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하레
바쁜 현대사회에서는 혼자 있는 시간조차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알람을 끈 손 그대로 폰을 들어 인스타그램 새 피드를 확인하고, 밥을 먹으면서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밥친구’로 틀어 놓고, 공부나 업무를 하면서 틈틈이 알람을 확인한다. 다른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터치 몇 번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자극은 너무나도 쉽고 강렬하다.
휴식이 쉴 휴에 쉴 식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어쩌면 최근 들어 한 번도 휴식다운 휴식을 취한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완벽하게’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 역시 일종의 강박 같기도 하다. 그러나 끊임없이 시청각적 자극을 소화해야 하는 뇌를 생각한다면, 적어도 그에게는 완벽한 휴식이 필요할 것 같다.
언젠가부터 명상을 추천하는 글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효리네 민박>을 통해 요가와 명상을 하는 이효리와 <고등래퍼 2>에서 취미가 명상이라고 말한 김하온, 그 외 SNS에서 명상의 장점을 설파하는 사람들…
그런 글들을 찾아볼수록 ‘이건 내가 해야겠는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반려병’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긴장된 근육, 산만한 정신, 불면증, 무기력증, 편두통… 명상 추천글들은 거의 현대인의 반려병 치료에 대한 간증이었다. 명상을 하는 사람들은 삶의 중심이 온전히 자기에게 있는, 내면이 단단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도 명상을 꼭 일상 루틴에 추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명상’을 떠올리면, 개인적으로 티베트 음악을 틀고 요가매트 위에 가부좌 자세로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생각난다. 이때 초록색 나뭇가지가 드리운 창가로 햇빛이 적당히 따사롭게 비치고… 옷은 요가복이나 법복이어야 한다. 일단 이런 요상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명상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자.
명상에 대한 정의는 “고요히 눈을 감고 차분한 상태로 어떤 생각도 하지 않는 것”, “자신을 온전히 알아 가는 과정, 즉 나의 ‘내면적인(inside)’ 모습과 ‘외부적인(outside)’ 것에 대해 내가 반응하는 방식 모두를 알아 가는 과정”, “일어나는 생각을 알아차리고 지켜보는 것, 생각 없는 고요한 마음에 도달하는 것” 등 매우 다양하다. 공통점은 차분하게 나의 내면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저것 관심을 갖고 찾아보니 방식도, 유형도 꽤나 다양했다. 하지만 입문자는 역시 클래식! 기초 명상부터 익혀 보기로 했다. 먼저 규칙적인 명상 시간은 아침, 기상 직후로 정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든 늦게 일어나든 나가기 직전이 되면 항상 마음이 바쁘고 성급해졌기 때문에, 오히려 아침을 명상으로 시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시작하는 하루는 허둥대며 얼레벌레 시작하는 하루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물론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 엄청난 도전이었다. 미라클 모닝을 하기에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 자체가 미라클인 수준이니까. 이참에 침대에서 바로 일어나는 습관까지 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음으로는 명상을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보자. 고요하고, 집중할 수 있으며,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어야 한다. 음악은 잔잔하고 반복적인 리듬이 좋다. 향에 민감하지 않다면 인센스 스틱을 곁들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아침, 눈 뜨자마자 침대에서 내려와 향을 피우고 앉아 15분간 명상하는 것. 이것을 내 하루 열기 루틴으로 넣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약 한 달간 명상에 도전해 봤다.
명상은 쉬워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진입 장벽이 높기도 하다. 뭔가 이런저런 제약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바쁘게 살면서 시간을 내어 가만히 있는 것도 생각보다 어렵다. 만약 명상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 글이 당신의 관심과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 입문(入門)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문고리 정도만 잡아 본 명상 초보자로서 이런 글을 쓰기에 조금 쑥스럽지만 가볍게 명상을 해 보면서 궁금했던 것들과 실제 경험한 것들을 풀어 보려고 한다.
| 명상, 진짜 할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십중팔구 그 즉시 코끼리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든 들게 된다. 명상을 할 때는 ‘생각하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라고 한다.
