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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Aug 22. 2021

헤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도이 노부히로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도이 노부히로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위기를 헤쳐나가 이어지는 게 멜로영화다운 결말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헤어지고 각자의 삶을 선택하는  드 엔딩은 아닌데 말이다. 없으면 못 살 거 같은 연인과 막상 헤어지고 시간이 지나면 밥 잘 먹고 산다는 걸 경험으로 체득했기 때문 아닐까? 그즈음 꽂힌 영화가 <라라 랜드>와 <500일의 썸머>다. 사실 삶의 가능성 측면에서 보면 헤어후에 관계를 정리하고 이후의 일상에서 가끔씩 좋았던 기억을 상기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피엔딩이다. 물론 현실은 엔딩 같은 것 없이 쭉 이어지지만 말이다. 역으로 <라이크 크레이지>처럼 마음이 식은 채로 끝내 놓지 못한 인연 끝없는 권태로 느껴져 전혀 해피엔딩 같지 않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라는 제목은 명백히 과거형이다. 제목부터 관계의 절정은 이미 지났다는 걸 암시한다. 꽃다발은 시간이 지나면 시든다.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유지기간은 다르겠지만 언젠가는 땅에 묻힌다. 제목을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다. 결국에 둘은 헤어지겠지. 예전 같으면 제목만 보고 피했겠지만 오히려 흥미가 돋았다. 일본 영화는 문장형 제목을 선호한다. 감독인 도이 노부히로의 이전 작품인 <지금, 만나러 갑니다>나 각본가인 사카모토 유지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처럼 말이다. 반면 한국이나 국내 영화는 명사형 제목을 선호한다. <기생충>이나 <명량>, 혹은 <트루먼 쇼>나 올해 오스카 수상작인 <노매드랜드>처럼 말이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꽤 전형적인 일본 멜로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꽤 일본스러운 영화였다, 좋은 의미로.



 영화 초반부에는 주인공인 키누(아리무라 카스미)와 무기(스다 마사키)가 혼자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신변잡기스런 독백을 이어간다. 키누가 식빵을 먹을 때마다 바닥에 떨어트리면 항상 버터를 바른 부분이 땅바닥에 닿는다던지, 무기가 구글 뷰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신나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다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장면들의 나열은 화의 도입부에서 둘이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만한 개연성을 만들어두기 위한 부분이다. 장면의 나열 속에서 영화는 둘이 같은 뮤지션의 콘서트 티켓을 가지고 있음을 슬쩍 보여준다.


 기와 키누는 막차를 놓치면서 처음 마주친다. 늦은 시간까지 하는 술집에서 무기가 유명한 애니메이션 감독을 발견하고 키누만 같이 공감한다. 키누는 아무도 공감하지 않아 어색해하는 무기의 모습을 조용히 보고 있다가 돌아가는 길에 슬쩍 가서 자기도 알아보았다고 말한다. 그 다음부터는 물 흐르듯 가까워진다. 둘은 마치 테스트를 하듯 자기가 좋아하는 책과 영화의 목록을 늘어놓는다. 키누는 무기의 책장을 둘러보며 자신의 책장과 거의 똑같음에 감탄하고 무기는 그 모습을 일러스트로 남긴다. 얼마 안 가 둘은 연인으로서 관계를 시작한다.


 연인의 정의는 다양하겠지만 그중 하나는 '공통점으로 시작하고 차이점으로 끝나는 관계'일 게다. 무기와 키누도 마찬가지다. 둘은 좋아하는 작가나 음식취향, 말버릇까지 사소한 부분에서 공통점을 찾으면 기뻐한다. 연인으로서 단계를 하나씩 밟아가며 동거까지 하는 그들은 연애 호르몬이라 불리는 옥시토신 분비가 줄어드는 3년 차부터 관계가 삐걱거린다. 학생일 때 만난 그들은 취업의 관문을 통과한 후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한다. 키누의 경우 나름 중간에서 균형을 잘 맞추는 편이라면 무기의 경우 하고 싶었던 일러스트 일을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회사 영업직으로 취직을 하면서 균형을 잃고 해야 하는 일에 몰두한다. 작은 말싸움이 이어지고 감정의 타이밍이 어긋난다. 이윽고 싸움마저 포기한 순간, 둘은 서서히 깨닫는다. 사랑의 감정은 식었고 연애 유통기한이 끝난 거 아닐까 하는. 전환점이 되는 사건으로 무기와 가까운 선배가 죽었을 때 무기는 슬픔에 빠져 키누의 공감을 바랐지만 키누는 그 선배가 여자친구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걸 기억하며 슬픔에 공감하지 못 다.



 감정이 식어갈 때 둘은 다른 선택을 한다. 키누는 이별을 생각하지만 무기는 결혼을 생각한다. 감정의 끝을 보았어도 관계를 끊고 싶지 않았던 아집 때문이다. 과거 결혼 상대를 어떤 기준으로 선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견딜 수 있는 상대'라는 답을 들은 적이 있다. 호감이 높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비호감이 얼마나 적은가로 선택한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무기가 결혼하자고 한 건 그런 이유가 아닐까 한다. 물론 키누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기에 둘의 관계는 서서히 끝을 맞이한다.


 독립된 존재였던 그들이 하나가 되고, 다시 둘로 돌아가는 수미상관적인 전개의 스토리는 철저히 둘의 관계에 집중한다. 거기에는 매력적인 제3의 존재나 집안의 반대 같은 사건 같은 건 없고 시간이 지나면서 둘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있다. 상대의 눈에 집중하며 뚫어질 듯 바라보던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집에서 무기는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잔업을 하고 키누는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침대에서는 서로 등을 마주하고 잔다. 하지만 관계의 끝에서 둘은 다시 한 번 서로의 눈을 마주한다. 시든 꽃의 기억 속에서 만개했던 꽃다발 같은 시절을 떠올린다.


 영화는 사랑이라는 감정 새싹처럼 서서히 땅 위에서 올라와 꽃으로 만개했다가 서서히 시들고, 땅에 묻히는 과정을 그렸다. 종래의 멜로 영화가 꽃이 봉오리를 틔우고 만개하는 부분에 플레이 타임의 많은 비중을 넣고 결말부의 극적인 사건을 넣는 것과 대조적으로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관계의 기승전결에 균등한 시간을 배분한다. 끝없는 사랑을 할 것 같았던 두 사람이 함께 지내는 시간이 쌓이면서 식어버린 감정을 마주하고, 함께했던 시간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제대로 끝을 내려하는 노력을 보여줄 때가 비로소 이야기의 절정이다.



 처음부터 둘이 헤어질 줄 알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결말이 다른 방향으로 가길 바라는 건 연출 곳곳에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를 넣어 마치 내가 연애하는 듯한 느낌을 주어서 일게다. 서로의 손을 잡고 다른 손에는 상대방에게 건네줄 꽃다발을 든 그날의 모습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건 보편적인 공감의 요소다. 안타깝게도 그랬던 관계도 결국엔 끝이 난다는 게 보편적 진리지만 말이다.


 애니메이션 실사화와 과장된 연기로 점철된 최근의 일본 영화지만 적어도 멜로라는 영역에서는 한국 영화 이상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 만일 나의 연애가 또 끝을 맞이한다면 <중경삼림>을 보며 아픈 마음을 달래고, 이 영화를 보며 감정을 정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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