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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Dec 29. 2016

2년 만에 처음 두드린 문

대답은 없었다, 아쉽게도

 12월 12일, 우울한 나날 속 간만에 좋은 소식을 들었다. 집주인으로부터 동일한 조건으로 재계약 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로써 작년 초에 들어온 이 집에 2년 간 더 눌러 앉을 수 있게 되었다. 대학가라서 물가도 싼 편이고 바로 옆에 공원과 도서관이 있어 차분하게 지내기 좋은 동네다.


 비슷한 조건의 다른 집과 비교해서 10-20만 원 정도 월세가 싸고 집주인의 케어도 꼼꼼하다. 벽에 곰팡이가 슬거나 세탁기가 고장나는 등의 문제가 생기면 전화 한 번에 웬만한 건 오케이. 다시 돌이켜봐도 재계약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맘편히 몸을 누일 공간을 2년 간 더 유지할 수 있다니.


 주거의 안정이 새삼 의미있다고 느껴지는 건 지난 7년간의 서울 살이에서 내 집이라는 공간을 이토록 유지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지하방의, 그것도 2인 1실의 하숙으로 시작한 서울 생활이 세 곳의 기숙사, 고시원, 선배의 자취방으로 옮겨 갔다. 같은 곳에 1년 이상 있어 본 경험이 없었다. '내 물건을 채울 수 있는 내 공간'이라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마치 말로 하지 않아도 내 맘을 다 알아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비현실성.


 그 날은 친구가 나눠 준 싱싱한 딸기를 먹으면서 앞으로의 2년을 그리고 있었다. 고향 집에서 많이 보내줘 나한테도 두 상자 줬다. 자취생에게는 드문 풍성한 비타민이다. 뜻밖에 찾아온 식(食)과 주(住)의 안정으로 너그러워진 내 마음은 이웃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지난 2년 동안 내가 아는 이웃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우선 라스베이거스에서 10년 넘게 살다 온 집주인 사모님 덕에 우리 원룸 건물은 절반이 외국인이다. 오다가다 얼굴이라도 마주치면 외국식으로 'hi~'라도 해야할 까 매번 고민이었다. 그러나 인사를 건넬 때 마다 보여주는 그들의 어색한 반응에 가볍게 목례를 하는 정도로 바꿨다. 여기는 뉴욕의 아파트먼트가 아니라 서울의 대학가 원룸이었다.


 내가 사는 1층의 구성원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현관을 기준으로 맨끝은 나, 104호. 103호댁은 매일 새벽 3시에 문여닫는 소리가 들리기에 늦은 시간에 일 하는 사람이라고 짐작한다. 다만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이 남자일 때도 있고 여자일 때도 있어서 거주자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 동거 중인 커플일려나. 102호에는 여름에 이사 온 금발의 백인 여자와 종종 담배를 피러 나오는 무기력한 인상의 키 큰 남자가 동거 중인듯 하다. 지나가다가 마주친 적 있는데 여자의 '오빠'라는 한국어 발음이 꽤나 정확했던 게 인상에 남는다. 101호엔 짧은 갈색 머리의 구한말 안경이 잘 어울리는 백인 남성이 사는데 최근에는 거의 못 마주쳤다.


 2년 가까이 살았는데도 이웃에 대한 정보가 고작 이 정도다. 씁쓸함이 멤돌았다. 냉장고에는 아직 개봉하지 않은 딸기 한 박스가 있었다. 흐르는 물에 씻고 일회용 접시에 담았다. 103호에 사는 게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인하고 102호에 사는 여자로부터 나도 오빠라고 불릴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접시를 들고 옆집 문 앞에 섰지만 문을 두드리기 직전 망설임이 찾아왔다. 2년간의 무관심이 빚어낸 망설임이었다. 갑자기 문을 두드리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딸기를 못 먹는 사람이면 어떡하지? 백인 여자가 갑자기 영어로 말을 시작하면 어떡해야 될까? 애초에 딸기를 들고 남의 집 현관 앞에 한참을 서 있는 게 제일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벨을 눌렀다. 벨을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 생각 난 인삿말은 '안녕하세요, 104호 사는 사람인데요, 딸기를 좀 많이 받아서요. 싱싱한데 괜찮으면 좀 드실래요? 아뇨 별 의미는 없고 딸기를 많이 받았는데 싱싱할 때 나눠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같은 평이하고 개성 없는 말뿐. 하지만 1분이 지나도 아무 응답이 없었다. 너무 일찍 왔나? 새벽 3시 이후에 다시 찾아와야 할까? 102호로 갔다. 안에서는 음악 소리가 들렸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벨을 눌렀다. 음악 소리는 끊기지 않았지만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벨을 한 번 더 눌러봤다. 응답이 없었다. 샤워 중인 걸까?


 101호까지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위 층으로 올라갈까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집에 돌아와 딸기를 용기 안에 다시 옮겨 담았다. 옮기다가 하나 먹은 딸기의 신맛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딸기는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가 제철이란다. 최근에 알게 된 상식이다. 꿍꿍이가 무릎 위에 올라 앉길래 줘 봤더니 핥아 보고는 표정을 찡그린다. 고양이 입맛에도 신가보다.


 2년 만에 처음 누른 벨은 뻑뻑했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하면 특별한 경험을 통해 삶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가출한 홀필드나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기차에 탄 어느 노선생처럼. 그러나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아서 안 하던 행동의 결과는 허무함이었다. 역시 이야기가 현실보다 낫다.



 이사 온 직후 직접 사와서 조립한 이케아 가구들은 어느새 익숙해졌고 자취를 하면서 새로 산 피아노 위에는 어느새 먼지가 뽀얗게 쌓였다. 악보대는 읽다 만 책을 꽂아두기에 안성맞춤이다. 올해 6월부터 같이 살기 시작한 고양이 꿍꿍이는 여름에 누울 시원한 공간과 겨울에 웅크릴 따뜻한 공간을 찾았다. 책장에 가득 꽂힌 책은 부족해 보이기만 한 지난 삶이 어떤 부분에선 풍성하다는 점을 방증해준다.


어느날 Joey가 직접 그려서 보내준 내 방의 인테리어 제안. 말도 안되는 오지랖이다.


 열 평짜리 원룸, 이 집에서 보낼 새로운 2년.
잘 부탁한다, 우리 집.
잘 해 보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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