처음에는 이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생각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의 흐름을 타고 있었다. 마치 후룸라이드처럼… 특히 걱정과 불안은 급류처럼 불쑥불쑥 찾아와 방해한다. 아, 점심은 뭐 먹지. 이러다 잠들면 어떡하지. 오늘 할 일이 뭐가 있었더라. 몇 시까지 준비하고 나가야 하지. 그럴 때는 다시 호흡에 집중한다. 들숨과 날숨, 그리고 그 사이의 텀을 세거나 내 몸이 숨에 맞추어 팽창되고 수축하는 이미지를 상상한다.
명상은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호흡을 가다듬어 끊임없이 내면으로 인식의 방향을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 어떤 소리도 들리면 안 되나요?
눈을 감고 가만히 있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평소 일상에서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수많은 자극을 보고 들으며 살아간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면 시각이 차단되면서 불안함을 느끼고, 당장이라도 눈을 뜨고 주변에 무엇이든 눈에 담아 버리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든다. 또 대부분은 청각, 후각 등 다른 감각이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명상을 하는 공간이 반드시 쥐 죽은 듯 고요할 필요는 없다. 내 집에서는 창 밖의 구급차 소리, 아랫집 개 짖는 소리가 종종 들린다. 그런 소리는 나를 다시 현실로 되돌려 놓곤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열반에 들기 위해 명상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나는 지금 엉덩이를 땅에 붙인 채 현실에 살고 있다. 방해되는 소리가 있다면 조용히 귓바퀴로 흘려보내고 다시 호흡에 집중한다. 내가 산소 입자가 되어 폐로 들어와서 몸속 구석구석을 탐색하고 있다는 상상을 해 보자.
개인적으로 청각보다는 촉각을 통제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었다. 나는 바닥, 의자 등 눕거나 앉은 자세에서 닿는 부분을 제외하고 팔다리에 어떤 것도 닿지 않는 편이 좋았다. 촉감이 느껴지면 고요한 상황에서는 신경이 그곳으로 쏠리게 된다.
| 꼭 눈을 감아야 하나요?
물체를 앞에 두고 가만히 응시하는 명상, 걷기 명상 등 눈을 감지 않고 하는 명상 방법도 있다. 그러나 명상 초보자에게 명상을 하기로 마음먹은 시점은 마치 공부를 다짐하고 책상에 앉은 때와 같다. 아, 저 얼룩 전부터 신경 쓰였는데. 책 꽂힌 순서가 마음에 안 드네. 내 필통은 왜 이렇게 더럽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리고 참지 못해 정리부터 하게 되었다면. 그 뒤는 다들 알 것이다.
일단 집이라는 공간은 방해 요소가 너무 많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설거지거리, 빨랫감,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등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급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해야 할 일들이 널린 곳이 집이다. 명상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할 것이 아니라면 웬만해서 눈은 감도록 하자. 잠깐 저것들을 눈에서 치워 버리는 것이다. 하루 종일 보이는 자극을 처리할 뇌에게 억지로라도 쉬는 시간을 준다고 생각하자.
| 하다가 잠들면 어떡하죠?
요가를 잠깐 배웠을 때 오십 분의 수업 동안 가장 좋아하던 시간이 있다. 말을 잘 듣지 않는 몸으로 열심히 이런저런 동작을 취하다, 수업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하는 사바아사나, 일명 시체 자세이다. 대자로 가만히 누워 근육을 이완하고 숨을 고르는데, 아마 요가생들에게 아기 자세만큼 많은 사랑을 받는 자세일 것이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 수업 때 꼭 이 시간이 되면 어디선가 코 고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나도 가끔은 가물가물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명상이 조금 두려웠기 때문이다. 온몸의 근육을 이완하고 눈을 감고 있으면, 나처럼 잠이 많은 사람은 금방 잠들어 버릴 것 같았다. 그렇기에 명상에 대해 알아보면서 가장 먼저 찾아본 것이 이 질문이기도 하다. 잠들 것 같을 때는 잠시 눈을 뜨고 호흡과 정신을 다시 가다듬으라고 한다. 다행히도 아직 한 번도 잠들어 버린 적은 없다. 만약 인식할 틈도 없이 잠들어 버렸다면… 너무 피곤해서 내 몸이 잠을 필요로 했나 보다, 하고 차라리 잘 잤다고 생각하자…
| 가부좌… 어려워요
일반적으로 가부좌나 반가부좌 자세에서 허리는 곧게 펴고 손을 무릎에 가볍게 얹은 것이 기본 명상 자세로 많이 쓰인다. 그러나 사실 다리 모양보다 중요한 것은 허리를 곧게 펴는 것이라고 한다. 깊이 호흡할 때 숨이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척추를 단단히 고정할 수 있다면 굳이 가부좌를 틀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허리 건강을 위해 명상 전에 가볍게 스트레칭을 해 주면 좋다.
