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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산톡톡 Oct 31. 2022

아버지의 해방일지

실패한 혁명가에게도, 어쨌든 삶은 남는다.

저녁 노을에 붉게 물든 단풍의 물결과 함께 찾아온 10월의 마지막 저녁,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었다.

이 소설은 처절하게 실패한 혁명가 아버지의 남루한 삶에 대한 이야기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직후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싸운 부친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다. 동지들은 죽고, 위장 자수로 조직을 재건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자로 살지만, 그 자신은 한없이 가부장적이고, 술에 취해 여자 엉덩이나 두드리며, 생산적 노동 활동에는 한없이 미숙하다. 거기에 가족은 뒷전이면서도, 자신의 딸만은 그럴듯한 지식인이 되기를 바라니 속물주의자라고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역설적이게도 그와 살아남은 동지들이 나름 언행의 자유를 누리며, 굶주림 없이 먹고사는 것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수혜 덕분이니, 그의 처참한 실패는 더욱 극적이다. 

그러나 그도 세상을 헛되이 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노동절 새벽,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생을 마감한 이후, 그가 세상에 뿌렸던 따스한 '정(情)'을 그리워하는 문상객들이 다양한 사연과 함께 빈소를 찾는다. 평생 유물론자로 살았던 아버지는, 유물론과 상반되는 삶을 살아갔던 모양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사람답게 잘 지내는 삶이 가치 있다' 정도가 될 것 같다. 사족을 붙여 풀어낸다면, 그럴듯한 사상가보다 주변 사람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이제 우리 사회에 더욱 필요한 존재다... 정도가 아닐까.

한없이 민감한 수도 있는 '이념'이라는 주제를, 구수한 문장과 소박한 전개로 술술 풀어내는 필력이 비상하다. 작가는 시대의 격변기에 옳다고 생각하는 생각을 부여잡고 서로를 적대시하며 살아가야만 했던 수많은 아버지의 본심을 대변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이제 그러한 배척과 갈등의 시대가 저물기를 기대해 본다.  

#독서노트 #아버지의해방일지 #창비 #정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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