이 땅을 구입하고 1년이 좀 지난 때였다. 1-2년 정도 더 뒤에 설계를 시작하려고 계획했었는데 신랑이 손을 다친 그 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일단 모르겠다. 설계를 시작하자.'로 계획을 앞당기게 되었다.

땅을 산 이후로 우리는 '집을 짓는다'는 것에 큰 관심을 가지고 집짓기와 관련된 다양한 책을 읽었다. 'EBS 건축탐구 집'이라는 프로그램도 빼놓지 않고 챙겨보았다. 책과 방송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어떤 건물을 짓고 싶은지에 대해 조금씩 데이터를 모으고 있었다.

일단 우리가 원했던 것은 첫째, 집과 가게가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로옹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월세에 살았고, 땅을 사던 당시에는 전세로 살고 있었는데 매번 계약기간이 끝나면 이사를 다니는 게 소모적이었고 건물을 지으면서 이참에 내 집마련까지 해버리겠다는 소망이 있었다. 가게 운영적인 측면에서도 새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 빵도 꼭 유기농 밀로 내 손으로 만들고 싶었기에 집과 로옹이 하나가 되면 중간의 발효 과정 사이에 집에 올라와서 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출퇴근 시간이 단축되는 것도 당연한 이점이었다. 둘째, 식자재 창고가 별도로 있기를 바랐다. 기존 가게는 공간이 너무 협소해서 가게에만 식자재를 보관하면 거의 이틀꼴로 계속 장을 봐야 하는 구조였다. 그래서 집의 방 한 칸을 식자재 창고로 만들어 매일 아침 출근할 때 한 카트씩 집에서 가게로 식자재를 날랐다. 엘리베이터가 점검을 하는 날이면 그걸 다 들고 일층까지 옮겨야 했다. 차에 실어 또다시 가게 안으로 나르는 수고를 매일 했기에 이제는 그 반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셋째, 베이킹실을 원했다. 직접 만든 건강한 빵으로 요리를 하고 싶다는 소망은 로옹을 오픈하기 전부터 나의 갈망이었고 그 꿈을 위해 빵집에서 경험을 쌓기도 했지만 공간의 부족으로 하지 못했다. 새로 옮기는 자리에서는 이 소망을 꼭 이루고 싶었다. 넷째, 청결한 분리수거장이었다. 우리가 일했던 많은 해외의 업장과 국내 업장들에서는 분리수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로옹 시작부터 분리수거는 꼭 해야 한다고 믿었다. 기존 업장에서는 분리수거 장소에 비를 막아주는 천장이 없고 낙엽이 쌓이는 야외라서 깔끔하게 분리수거를 할 수 없었다. 좀 더 청결하게 분리수거를 할 수 있는 실내 분리 수거장을 원했다. 이 외에도 기존 가게에서 영업을 하며 불편했던 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새 장소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수많은 디테일 리스트를 만들었다.

설계사무소를 찾기 위해 다양한 회사들의 홈페이지에서 여태까지 해온 포트폴리오들을 살펴보았고, 부산과 서울의 몇몇 설계 사무소와 미팅도 했다. 다들 쟁쟁한 건축사무소였지만 미팅 후에도 뭔가 큰 확신을 얻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던 와중 EBS 방송에서 진행자로 자주 등장한 유타 건축의 '김창균' 소장님을 알게 되었고 회사의 홈페이지를 통해 유타에서 설계한 건물들을 둘러보았다. 우리가 원하는 적벽돌 건물, 따뜻한 느낌의 건물들이 많았고 무엇보다 삘(Feel)이 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는데 땅을 보유하고 있는지 등의 사전 질문을 하셨고 대표님께 전달드리고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고 EBS 방송에서 듣던 그 목소리의 주인공, 김창균 소장님이셨다. 소장님과 부산역에서 처음 만났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우리가 나이가 많지 않았음에도 (게다가 둘 다 좀 어린애처럼 생겼었음) 우리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어주셨고, 우리가 마음에 들어 했던 건물들의 상세주소를 알려주시면서 직접 보는 것도 판단에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다. 그 길로 휴무날 대구와 구미에 가서 건물들을 직접 보고는 이 분과 설계를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 건물의 설계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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