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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좋은 손님과 나쁜 손님

손님에게 상처받고, 손님에게 치유받는다.

by 행복한 요리사

우스갯말로 부처님, 예수님을 제외하곤 다 만나봤다고 할 정도로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았다. 오픈한 지 7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세상에는 각기각색의 사람들이 산다는 것을 하루하루 느낀다. 손님들 중 좋은 손님이 훨씬 많음에도 나쁜 손님이 뇌리에 더 깊이 박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 손님들로 인해 받은 상처는 이미 많이 씻겨 내려갔지만 아직 기억에 깊이 남아 있는 손님들이 있다.

어린아이 둘, 아내, 중년의 남성 이렇게 네 가족이 식사를 하러 오셨다. 커피를 쏟으셨는데 미안하다는 말은커녕 테이블이 허접하다고 했다. 닦아드리는 와중에 가게에 대해 마음에 안 드는 점을 하나하나 말하면서 불평불만을 갑자기 늘어놓았다. 그 태도가 너무 위협적으로 느껴져 불편한 점이 있으셨다면 죄송하다고 말하고 넘어가려고 하는 순간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포크, 스푼을 나를 향해 던졌다. 어린아이들이 아빠를 말리기 시작했다. 너무 당황해서 쏟은 걸 다 닦고 주방으로 들어왔는데 왈칵 눈물이 났다. 하필이면 그날 몸살 기운이 있어서 마음이 더 약해졌다. 신랑이 그 얘기를 듣고는 그 손님에게 할 말은 해야겠다며 따지러 갈려고 했지만 말렸다. 그 손님이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괜히 더 큰 분란이나 피해를 입을까 두려웠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그 어린아이 둘의 표정이 겁에 질려 있었고 아이들의 만류에도 폭언을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보니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웨이팅이 많은 날이었다. 70대 정도 되는 할아버지였는데 음식과 와인 한 병을 주문하셨다. 음식은 절반 정도 드시고, 와인은 거의 다 드셨는데 갑자기 아내를 데리고 오겠다고 하시는 게 아닌다. 가게 밖은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가득이었다. 10분 안에 오실 거냐고 물었더니 금방 오시겠다 했다. 그리고는 30분이 지나도 나타나질 않으셨다. 심지어 계산도 안 하고 가셨다. 작은 레스토랑이어서 테이블이 6개 남짓이었던 우리는 발을 동동 거릴 수밖에 없었다. 바쁜 와중에 밖에 나가 고개를 좌우로 돌려봐도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는 손님들이 많아 결국 테이블을 치웠고 40분쯤 지났을까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데리고 나타났다. 테이블을 치운 것을 보고 할아버지는 그 작은 가게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식사하시는 손님들에게 피해가 갈까 신랑이 할아버지를 데리고 나갔는데 "네가 무슨 셰프냐, 이러고도 네가 셰프냐"를 비롯한 경멸의 말들을 하셨다. 술이 잔뜩 취한 채로. 음식은 절반 밖에 못 먹었으니까 돈을 못 내겠다며 억지를 부리셨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절반 가격을 받는 걸로 끝이 났다. 신랑과 나는 마음이 지쳤다. 다음날, 아침에 재료 준비를 하며 신랑에게 말했다. "그 손님이 혹시 다시 밥 먹으러 온다면 난 절대 요리 안 해줄 거야." 그 말을 하는 찰나에 그 할아버지가 등장했다. 손이 떨리고 목소리가 떨렸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가게로 들어오자마자 90도로 인사를 하며 죄송하다고 하는 게 아닌가. 어제 술이 취해서 이성을 잃었었다고. 어제 음식이 너무 맛있었어서 아내에게 꼭 맛을 보여주고 싶은데 식사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정말 해주기 싫었지만 할아버님이 그렇게 고개를 숙이며 미안하다고 하시니 한숨만 나왔다. 두 분께는 술은 절대 안 팔겠다며 음식만 조용히 드시고 가주실 수 있겠냐고 물었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뒤로 자녀분들을 데리고 또 오셨다. 첫 기억이 너무 안 좋다 보니 재방문을 하셔도 그 기억이 다시 떠올라 밝은 얼굴로 대하기는 어려웠다. 우리도 사람이기에.

