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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산톡톡 Jun 06. 2020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

복잡한 세상의 법 이야기


"동주가 수지의 열 살 된 반려견을 크게 다치게 했습니다. 수지는 반려견 치료비로 300만 원을 지출했죠. 한편 수지의 반려견과 같은 품종, 나이의 강아지를 입양하기 위해 필요한 돈은 5만 원이에요. 동주가 수지에게 재산상 손해배상으로 얼마를 지급해야 할까요?

질문을 조금 바꿔 보죠. 만약 성준이가 수지의 추억이 깃든 10년 된 휴대전화를 망가뜨렸다면 어떨까요? '중고나라'에서 5만 원이면 같은 사양의 휴대전화를 충분히 살 수 있는데, 이를 수리하는 데 300만 원이 든다면 성준이는 수지에게 재산상 손해배상으로 얼마를 지급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답변할 수 있을까? 아마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과 가치관에 따라 답변은 매우 달라질 것이다.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의 고귀한 헌신과 희생을 기리는 현충일 아침, 위 질문이 담긴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를 읽었다.

이 책은 서울지방법원, 서울 서부지방법원, 대전지방법원, 대전고등법원을 거쳐 현재 수원고등법원에서 직무를 수행 중인 작가가 '고교독서평설'에서 2년간 연재한 '교과서 속 법 세상'을 수정하고 다듬은 것이다. 고교생의 눈높이에 맞추어 지금 현시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주제를 법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한 텍스트이다. 그만큼 문장도 술술 읽히고 이해하기도 쉽다.

'오늘 법정을 열겠습니다'에서는 총 7장에 걸쳐 '경제', '계약', '인권', '생명윤리', '교육', '소수자' 그리고 '환경'과 법의 문제를 다룬다. 실제로 법정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다툼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기에 무겁고도 한없이 진지할 수밖에 없는 '양형'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내용은 생생하고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무엇보다도 이제는 세상이 단순히 '정의'와 '불의'로 구분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해졌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법관님들도 이렇게 빠르게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해 참으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에 공감했다. 

직접적으로 와닿았던 주제는 다음과 같다. 

- 양심의 자유가 국방의 의무보다 우선하는가

- 존엄한 죽음은 가능한가

- 지역 인재 선발 전형은 배려인가 수도권 역차별인가

- 반려견은 물건인가 생명인가

- 난민보호, 그 이면과 진실

- 태양광발전소, 과연 환경친화적인가.

어느 항목에도 명쾌한 정답은 없다. 그러나 '찬성'과 '반대' 양 측의 주장의 근거와 그 사이에서 타당한 '무게중심'을 잡아야 하는 이들의 고민이 절실히 느껴져 온다.  

이제 다시 첫 질문, 동주와 수지의 사례로 돌아가 보자. 저자는 간단해 보이는 저 사례도 상황에 따라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앞서 본 동주와 수지의 사례를 떠올려 보세요. 동주가 수지에게 3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가 분명히 있겠죠? 동주의 재산이 원룸 하나뿐이라 할지라도, 동주는 원룸을 팔아서라도 수지에게 300만 원을 물어 주어야 한다고요.

그런데 상황을 조금만 바꿔서 생각해보죠. 견주 수지가 전 재산이 원룸 한 채인 상황에서 실수로 자신의 반려견을 크게 다치게 했다면, 과연 수지는 원룸을 팔아서라도 반려견을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해야만 할까요? 동주와 달리 수지가 반려견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도 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반려견을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고유의 권리를 가진 법적 주체라고 본다면 견론이 달라질까요?"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한 축이 되는 '법'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 기회가 된다면 한번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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