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기준.
사람들의 입맛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똑같은 음식을 먹고도 어떤 손님은 너무 짜다고 하고, 어떤 손님은 싱거우니 소금을 달라고 말한다. 어떤 손님은 너무 맵다고 말하고, 어떤 손님은 더 맵게 해달라고 말한다.
영업 초창기에는 손님의 한마디에 생각이 많아졌다. 식사 후 계산하실 때에 "식사는 입맛에 맞으셨을까요?"하고 종종 여쭙는데, 한 손님이 "파스타가 좀 짰어요"라고 말을 했다. 그 한마디에 우리는 간을 줄여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너무 매웠어요"라고 말하는 손님의 한마디에 너무 매운가 싶어 맵기를 낮춰야 하나 골똘히 생각했다. 실제로 처음에는 짰다는 말 한마디에 간을 바로 낮췄더니 기어코 다음 손님은 "좀 밍밍했어요"라고 말했다. 아니 어쩌란 말인가. 어느 손님의 박자에 음식을 맞춰야 하는지가 너무 어려웠다.
시간이 흐르며 깨달았다. 모두에게 딱 맞는 간, 맵기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우리의 음식을 해야 했다. 간이나 맵기에 대해 여러 손님들이 같은 의견을 주신다면 그때는 스스로 먹어보고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하지만 손님 한 분의 의견에 내 음식이 흔들리면 나머지 손님들에게 내 기준으로 만든 음식을 낼 수 없다.
우리는 맛이 일정하다는 칭찬을 꽤 많이 듣는다.
그러기 위해 하는 일이 있다면 첫째,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일찍 출근해서 최근 잔반이 조금이라도 돌아왔던 음식을 만들어 손님처럼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해본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반복해서 음식을 만들다 보면 처음 이 음식을 만들었을 때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경우도 가끔 있다. 주방에 서서 한입 맛보는 것과 제대로 앉아 손님처럼 끝까지 음식을 먹어보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제대로 지긋이 앉아 음식을 맛보고 부족한 점이 있다면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해 회의를 하고 고쳐나간다. 그렇게 하기에 처음 그 음식을 만들었을 때에도 분명 우리의 기준을 충족시켜 메뉴에 올랐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맛있어진다.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던 부족한 점을 후에라도 느끼고 계속 개선해 나가기에 가능한 일이이다.
둘째, 특정 음식에 대해 두 분 이상이 같은 의견 (예컨대 "너무 달아요")을 주신다면 꼭 다시 먹어본다. 먹어봤음에도 불구하고 그 음식의 맛이 우리가 의도한 맛이라면 수정하지 않는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음식에 대한 확고한 기준이 있어야 맛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메뉴에 액젓을 넣은 파스타가 있는데 메뉴판에도 '액젓으로만 간을 하여 간이 있기 때문에 싱겁게 드시는 분은 미리 말씀해 주세요'라고 명시해 두었다. 그럼에도 간혹 조금 짰다고 말씀하시는 손님이 있으면 다음번에 오셨을 때 조금 싱겁게 해달라고 요청을 달라고 말씀을 드린다. 그 음식은 그 간으로 먹어야 맛있는 파스타라는 우리만의 기준과 철학이 있고, 그 파스타를 인생 파스타라고 말씀하시는 손님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리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 좋지 않은 리뷰를 보고 기분 좋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초창기에는 리뷰 한 개에 극도의 기쁨을 느끼기도 극도의 슬픔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하게 됐다. "우리의 음식이 라면은 아니잖아?" 심지어 라면도 모두가 좋아하진 않는다. 한편으로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이 진짜 좋은 음식일까라는 고민도 했다. 그런 음식은 개성이라곤 없고 정말 무난한 맛을 가진 무난한 음식이 아닐까? 7년 차가 넘은 지금은 모두에게 사랑받으려는 것 자체가 욕심이고 욕망이라고 생각한다.(그렇게 생각하려고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내 음식의 방향도 '모두'를 향하지는 않는다. 로옹에는 단골손님들이 정말 많은데 그분들이 오시고 또 오시는 이유는 내가 모두를 열광하게 할 만한 음식과 서비스를 해서가 아니라 그분들과 우리의 취향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본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는 리뷰를 영업 초창기에 봤다면 굉장히 풀이 죽었을 나였지만 이제는 '시간 내어 오셨는데 이 손님의 취향이 아니었다니 아쉽네. 이 분의 취향에 맞는 다른 곳이 있으실 거야'하고 생각한다. (단, 악의적인 리뷰에는 화가 날 것 같다. 우리도 사람이기에.)
그렇다고 해서 나의 대쪽 같은 기준을 고집하고 손님의 말은 귓등으로 듣는다는 말이 아니다. 손님이 주신 의견으로 개선한 것들이 정말 많다. 피클도 손님들 덕에 생겼고, 토마토 쨈을 따로 판매하는 것도 손님의 의견이었고 최근 프렌치토스트가 달다는 의견이 몇 번 있어 개선하는 과정에 있다. 손님의 말을 듣되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취할 것과 취하지 않을 것을 현명하게 잘 선택할 수 있었야 한다. (여전히 어렵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식당도,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손님의 의견을 선별하여 듣고 나의 기준을 세워 우리의 길을 가는 것이 맞다. 지금도 내 옆에는 요리 책이 놓여 있고, 요즘 가을 제철 샐러드를 만드느라 일을 할 때에도, 티비를 보다가도, 잠에 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도 고민을 쉬지 않는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심은 내려놓고, 우리가 너무 좋아하는 요리라는 일을 지금처럼 즐겁게 오래오래 하고 싶다. 꾸준히 공부해서 좀 더 로옹 다운 음식, 우리 다운 음식을 내는 것이 우리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