그중에서도 가장 흔한 나쁜 손님은 20대 어린 아르바이트 친구들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들이다. 돈 줄 테니 나가서 뭐 좀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려던 손님도 계셨고, 자신의 요구대로 해주지 않으면 무시하는 눈빛으로 아래위로 훑어보며 사장한테 다시 물어보라고 반말을 하는 손님도 있다. 사장인 내가 가면 순한 양이 되는 모습을 보면 그분의 살아온 삶과 인성이 보인다.

이 외에도 많다. 영업 초반에는 무례한 분들의 폭언과 나쁜 눈빛이 기억에 남아 상처가 되어 영업을 마치고 못 마시는 소주도 여러 번 마셨다. 그런 때에 엄마가 해준 한마디를 듣고 좀 더 빨리 잊어버리게 되었다. "초롱아, 그 무례한 사람들은 너와 현이에게 그런 행동을 하고는 기억도 못하고 발 뻗고 잘 잘거야. 근데 잘못이 없는 너희가 왜 그 기억을 곱씹으며 상처를 받고 힘들어하니. 너희도 다 잊어버려. 너희 잘못이 아니야." 정작 그 사람들은 스스로가 한 잘못에 대해 생각도 않고 맘 편하게 있을 걸 생각하니 괜히 억울해서 이제는 나도 재빨리 잊어버린다.

반면 좋은 손님들도 너무 많다. 젠틀하고 매너 있으신 손님들, 정이 넘치는 손님들 덕에 이 일을 하는 보람과 의미를 느낀다. 어느 바쁜 날, 계산을 분명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손님이 가고 보니 카드 결제가 끝까지 진행이 안된 일이 있었다. 가격이 6-7만 원 정도였는데 스스로를 바보라고 부르며 얼마나 원망했는지. 그날 영업을 마치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사장님, 저희 오늘 식사하고 갔는데 결제가 안된 것 같아요." 보통 결제가 안되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고, 알더라고 넘어갈 수도 있는데 직접 전화를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얘기드렸더니, "저희 오늘 너무 맛있게 먹었거든요. 맛있게 먹었는데 당연히 돈을 지불해야죠"하고 말씀하셨다. 돈을 받고 다시 생각해 봐도 너무 감사해서 그 손님에게 스타벅스 커피 쿠폰을 보내드렸다. 그렇게라도 해야 우리의 감사한 마음이 표현이 될 것 같아서.

좋은 손님들이 훨씬 많다. 적으려고 보니 생각이 너무 많이 난다. 부산에 오실 때마다 식사하러 오시는 단골손님이 계신데 본인이 좋아하는 쿠키와 손수 적은 편지를 주셨다. 고향에서 보내준 귀한 과일을 같이 먹자고 나눠 주시는 손님, 귀여운 꼬마 단골손님은 직접 만든 청귤청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밀기도 한다. 아파서 불가피하게 휴무를 하고 난 다음날이면 몸은 괜찮아지셨냐고 걱정스러운 말을 따뜻하게 건네시기도 하고, 계산하시면서 늘 맛있게 먹고 있다고 엄지 척을 날려주신다. 잠시 한국에 살다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외국인 단골손님은 직접 그린 가게 외관 그림을 선물해주어 눈물이 왈칵 난 적도 있다. 대기를 하셨음에도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너무 맛있었다고 말해주시는 손님도 계시고, 음식이 맛있었다고 나를 꼭 안아준 꼬마 손님도 있다. 추석 연휴 내내 영업을 했는데 주방 앞까지 오셔서 추석에 영업해 줘서 너무 고맙다는 말씀을 해주신 손님도 계신다. 로옹에는 착하고 따뜻하고 다정한 좋은 손님들이 이렇게나 많다.

오픈 초창기에는 진상 손님, 나쁜 손님들을 걸러내는 장치가 하나 발명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7년 차를 넘어서니 좋은 것만 취하고 싶다는 것도 내 욕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무례하고 어려운 손님들을 보며 혹시 오늘 저분에게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고 해 본다. (아직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남은 로옹의 영업기간 동안에는 매너 있는 손님들이 무례한 손님들보다 훨씬 많이 오시길 비나이다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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