| 언제 하는 게 좋을까요?
아침 명상은 뇌를 가볍게 만들고 조금 더 정돈된 마음으로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게 해 준다는 장점이 있다. ‘아침’만이 갖는 어떤 에너지를 몸 한가득 채워 넣는 기분이다. 대신 저녁 명상은 하루 종일 자극에 시달린 뇌에 휴식을 준다. 하루 종일 있었던 일들과 기억이 머릿속에서 자기 방들을 잘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느낌이다. 불면증이 있거나, 조금은 고된 하루를 보냈다면 저녁 명상을 추천한다.
앞에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명상을 하겠다고 쓰긴 했지만, 사실 고백하자면 며칠 노력하다가 결국 명상 시간을 자기 전으로 바꾸었다. 그냥 아침에 급하게 준비하고 나갔다가 저녁에 집에 돌아와 마음을 정리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무래도 나는 아침형 인간은 평생 되지 못할 것 같다.
온전히 명상에, 그리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음악과 향기만큼 간편한 것은 없지만, 여기엔 개인 취향 차가 있을 것이다. 무음 무취, 유음 무취, 무음 유취, 유음 유취 중 이것저것 해보면서 본인에게 잘 맞는 방법을 찾기를 바란다.
혼자 냅다 시작하기에 명상이 아직 어렵게 느껴진다면, 명상 가이드 영상을 찾아보기를 추천한다. 개인적으로는 ‘에일린 mind yoga’ 유튜브 채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요가 채널이긴 하지만 명상 가이드 영상이 꽤나 잘 구성되어 있다. 적당한 길이, 잔잔한 배경음악, 편안한 목소리의 가이드를 따라가다 보면 15분이 금방 흐른다. 버전도 다양하기 때문에 가끔 바꿔 가면서 시도해 봐도 좋다.
사실 명상이 어디에 좋냐고 물어도, 콕 집어 대답하긴 어렵다. 갓 시작한 초보이기도 하고, “그냥 해 보면 안다” 따위의, 다분히 사이비 종교스러운 대답밖에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왜 좋은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나만의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기력증의 원인은 자기 삶의 통제를 잃은 데서 온다는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따라서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작은 성취를 이루어 결정권을 돌려받는 느낌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호흡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것이다. 들숨과 날숨, 그리고 그때마다 움직이는 내 몸을 인식하면 ‘지금 여기, 이 순간에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또한 외부의 자극이 아닌, 외부에 반응하는 내면에 집중하는 것 역시 간접적으로나마 내 삶의 통제력을 돌려받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명상은,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로 튀는 내 생각과 마음을 현재로 가져오는 시간이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은 사실 내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란 내가 인지하는 찰나의 순간에도 후다닥, 지나가버리는 허상의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우리는 스스로를 현재에 매어 두어야만 한다. 찰나일 뿐인 현재에 살아 있는 나를 인식하고 그 순간순간을 깊이 있게 산다는 것은 결국 삶의 모든 시간에 뿌리내리고 산다는 것이다.
명상, 별거 아니다. 하지만 별거 아닌 일로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명상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이 바쁘고 급할 때, 그 일에 너무 골몰하기보다 15분만 내 내면에 투자해 보자. 눈을 뜨면 뭔가 새로운 생각이 날지도 모른다. 명상, 진짜 별거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