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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산톡톡 Mar 26. 2023

경애의 마음

어쨌든 '마음'은 평생 함께 안고 사는 것

청명한 하늘과 선선한 바람에 봄의 정취가 한껏 느껴지는 3월의 마지막 주말, 석수역에서 서울대로 이어지는 '관악산 둘레길'을 걷고 돌아와 '경애의 마음'을 읽었다.

'경애의 마음'은 우정과 사랑, 그리고 상처와 치유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가 흘러가는 과정에서 슬픔, 설렘, 외로움, 그리움 등 섬세한 '마음의 결'의 흐름에 대한 묘사가 함께 한다. 

이 소설은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바로 1999년 10월 30일 무허가 불법 주점 '라이브2'에서 발생한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사건. 내가 사는 집에서 자유공원을 오르다 보면 지나치게 되는 길목에 있는 곳이었다.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 사고가 일어난 후 불과 4개월 시점. 사망 56명, 부상 78명의 대참사였다. 인천 전역의 34개 학생들이 피해자. 무엇보다도 호프집에서 돈을 내라며 학생들의 탈출을 막아서 피해가 더욱 커졌다. 어처구니없는 대참사였다. 

건물 2층 호프집에는 백 명이 넘는 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 교복을 입고 있었고, 생일 파티를 하러 온 학생들도 있었다. 연기가 들어오자 호프집 직원은 불을 끄고, 나가지 말라며, 돈을 내고 나가라며 소리쳤다. 그러고는 혼자 도망쳤다. 창문은 합판으로 막혀 있었고 출입구는 열리지 않았다. 창문이라도 열고 뛰어내릴 수 있었기에 사망자가 없었던 3층 당구장과는 대조적이었다.

화재는 20여 분 만에 진화됐다. 큰 화재가 아니었다. 호프집 안까지 불이 번지지도 않았고, 출입구만 타고 있었다. 그러나 노래방의 내장재가 타며 나온 유독가스에 건물 전체가 가스실로 변했다. 신고를 받은 후 2분 만에 소방관이 도착했지만 수십 명의 학생들은 이미 고인이 됐다...

내가 살던 집 인근이기도 했기에. 피해자 중에 지인의 동생, 친구 등도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군 복무 시절이었지만, 갑갑한 마음이 들었다. 때마침 휴가가 다가와 바로 현장으로 향했다. 길목에는 길게 차단선이 쳐져 있고, 나와 비슷한 연배의 의경 또는 전경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당시에는 왜 그렇게 겁이 많았을까. 검게 그을린 건물 주변을 떠돌다 자유공원에 올라 막막한 마음에 바다만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은 막연하게 상권의 몰락을 걱정했고, 또 중고등학생이 술이나 먹고 다닌다는 비난하던 이들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비겁하고 한심한 '어른들'이었다.

'경애의 마음'의 두 주인공, 경애와 상수도 이 사건으로 연인과 친구를 잃는다. 그들의 마음은 부서지고 침몰한다. 가차 없이 시간은 흐르고 현실은 냉혹하다. 사랑은 실패하고, 가족은 잔인하며, 사회는 냉정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우연한 기회에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고, 유대한다. 기적이 일어나 '마음'이 치유되거나, 현실이 반전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서로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이 소설의 주제를 두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그대에게는 죄가 없다. 마음은 폐기할 수 없는 것" 정도가 될 것 같다. 섬세한 표현과 매력적인 캐릭터, 장편소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재미와 감동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주제는 한없이 무겁지만, 표현하는 방식은 가볍고 발랄하다. 울고 웃으며 읽다 보면 묘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소설을 좋아하는 분께는 권할 만한 책!

#독서노트 #경애의마음 #김금희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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