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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우리와 함께 일해준 친구들.

우리만의 채용 기준

by 행복한 요리사

지난 7년간 짧게 일한 친구들까지 포함하면 20여 명이 우리와 함께 일해주었다.

그중 우리 기억에 깊이 남은 친구들이 있다.

먼저, 두이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 나는 마음을 잘 열지 않는 편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자취를 했고 오랜 시간 해외에서 혼자 생활하다 보니 사람을 잘 믿지 않는 게 내 성격이 되어버렸다. 그런 나의 마음을 처음 열었던 친구가 두이었다. "두이야 이제 퇴근해도 돼"라고 말하면 잠시 생각을 하다가 "사장님 이 시금치 제가 씻고 갈게요. 제가 안 씻고 가면 내일 아침에 사장님이 오픈하실 때 너무 바쁘실 것 같아요"하고 말하며 피씩 웃었다. 그리고 당시 일하던 친구들 중 맏언니였던 만큼 함께 일하는 어린 친구들을 너그럽게 잘 챙겨주는 게 너무 고마웠다. 두이도 우리에게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고, 우리도 두이에게 이런저런 고뇌를 말하곤 했다.

채린이도 참 소중한 친구였다. 일단 엄청 밝았다. "사장님~"하고 콧소리를 넣어 밝게 부르던 그 소리가 아직도 떠오른다.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함께 일하는 친구가 힘들게 일하면 옆에 가서는 "나와요~ 제가 할게요."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사장님 이거 제 일인데요, 나오세요!" 하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네 일 내 일이 어딨 어?"하고 반박하면 내 팔을 잡고 끌어냈다. 함께 일하던 친구들 모두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애교쟁이였다.

얼마 전에 남자친구와 함께 밥을 먹고 간 한슬이도 생각이 난다. 한슬이는 우리 가게가 첫 알바였다. 정말 일을 못했다ㅋㅋ시간이 지나서 한슬이에게도 솔직하게 말한 적이 있다. 너무 일이 안 늘어서 정말 자를까 말까 고민 많이 했다고. 일한 지 3개월이 다 되어가도 일이 안 늘었지만 한슬이를 미워할 수는 없었다. 노력파 중의 노력파였기 때문이다. 한 번 했던 실수를 또다시 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일하는 다른 친구들에게서 배우려는 태도를 보며 한슬이의 노력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한슬이가 달라졌다. 일명 '날아다녔다'. 1년 정도 일한 친구와 견줄 정도로 일이 능숙해졌다. 사실 로옹에서의 일이 쉽지는 않다. 손님 응대, 테이블 치우기, 서빙, 설거지 그리고 평일에는 간단한 재료 손질도 해야 했다. 첫 알바에 이 일들의 우선순위를 판단해서 해낸다는 게 시간은 걸렸지만 결국 해냈다. 한슬이를 보며 생각했던 것 같다. 경력이 없어도 노력의 의지가 굳건한 사람은 일이 늘기도 한다는 것을. 한슬이 덕에 꼭 경력직을 뽑아야겠다는 고집을 조금은 내려놓았다. 한슬이는 지금 원하던 대학병원에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데, 많은 일들이 쏟아질 때에도 로옹에서 일했던 경력 덕에 직무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시간을 때우고 가면 돈만 벌겠지만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능력, 손님들과의 의사소통 및 서비스, 팀원 간의 팀워크 등 배워가려고 하면 한없이 배울 게 많은 게 우리 일이고 그 일은 절대 로옹에 한정되지 않는다. 사회에 나가서도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능력이다. (너무 꼰대 같은가.)

