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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미역 Mar 01. 2018

비 내리는 두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2

비가 우리나라 여름 장맛비처럼 내립니다. 덕분에 수많은 관광객들 틈에 끼어 서로 어깨를 부딪쳐가며 '익스큐즈 미'를 입에 달고 다니는 것보다는, 살인적인 더위로 만사가 귀찮아져서 순전히 본전 생각만으로 악에 바쳐 골목을 누비는 여름철 성수기 때의 방문보다는 그래도 낫다고 자위해 보지만, 한 손에 우산을 받쳐 들고 사진을 찍기는 영 거시기합니다. 그래도 카메라가 비에 젖을세라 가슴에 꼭 품고선 우산을 받쳐 들고, 비록 듣고 나면 하룻밤도 안 지나서 다 잊어먹을지언정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에 연신 고개를 끄덕여가며 귀를 기울여 봅니다.



맨 앞에 보이는 문이 성당이고 그 다음 골목으로 들어가면 박물관과 수도원이 있읍니다. 수도원 문 위에는 피에타 조각상이 부조되어 있습니다.


필레 문을 들어서면  베네치아어로 '큰 거리'라는 뜻의 쭉 뻗은 스트라둔(라틴어로 '거리'라는 뜻의 플라차Placa로도 불림)을 만나는데 여기가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에서 가장 넓은 메인 거리로 세로 11개, 가로 14개의 골목이 있다고 합니다. 292m의 이 길은 필레 문과 루사광장을 동서로 가로지릅니다.

대로의 초입 왼편으로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이 결합된  작고 고풍스러운 성 세이비어 성당(St. Saviour Church)이 있고, 연이어 프란체스코 수도원(Franciscan Monastery)과 박물관이 붙어 있습니다. 수도원과 박물관의 입구는 좁고 긴 골목 안쪽에 위치해서 밖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수도원에는 1317년에 문을 연 유럽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약국이 아직도 성업 중이랍니다.



소원의 벽. 저 위에 서서 3초만 버티면 소원이 이루어진답니다. 경사가 져서 3초라 해도 서 있기 쉽지 않은데 오늘처럼 비가 와서 미끄러우면 거의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비가 오고 오전 시간이라 골목의 카페와 음식점들은 영업준비를 할 마음조차 없는 듯하며, 그래서 왕래하는 사람도 수군거리는 소리도 없이 적막하기만 합니다.

-두브로브니크라는 이름은 슬라브어 '참나무 숲'이라는 뜻의 두브라바(Dubrava)에서 유래했으며 도시 근처에 참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이 도시는 중세부터 무역항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과거의 이름은 라틴어로 '바위'라는 뜻의 라구사(Ragusa)였답니다.



오노프리오 분수


현재는 두브로브니크에서 주로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는 큰 오노프리오 분수(Large Onofrio Fountain) 분수입니다.  1440년 주민에게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크로아티아 최초로 건설된 상수도 시설의 일부로 이탈리아 건축가 오노프리오 데라카바가 만들어 오노프리오 분수라는 이름이 붙여졌답니다. 루사 광장에는 작은 오노프리오 분수가 있습니다.





내가 서 있는 이 길이 한 때는 배가 다니던 해협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불과 30, 40년 만에 내가 살던 곳을 찾아가 봐도 어디가 어딘지 전혀 감도 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변해 가는 세상에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이 곳의  12, 3 세기 모습을 상상한다는 자체가 비현실적입니다. 단지 그랬었구나 하고 넘어갈 뿐입니다. 

비에 젖어 반들거리는 대리석의 질감은 안정적이며, 강인하며, 세련되었습니다. 자연환경과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길과 주택 및 성벽 등과 같은 인공물의 형태는 때로는 신비로움과 경이로움 그리고 찬탄과 감탄의 대상이 되어 사람들을 끌어 모으지만 결국 그 본질은 이질감, 즉 새로움에 대한 갈구에 다름이 아닐 듯합니다. 절대 주식을 바꿀 마음은 없지만 자주 외식하는 우리들의 변덕스러운 식욕처럼 말입니다.



비 내리는 두브로브니크의 골목길들


길과 관련하여 가장 먼저 연상되는 이미지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지 궁금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람들마다 그 차이가 클 것이라는 겁니다. 내가 그 질문을 받는다면 난 단연코 골목이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물론 실상이 있는 구체적인 공간 이미지와 여태까지 보려고 노력해왔지만 아직까지 보지 못하고 있는 추상적인 이미지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왜 그렇게 골목에 끌리는지 모르겠습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단 한 곳도 똑같은 길은 아닐 겁니다. 그런 것처럼 이렇게 비가 내려 그 표면이 번들거리는 대리석으로 포장된 길을 들여다 보고 또 그 위를 걸어보기는 처음입니다. 우리나라의 골목길들은 대부분 굽어져 있어 저 건너편이 보이지 않는 곳이 많지만, 이곳의 골목길들은 모두가 칼로 두부모를 썬 것처럼 곧고 일정합니다. 이 길들을 걸으며 개성 있고 독특한 간판들을 구경하는 것 또한 낯선 곳을 헤매는 매력 중의 하나입니다.



루사광장
두브로브니크의 랜드마크 시 종탑


두브로브니크는 작은 도시이다 보니 구 시가지의 가장 큰 광장이라는 루사 광장(Luza Square)도 별로 넓지 않지만 여기에 두브로브니크의 볼거리들이 다 모여 있고 그래서 '거리의 박물관'이라고 불린답니다. 필레 문으로 들어와서 스트라둔 대로를 걸어오면 만나게 됩니다.

