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巡禮者)
[순례주택, 우리 모두는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巡禮者)]
한여름 더위도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9월의 첫 주말 아침, 유은실 작가의 '순례 주택'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막장'에 가까운 네 가족이 '쫄딱' 망한 후,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옛 여자친구의 빌라 '순례 주택'에 몸담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룬 성장 소설입니다. 누군가에게 얹혀사는 데 일가견이 있는 아빠, 눈에 보이는 부와 서열에 집착하면서 현실감각은 극히 떨어지는 엄마, 그리고 라면 하나 제대로 끓일 줄 모르는 고등학생 언니가 주요 등장인물입니다. 그나마 순례 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의 최측근이자, 공부는 조금 덜 해도 어떻게든 험한 세상을 그럭저럭 잘 살아낼 것 같은 생활 지능이 뛰어난, 16세 수림이가 가족의 유일한 희망인 셈이지요.
고급 아파트에 살던 수림이네 가족이, 평소 업신여기던 이웃들과 부대끼며 살게 되었으니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이어집니다. 그럼에도 마음씨 넓은 순례 씨와, 그 최측근이자 생활 지능이 뛰어난 수림이는 욕심 많고 철없는 가족들이 '온실 밖으로 나와 세상에 적응하게끔' 원대한 계획을 펼쳐 나갑니다.
평생 때를 밀어 재산을 일군 세신사 순례 씨는 일명 '때탑' 순례 주택의 건물주입니다. '순하고 예의 바르다'의 순례(順禮)에서 순례자(巡禮者)에서 따온 순례(巡禮)로 개명한 순례 씨는 나머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라는 마음으로 살고 싶은 괴짜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주제를 요약하자면, "우리 모두는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巡禮者)'" 정도인 것 같습니다. 좌충우돌 흥미진진하게 벌어지는 이야기와 '작은' 사건들의 기록을 읽고 있노라면, 우리의 삶은 부동산, 직업, 학벌, 시험, 성적, 외모 등으로만 가늠할 수 없으며,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모든 것에는 나름의 가치가 있겠지요.
우리의 삶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메시지에 마주하게 됩니다.
이야기도 재미있고 문장도 술술 읽힙니다. 극적인 '반전'은 없지만, 마음과 태도의 잔잔한 변화에 대한 묘사도 마음에 와닿습니다. 팍팍한 삶 속에서 위안을 얻고 싶을 때 읽을 만한 '소설'입니다. 아이들에게도 읽히기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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