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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해도 늘 즐겁지는 않아.

저녁 장사를 포기하다.

by 행복한 요리사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지어진 건물에서 장사를 하다 보니 굵직굵직한 사건이 여럿 있었다.

하루는 출근을 했더니 수도가 얼어 물이 안 나왔다. 수도관이 외부에 노출되어 있어 영하 3도 이하로 떨어지면 수도를 약간 틀어놨어야 했는데 처음엔 이걸 몰랐다. 수도관이 음지에 있어 해가 떠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영업을 포기하고 물이 언 수도관들을 다 풀어 얼음을 빼고 새로 연결하느라 애를 썼다. 그리고는 다시는 얼지 않도록 보온재를 꽁꽁 싸놓았다. 이 수도관을 아파트 관리실에서도 같이 썼는데 우리가 보온재 작업을 한 이후로는 관리실 화장실이 물이 얼지 않는다고 좋아라 하셨다.

폭우가 오면 하수구 역류가 발생했다. 갑자기 주방 바닥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면 정말 당황스럽다. 비를 맞으며 현이랑 역류하는 물을 퍼다가 밖으로 내다 버린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한번 하수구 역류가 되면 가게 안에 하수구 냄새가 나서 모든 문을 열고 홀과 주방 바닥 대청소를 해야만 했다. 아무래도 음식점이 계속 있었던 자리였고 그중 누구 하나 돈을 들여 하수관 청소를 제대로 했을까 싶다. 전문인력을 불러 100만 원 가까이 되는 돈을 주고 하수관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다 바로 앞에 가게가 있다 보니 태풍이 온 다음 날 가게 안이 난장판이 되었다. 우리 가게뿐이었겠나. 옆의 가게들은 유리창이 깨지고 새로 인테리어를 해야 할 정도로 처참해진 곳도 있었다. 그에 비하면 천만다행이다 하는 마음으로 가게 안의 테이블과 집기를 다 밀어놓고 들어온 모래와 바닷물들을 닦아 내었다.

토요일 아침 서비스를 하는 와중에 문이 내려앉기도 했다. 당시 출입문은 목재로 만든 제작 문이었는데 초겨울이었던 당시 문 앞에 앉은 손님들께 죄송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던 기억이 난다. 담요와 히터를 드리고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주말이라 고치러 오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직접 큰 철물점에 가서 부품을 구매해 그 무거운 목재 문을 직접 뜯어 둘이서 고쳤다. 그래도 행복했다. 일요일에는 손님들이 춥게 식사 안 하셔도 되니까.

온수기도 한번 고장이 났다. 기기값도 비싸지만 인건비가 20만 원이 넘었다. 그 돈을 아껴보겠다고 둘이서 직접 온수기를 구매해 설치를 시도했다. 온수기 자체도 너무 무겁고 벽에 나사가 잘 들어가지 않아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결국은 뚝딱뚝딱 잘 고치는 아빠를 불러 셋이서 힘을 합쳐 설치했던 기억이 난다.

4-5년 영업을 하니 주방 바닥 타일 일부가 깨졌다. 이걸 교체하려고 사람을 부르면 또 얼마나 비쌀까 싶었다. 옆 동네의 타일집에 갔더니 사장님이 비슷하게 생긴 타일 두 장과 시멘트, 모래까지 해서 오천 원에 주셨다. 어떤 농도로 시멘트와 모래, 물을 섞어야 하는지와 시공 방법까지 상세히 물었고 유튜브로 공부를 해서 직접 고쳤다.

우리 가게에는 경량 철골로 지은 별채라는 별도의 공간이 있었는데 그 위 지붕에 천막이 덮여 있었다. 이 천막이 너무 오래된 나머지 점점 해지더니 찢어졌다. 근처 천막사에 가니 사람이 와서 설치를 해주면 최소 30만 원을 줘야 된다고 하는 게 아닌가. 천막과 사장님이 추천해 주신 접착제를 들고 철골로 된 별채 위에 올라갔다. 혹시 두 발로 서면 체중을 못 이기고 금이 가서 물이 샐까 봐 현이와 나 둘 다 두 시간가량을 무릎을 꿇은 채 본드를 바르고 무거운 천막을 재단해서 붙이느라 고생을 했다. 그날 밤 현이와 나는 서로 무릎에 파스를 발라주며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직접 해서 더 꼼꼼하게 잘했다"

위에 적은 일들 외에도 크고 작은 가게의 해프닝들을 해결하며 아침 10시부터 저녁 9시까지 영업을 했다. 마감 후 장을 보고 집에 오면 밤 11시였다. 이렇게 돌아가는 하루하루를 살면서 어느 순간부터 주기적으로 번아웃이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6개월에 한 번씩 그러더니 시간이 지나자 3개월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씩 멘탈이 흔들렸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공황 장애 같은 거였나 싶은 생각도 든다. 가게 앞을 지나가는 행인들이 모두 나를 보고 수군거리는 것 같았고 가슴이 답답했다. 아무 이유 없이 울음이 터지는 순간도 많았다. 정신 건강이 나빠지니 체력도 덩달아 나빠졌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요리가 한순간에 싫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나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요리'라는 일을 선택했기에 요리를 업으로 못하게 되거나 요리가 싫어지는 것이 가장 무서웠다. 이때가 오픈하고 약 4년 차 되던 해였다.

어느 날 현이는 아침 8시에 나를 끌고 광안리 해수욕장에 나왔다. 기분 전환을 하자며 현이와 산책을 하는데 우리 둘 다 너무 놀랐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많은 사람들이 산책, 조깅, 러닝을 하고 있다니. 산책을 마치고 밥을 먹으려는데 당시에 옵션은 콩나물 국밥이 다였다. 그때 현이와 나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스쳤다.

저녁을 포기하고 아침과 점심만 파는 진짜 브런치 식당이 되어보자. 말은 이렇게 쉽게 적었지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혹시 매출이 많이 떨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을 안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지만 '요리'를 사랑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즐겁게 오래' 요리하려면 결단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일주일 정도 여러 분석과 고민을 끝으로 우리는 진짜 브런치 식당이 되었다. 아침 8시 30분에 문을 열고 4시가 되면 문을 닫았다. 둘 다 본디 아침형 인간인지라 생활패턴도 더 잘 맞았다.

이전에는 밤늦게까지 영업을 했고 쉬는 날에는 집안일, 남은 가게일을 하기 바빴기에 로옹을 시작하고 4년간 부모님과 한 번도 식사를 하지 못했다. 저녁을 포기하니 부모님과 마음만 맞으면 언제든지 같이 밥을 먹을 수 있어서 부모님이 참 좋아하셨다. 우리도 좋았다. 저녁 서비스를 했던 시간에 우리는 운동을 하기 시작했고 요리책을 사서 요리 공부를 했고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가졌다. 정신과 몸, 모두 건강할 때 좋아하는 요리를 즐겁게 할 수 있고 그 음식이 훨씬 맛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의 건강한 에너지가 곧 로옹의 에너지이고, 손님은 음식뿐만 아니라 그 에너지도 받아 간다고 생각한다.

현이와 내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로옹이 소중해도 로옹보다 우리의 건강과 평온함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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