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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 Jun 09. 2022

향일암, 소원은 항상 가슴에 새겨둬야 합니다.

향일암에서 소원을 빌어봅니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진한이는, 이것저것 가릴 틈 없이 운전석에 쓰러져 잠을 청해봅니다. 요람을 흔드는 어머니 손처럼, 바람은 그가 잠든 차를 천천히 흔들어 주었죠. 그렇게 점점 의식이 몽롱해지다가 바닷가 어느 마을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갑자기 몸이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파도가 흔드는 것인지, 바람이 흔드는 것인지? 희미해진 정신을 가다듬으려 애썼지만 허사였답니다. 모든 것이 꿈속 같았죠.


“왜 하필, 여기다 차를 세웠어?”


흔들림이 아까보다 더 세졌습니다. 진한이는 할 수 없이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그를 흔들어 깨운 건, 파도도 바람도 아닌, 친구 우진의 손이었답니다.


남해의 거침없는 바닷바람이 차를 흔들고 있던 곳에 차를 세웠더니, 조수석에서 잠자던 친구가 놀라 그를 깨운 것입니다.


허스키해진 목소리로 그는 말을 이었습니다.


"차 좀 다른 데로 옮기자! 바람소리가 너무 무섭고, 무엇보다 차가 넘어갈까 봐 불안해!"


흔들리는 차 안이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봅니다. 잠에 취해, 진한이만 그렇게 느꼈던 것일까요?


다시 시동을 걸고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겨봅니다. 하지만, 아까보다는 조금 덜 흔들려도, 어디에 있든 바람은 피할 수 없네요.


둘은 1시간 정도 정신없이 자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났습니다.


"진한아! 소원 잘 이뤄지는 곳이 어디야?"

"향일암에서 일출 보면, 소원이 꼭 이뤄진데. 근데 왜?"

"우리 거기 가자!"


지난밤, 저녁 식사하다가 갑자기 떠난 길. 서울에서 출발해 운전을 번갈아 가면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달려왔답니다.


중간, 중간, 휴게실에 세워놓고 새우잠을 자기도 하고, 졸음을 쫓아보려고 맨손체조도 하다가 마침내 이곳 향일암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5시.


"넌 대체  무슨 소원이 빌고 싶어서, 이 고생이냐? 에구! 내가 미쳤지. 여길 밤새, 너랑 왜 왔나 몰라. 애인이랑 왔으면 좋기나 하지!"

"애인도 없는 게? 너 애인 생기라고 빌어주려 그런다!"

"됐다. 이놈아!  이제 와서 무슨........"


진한이는 이혼한 지 10년 넘었고, 우진이는 지금 이혼 위기에 있는 상황입니다. 아내와 별거한 지 반년. 대판 싸우고 집을 나와 회사에서 먹고, 자고 있는 우진이는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진한이는 도통, 자기 얘기를 하지 않는 우진이가 답답합니다. 서운하기도 하고요.


대부분 혼자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고서야, 친구에게 얘기하는 우진과 사소한 일도 떠들어 대는 진한이는 35년 지기 친구입니다.


"자! 이제 올라가자!"


새벽 6시 30분, 어두워 경계가 희미했던 하늘과 바다에 붉은빛의 띠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하늘이 열리는가 봅니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두르고 차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차 옆에서도, 또 그 옆에 차에서도 사람들이 하나, 둘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차에서 새우잠을 자고 일출을 보기 위해 여기에 온 사람이 비단 그들뿐 만이 아니었네요.


진한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몸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유는 바람! 그 혹독한 바람을 맞으면서도 둘은 절집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금오산 기슭에 절집 지붕들이, 바다를 보며 올망졸망 모여 있는 모습이 보이네요.  바람을 피해 가슴을 꽁꽁 여밀며,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올라가야 하지?"

"저 계단만 다 오르면 향일암이야!”