1444년에 만들어진 시의 종탑은 구시가지의 랜드마크이며 높이 31m의 종탑 꼭대기인 왕관 모양의 지붕 아래 종이 있습니다. 2t 무게의 이 종은 매시 정각과 30분에 울린다는데, 주위를 배회하면서도 한 번도 그 종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울리지 않은 것인지, 울렸는데도 비를 피하랴, 사진 찍으랴, 거리 구경하랴 정신이 없었어 못 들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스폰자 궁전


궁전 이름이 '물을 모으다'는 의미의 스폰자인 것은 과거 물탱크가 있던 자리에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스폰자 궁전(Sponga Place)은 1516년 건물이 지어진 후 다양한 공공기관 역할을 수행했으나 현재는 역사기록 소로 사용되고 있는데, 천년 전 자료까지 보관되어 있습니다.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이 결합된 건물은 대지진의 피해를 전혀 입지 않았습니다. 여름 축제 때는 콘서트와 음악회가 열린답니다.



올란도 기둥과 성 블라이세 성당


광장의 중앙에는 1418년 조각된, 자유를 상징하는 수호기사 올란도 기둥(Orlando Column)이 세워져 있습니다. 올란도는 이탈리아식 표현으로, 영어로는 롤랑이라고 하며 중세의 유명한 기사 이야기인 하이든의 '롤랑의 노래' 주인공입니다. 롤랑이라고 하는 한 성기사(paladin)와 11명의 다른 성기사들에 대한 무훈을 담은 이야기로서 기독교와 이슬람(Saracen army)과의 싸움과 샤를마뉴에 대한 노래를 담고 있습니다.

올란도 기사의 오른쪽 팔꿈치에서 손까지의 길이가 라구사 공국의 길이 단위였던 1엘(51.2cm)과 동일해 이를 상거래의 기본단위로 사용하여 '두브로브니크의 팔뚝'이라고도 부른답니다.

바로크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뒤편의 건물은 성 블라이세 성당(St. Blaise's Church)인데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는 성 블라이세에게 봉헌된 성당으로,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성당이랍니다. 1368년 건축된 이 성당은 대지진과 화재 등으로 유실되었다가 1717년 새로 지어진 것입니다.



시 종탑의 청동 종, 뒤로 스지르산 전망대와 케이블카의 선로가 보인다.


종탑의 종 치는 두 개의 인형은 녹색 쌍둥이( Zelenci)라고 불리고, 각각 Maro, Baro라는 이름도 있답니다.                                               


작은 오노프리노 분수,  왼쪽의 렉타궁전과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마린 드르지치 상


작은 오노프리노분수는 큰 오노프리노 분수와 마찬가지로 주민들의 식수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분수입니다. 라구사 공국 시절에는 항상 식수가 부족해서 시민들이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이 분수는 지하관을 통해 근처 렉터 궁전까지 이어집니다.

렉터 궁전(Rector's Palace)의 렉터는 총독을 의미하며, 도시의 행정을 관장하던 총독의 저택입니다. 라구사 공국 때는 한 사람이 절대 권력을 갖는 것을 막기 위해 총독의 임기를 한 달로 제한했고, 총독은 부임 기간 동안 공적인 업무 외에는 궁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현재 2층은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됩니다.

그 옆에 정면으로 보이는 돔형의 건물은 두브로브니크 대성당(Dubrovnik Cathedral)으로 사용되고 있는 성모승천 대성당입니다. 정면이 아니라 옆면입니다. 영국의 리처드 1세가 로크룸 섬에서 조난당했다가 구조된 후 감사의 뜻으로 11세기에 봉헌한 성당입니다.

1508년에 태어난 마린 드르지치(Marin Drzic)는 두브로브니크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작가이자 코미디 작가입니다. 그는 서민 출신임에도 귀족들 전유물이었던 문학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작품 활동을 하였다는 점에서 당시에는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올드 포트.  이 사진들은 아래 맨 오른쪽 사진을 제외하곤 모두 비가 그친 후에 찍은 사진들임.


라구사 공국의 번영과 쇠퇴를 함께 한 옛 항구(Old Port). 지금은 그 시절의 무역선을 대신해 관광선이나 개인용 보트가 정박해 있습니다. 오전에는 여기서 피시마켓이 열립니다. 그런데 빗줄기가 가늘어졌다가 이내 굵어지는, 종잡을 수 없는 날씨 덕에 유람선 투어는 힘들 것 같습니다. 서구에서는 안전의식이 우리보다는 훨씬 더 투철하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는 잠잠해 보이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였다면 충분히 배를 운항할 것 같은 날씨인데도 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예전에 미국 그랜드 캐년에 갔을 때 안개와 눈 때문에 경비행기 투어를 하기 직전에, 티켓을 끊고 탑승 순서까지 배정받고서도 마지막 순간에 투어가 취소된 쓰라린, 하지만 다행스러운, 기억이 납니다. 전날부터 몇 번이나 가능하다, 힘들것이다고 비행허가 당국의 발표가 오락가락하다가 당일 오전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고 경비행기장에 도착했는데도 갑자기 취소시킬 만큼 우리와는 안전에 대한 의식차가 확연합니다. 여기 사람들은. 

우리도 세월호 참사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누구를 책임 지우고 처벌하고 진상을 밝히는데 주력하기보다는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에 더 힘을 써야 할 텐데 안타깝기만 합니다. 결국은 비슷한 사고가 연발되는 것을 보고는 분노까지 치밀어 오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선진국은 숫자로 달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량적인 것보다 정성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참고서적 : 크로아티아 홀리데이, 양인선, 꿈의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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