지금도 일하고 있는 채현이. 채현이는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시점으로 일한 지 4년이 넘었다. 로옹을 오픈한 이래 가장 오래 일하고 있는 친구이다. 채현이는 잘하고자 하는 마음, 자신의 직무 외에도 더 보고 배워서 해보려는 마음이 참 이쁘다. 지금은 태블릿으로 손님이 직접 주문을 하는 시스템이지만 과거에는 우리가 가서 메모지에 주문을 받아야 했다. 채현이가 주문을 받고는 실수로 완전히 다른 주문을 입력해서 음식과 음료 모두 잘못 서빙된 적이 있었다. 손님께 가서 너무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리고는 주방에 들어와 펑펑 울던 모습이 생생하다. 너무 잘하고 싶은데 실수를 한 스스로가 미웠던 거다. 그 모습을 보며 얼마나 잘하고 싶으면 저렇게 울까 싶어 토닥토닥해 준 기억이 난다. 지금은 우리와 오래 일했다 보니 눈빛만 봐도 예스인지 노인지 알 정도다. 사장인 나도 바쁜 서비스에 힘들고 지칠 때가 있다. 그런 때에 채현이도 분명 힘들 텐데 옆에 와서는 "사장님 파이팅"하고 히히 웃고 간다. 그런 때에 내가 너무 부족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정신을 차리고 힘을 내서 즐겁게 해 보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아쉽지만 올해까지 일하고 취업을 위해 서울로 떠나는 채현이. 채현이는 어디 가서든 분명 사랑받을 거다.

그리고 우리의 첫 직원 유정이. 우리도 나이가 들고 반복적으로 요리해서인지 정말 잘 까먹는다. 유정이는 안보는 듯하면서 우리를 다 보고 있다. 우리가 놓친 부분까지 챙기는 일머리와 일센스가 훌륭한 친구다. 일을 하다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말로 가르쳐주기가 힘들다. 말보다는 오히려 보고 배우는 게 더 나을 때가 많은데 유정이는 시간 날 때마다 우리가 하는 걸 보고 알아서 잘 배운다. 맡고 있는 수프와 샐러드를 우리가 정한 기준에 맞게 잘 만들어 내는 데다가 손이 빨라 설거지도 곧잘 해치우고 손님들께도 밝고 친절하게 대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와 함께 일을 하며 취업준비를 하다가 본인의 길을 찾아 원하는 곳으로 떠날 때에 아쉽지만 기분이 좋다. 그만둔 후에도 다시 찾아와서 인사를 할 때에 이 일의 또 다른 보람을 느낀다. 언젠가 요리를 정말 사랑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에게 요리를 열심히 가르쳐 줄 시간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르바이트든 직원이든 함께 일할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아직도 어려운 일이다. 가끔은 우리의 기준이 너무 높은가 하는 마음에 스스로를 다그칠 때도 있고, 어떤 때에는 기준을 너무 낮춰 사람을 뽑았다고 후회할 때도 있다. 그 사람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고 내 공간에 들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7년간 채용을 하면서 우리만의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이 생겼다.

첫째, 인성이다. 면접을 보러 올 때 시간을 지키는지, 면접을 보는 태도와 말투에서도 인성이 느껴진다.

둘째, 인상이다. 현이와 내가 모든 손님들을 대할 수는 없기에 일하는 친구들의 분위기와 태도에서 손님들은 로옹의 분위기를 판단한다. 잘 안 웃는 친구를 웃게 하는 건 어렵고, 어두운 친구를 밝게 만드는 건 내 능력 밖이라고 생각하기에 밝은 미소와 분위기를 가진 친구를 선호한다.

셋째, 최소 이틀은 함께 일을 해보고 채용한다. 외국에서는 '스타지(stage)'라고 부르는데 주방에 일할 사람을 단순 면접으로는 절대 뽑지 않는다. 일하는 모습을 보면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는지, 모르는 것을 넘기지 않고 꼭 물어보는지, 손이 빠릿빠릿한지, 손님들에게 밝게 대하는지, 피드백을 주었을 때 받아들이고 실제 행동에 반영하는지를 볼 수 있다.

우리 나름의 기준을 가졌음에도 여전히 어려운 게 사람이다. 이렇게 해서 채용했음에도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또 이렇게 생각해 본다.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로옹에서 일한 지 7년이 된 나도 완벽하지 않은 것을. 분명 그 사람에게는 단점뿐만 아니라 장점도 있으니, 이왕 채용을 했다면 나도 장점을 더 많이 보려는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다음번에 새로운 친구를 다시 뽑게 된다면, 로옹에 걸맞은 좋은 친구를 뽑고 싶다는 욕심은 항상 가득하다. 아무리 내가 사랑하는 일이라도 함께 일하는 사람이 별로면 출근하기가 싫은 만큼 '사람'은 일에 있어 정말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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