계단을 오르며, 진한이는 정말로 108계단이 맞는지 오르면서 세어보는데, 중간중간 쉬다가 결국 까먹었습니다. 정말 한 번에 오르기 힘든 계단입니다. 이 계단을 오르면서 수많은 불자들은 소원을 가슴에 새기고, 또 새기겠지요.


그 소원을 까먹지 않기 위해 쉬는 중간에도, 머릿속에서 계속 대뇔 것입니다. 예전에 누군가 별똥별이 떨어질 때 순간적으로 소원을 빌어야 했는데, 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아! 지금 소원을 빌어야 하는데, 뭐지?’하며 당황했다고 했죠.


이 얘기를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 이루고 싶은 소원은 항상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순간에나 빌 수 있도록. 그렇게 간절하니 꼭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 진한이의 소원은 한 가지랍니다. 친구가 방황을 끊내고 집으로,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죠.


"우진아! 너 진짜 무슨 소원 빌려고 그래?"

"얼마 전에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어."


우진은 진한에게 아내에게 보내준 문자 내용을 얘기했습니다.


'요즘, 당신한테 속상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찾았어. 나 살려서 사람처럼 살게 해 준 고마운 사람! 이쁜 새끼 둘이나 선물해준 사람. 고맙고 지금도 필요한 사람. 은인 같은 사람였어! 그걸 잠시 잊었기에 내가 그렇게까지 미칠 수가 있었던 듯싶어. 생각해 보면, 당신이 또 다른 나였던 거지. 가슴앓이하고, 늘 쓸쓸했을 거고, 늘 안타까웠을 거고, 그 마음이 어땠을지 고스란히 이제 다 알겠어! 지금의 나는 자포자기 시간에서 조금씩 조금씩 올라오는 중이야. 우리 삶이 너무 애틋해. 그래도 이젠 못마땅했던 내 인생을, 그리고 나를, 내가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됐으니 얼마나 천운인지 감사할 뿐이야! 당신에게 미안해. 하지만 당신만 허락한다면, 우리 인생 후반전을 다시 시작해보자!"


우진은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문자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렸는데, 드디어 어제 답이 온 거야! 그만 집으로 들어오라고, 다시 시작하자고!"

"짜식!  잘 됐네. 그런데 왜?  심각한 얼굴이야?"

"막상 들어가려니, 용기가 안 나네.  그래서 용기 좀 달라는 소원 때문에 여기까지 왔네!"


둘은 잠시 대화를 멈추고, 거친 숨을 내쉬며 좁은 돌 틈(해탈문)을 지나 절집 마당에 들어섰습니다.


검은색이던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붉은색으로 점점 뚜렷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경계에는 이미 구름이 장난질을 쳐대기 시작하네요. 이곳에서 일출을 보기란 쉽지 않다더니 그 말이 맞는가 봅니다.


"아!  어쩌냐? 일출 못 보나보다!"


시무룩한 얼굴의 우진을, 진한이 난처한 얼굴로 바라보았습니다. 날은 이미 밝았으니 일출은 끝났지요. 아쉬움에 구름 위로 떠오르는 태양이나 보고 가려고 기다리고 있다가 순간, 동시에 둘의 입에서 짧은 단어가 튀어나왔습니다.


“나온다!”


드디어, 바다 한가운데서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태양은 생각했던 구름 사이가 아닌 바다 한가운데서 불쑥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모여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금방 한 곳으로 집중되고, 절집은 한순간 고요해졌지요.  보기 힘들다는 향일암 일출을 보았네요.



“보기 힘들다는 향일암에서 일출을 봤으니 앞으로 모든 일들이 술술 잘 풀릴 것이다.”


에서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이 한 말씀하십니다.


"아무렴요. 여기 있는 모든 분들, 소원 잘 빌었죠?"

"그럼요. 당연하죠!"


처음 보는 사람들이 모두 한 마디씩 합니다. 다들 소원을 이루겠지요? 그리고, 진한이는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핀, 우진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집으로 돌아갈 용기를 얻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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