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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May 19. 2019

사흘짜리 전주영화제

2019. 5. 6 - 8, 장편

1. 웨딩 게스트(The Wedding Guest)

- 마이클 윈터바텀


 결혼식에서 신부를 납치하러 가는 영국인 해결사 제이의 이야기다. 배경은 파키스탄. 납치는 이야기 도입부에 성공하지만 문제는 의뢰자에게 신부를 전달하는 과정이다. 의도치 않은 사고로 납치를 의뢰한 그녀의 애인이 신부를 돌려보낼 것을 요구하면서 신부와 해결사는 오랜 시간 동행하게 된다. 이후 보니와 클라이드 같은 관계가 된 둘 사이의 긴장감은 영화 내내 흐른다. 그 긴장감이 공범자 관계와 남녀 관계를 오고 간다.


 의심과 애정이 섞인 눈빛으로 바라보는 신부와 그 눈빛을 외면하는 해결사의 모습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인도와 파키스탄을 주무대로 한 영화 속 배경은 유럽과 미국이 익숙한 관객에게 결이 다른 이국적 감각을 선사한다.



2.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If Beale Street Could Talk)

- 베리 젠킨스


 문라이트로 유명한 감독이라 예매가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전날에도 표가 여유 있었다.


 빌 스트리트는 멤피스 주에 위치해 있다. 시대적 배경은 50년대, 같은 제목의 원작 소설의 저자는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이다.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는 남자와 그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 영화 속 시간은 남자가 감옥에 갇힌 현재와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었던 과거를 교차한다. 불의한 현실 속에 행복했던 과거를 넣음으로써 영화는 관객에게 분노보다 부당함, 슬픔, 무력감 같은 감정을 유발하게 한다. 마치 보는 사람이 누구든 그 당시 빌 스트리트에서 벌여진 부당한 대우에 저항할 수 없게끔 말이다. 그러한 공감 유도가 세련되었다고 느껴지는 건 영화 속의 색감과 과거 씬에 주로 나오는 몽환적인 음악 때문일지 모른다.


 이 영화는 조만간 개봉할 것 같다.


3. <황해 감독판>

- 나홍진


 2시간 20분의 러닝타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몰입감이 영화를 지배한다. 중국-울산-서울 사이를 오가는 하정우의 여정이 지옥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영화는 밑바닥의 끝을 보여주려고 작정한 듯하다. 주목하고 싶은 건 하정우가 맡은 조선족 구남의 역할. 언제부턴가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 조선족은 캐릭터를 형성하기보다는 도구적인 역할을 맡아왔다. 범죄도시, 신세계, 아수라 같은 영화에서 등장한 그들은 잘 씻지 않은 몰골에 도끼 같은 걸 들고 도살자 같이 무차별적으로 상대를 죽인다. 그러기에 인물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그들 들고 있는 도끼처럼 영화 내에서 잔인한 사건을 암시하기 위한 도구적 성격을 지닌다. <황해>는 조선족 캐릭터를 전면에 세운다. 실제로 순전히 돈 때문에 얼굴도 모르는 남자를 죽이러 바다를 건넌 구남은 이야기 중반까지 종래의 조선족 역할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중반부 이후 자신을 쥐고 휘두르는 자들이 궁금해진 그의 변화는 이 영화가 잔인함과 몰입감 말고도 분명한 사회적 메시지가 있음을 알려준다. 영화가 도끼 자체의 잔인함보다 휘두르는 자들의 비인간성을 비출 때 이 영화는 무엇보다 빛난다.


 물론 표현되는 장면은 그저 지옥일 뿐이지만. 나홍진 감독의 신작은 분명 엄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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