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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ads Nov 08. 2022

또 다른 여행

떠나지 못하는 이유 

2021-03-17 11:17:02


"언니, 예전에는 혼자서 해외에서도 살고, 여행도 잘 다녀서 굉장히 변화를 즐기는 스타일이고 용감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이경이가 한 말이다. 이 지역에서 할 것도 없고 마땅히 가까이 지내는 사람도 없나본데 이 곳에 사는 이유를 궁금해 한다. 아니 궁금해 하는 것이 아니라 답답해한다.  고향도 아니고, 친한 이웃도 없이 굳이 이 곳에서 살다니 한심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홀홀 단신이니 여행가처럼 살 수 있지 않냐는 물음이기도 했다. 


내가 이경이의 처지라면 그렇게 볼 듯하다. 전원생활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귀농을 한 것도 아니다. 농사는 차치하고 흙을 만지지도 아니니 말이다. 내 처지를 문득 바라본다. 예전에 난 떠나는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돈도 안들고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호기심이 해외 인턴십을 선택했었다.  그 인턴십으로 돌아와 어디에 사용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나는 야망이나 꿈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당시 한국에서 생활보다는 낫겠지 싶은 도피성이 강하게 작용했다. 그리고 떠난 후에 돌아올 집이 있어서 떠났다. 돌아오기 위해 떠난 것은 아니었지만. 내 짐은 여행자보다 조금 더 큰 정도였다. 내 무의식이 완전히 떠나는 사람의 짐을 만들지 못한 것 같다. 


해외생활을 하고 엄마가 있던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그 곳에 그대로 있었다. 내 물건도 그래도였다. 그저 잠시 비운 것이었다. 그걸 엄마가 지켜주고 있었다. 낭비를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제는 지켜주고 기다려주던 엄마가 없으니, 내가 떠난다면 집에 덩그라니 짐만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집도 내 집이 아니긴 해도 두 개의 거처를 가지게 된다.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닌데 그런 낭비를 하다니.  만약 장시간 여행을 간다면 이 짐은 어떻게 처리하나. 그리고 이 집은 내가 돌아와서 쉴 곳인가. 


가장 큰 걱정거리는 내 몸이다. 현재 건강상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중병 상태이고, 그 병 외에 여기저기 탈이 자주 난다. 이제는 주변에 작은 병원, 의원을 찾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안과, 피부과 등도 포함된다. 내 체력도 예전같지 않다. 이제는 살살 살아야 하나보다. 그런 몸을 지키려면 말이 통하면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짧은 여행도 체력 싸움이라, 체력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여행은 짜증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뎌진 호기심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거웠던 때가 있었다. 만약 여행을 한다면 그 시간은 나에게 어떤 것을 안겨줄까. 가슴이 뛰지 않는다. 어떤 목적을 위한 취재용 여행이라면 관심이 생긴다.  그저 즐긴다는 것이 내게서는 멀어진 것 같다. 


이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도 그렇다. 경제적 부담과 함께, 이제는 내 위기 상황에 달려와야 할 가족도 생각해야 한다. 그들에게 큰 불편이 없는 거리로 이사를 해야 한다. 이제 이 집의 계약기간이 1년 남았다. 얼마나 다행인가. 4년의 계약을 한 것이. 4년 계약을 할 새 집과 새 장소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내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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