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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Apr 02. 2017

먼지 낀 일요일, 집에서 노래나 들을래

일기를 가장한 추천, 프롬(Fromm)

 상쾌한 일요일...이었을 터이지만 아침 하늘은 구름 가득하고 눈앞의 풍경은 옅은 노란 톤으로 가득 채워졌다. 오늘 미세먼지는 '나쁨'


 새롭게 시작한 영화관 일은 주말에 일하고 평일에 쉰다. 8시에 집을 나섰다. 주말이라 지방에서 놀러 온 친구는 출근길에 먹을 것을 사러 같이 나섰다. 바로 앞 편의점에서 사면될 것을 굳이 역까지 같이 가줬다. 대화는 했지만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서로의 오늘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일, 그는 휴일에 관해.



 집에서 15분 걸리는 역까지의 길이 짧게 느껴졌다. 평소 지루했을 터인 이 시간이 녀석과의 대화로 즐거웠다. 즐거운 시간은 언제나 짧게 느껴진다. 세상 이치의 안타까운 모순. 역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우리는 떨어졌다. 그는 점심을 먹고 전주로 내려간다 했다. 문득 일요일에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없는 게 안타깝게 느껴졌다. 주말 출근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서글픔.


 애니메이션 전용극장이라 휴일에는 그냥 즐거운 아이들과 그들을 바라보면서 즐거운 부모들이 즐비했다. 밀폐된 티켓박스의 네모난 구멍으로 바라 본 그들의 모습은 나와는 단절된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언뜻 봤을 때 모습. 즐거운 아이들의 얼굴의 개중엔 약간의 지루함이 보였다. 낯익은 얼굴인 걸로 봐 부모님이 주말마다 대충 시간 때우려고 자주 오는 게 아닐까. 손을 잡고 따라오는 아이들은 이미 진작에 질려버린 것도 모르고. 등산복 차림의 노곤한 아저씨와 그 손을 붙잡고 하루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찬 아들내미. 만약 여기가 골프장이나 낚시터라면 그 표정은 반대가 되지 않을까?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누나와 동생이 손을 잡고 박스로 다가왔다. 누나의 얼굴에 보이는 책임감에서 부모가 같이 안 왔으리라 짐작했다. 맏이의 표정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얼굴에 주름처럼 남겠지.


 나는 그 조그마한 공간에서 그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문득 떠오른 건 키에 비해 조그마한 티켓 박스 때문에 상자에 갇힌 골리앗 같은 내 모습은 그들에겐 어떻게 보일 까였다. 골리앗도 어렸을 땐 조그마했고 아버지 손을 잡고 어딘가 놀러 갔을 텐데 그 기억은 아늑했다.



 좁은 곳에 오랫동안 앉아 있으니 답답했다. 마침 다른 직원이 들어와서 잠시 밖으로 나왔다. 담배라도 한 대 태우며 속을 풀고 싶었지만 방문객과 대면하는 일을 하는지라 그럴 수는 없었다. 먼 곳, 훤히 뚫린 공간을 상상했다.


 내일은 쉬는 날이다. 지난 주 수요일, 다른 곳의 1차 면접 합격 연락을 받았고 내일 그곳의 최종 면접을 앞두고 있다. 반년 뒤에 제주도로 이전한다는 작은 공기업. 제주도의 삶을 상상했다. 다른 이들처럼 주중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여행하듯 값싼 중고차를 몰고 섬 여기저기를 누빌 수 있겠지. 육지에 사는 친구라도 놀러 오면 같이 여기저기 다니며 누군가의 여행을 동행하는 일상. 그리고 그곳에서 새롭게 쌓는 인연. 거기서 써내는 글도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을까? 공기도 분명 여기보다 맑을 테고.


나는 왜 여기에 있지?

 

 복잡한 마음속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이 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 구석에서 찾아낸 이 곳에 있는 이유.


 영화를 좋아했고 그 이상으로 영화관이라는 공간을 좋아했다.


 첫 번째 장면, 집에 내려갈 때마다 어머니 손을 붙잡고 갔던 영화관. 관람을 마치고 돌아오는 밤에 나눈 감상. 그 때 어머니는 소녀의 얼굴이었다. 가끔씩 보이는 그 얼굴이 일상을 영화의 한 장면으로 만들어줬다.


 두 번째 장면, 답답한 가을밤, 자전거를 타고 갔던 심야의 영화관. 밤의 빈 거리 속 한산함과 거의 텅텅 비다시피 한 극장의 좌석. 그중의 한 칸을 차지하고 어두워진 공간 안에서 특별함을 느꼈다.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든 영화를 보는 그 시간 동안 잊어버렸다. 시야를 가득 채운 화면과 실내 공기를 채운 듯한 음향에서 오롯함을 느꼈다.


 때문에 나는 좁은 티켓박스에 앉아 있었다. 영화관이라는 공간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에서 삶의 보람을 얻으리란 기대는 진작에 포기했을 터인데.





 잡에 도착하니 8시였다. 당연하지만 녀석은 가고 없었다. 전화했다.


 "내려갔냐?"

 "어, 형! 나 아직 버스 안이야."

 "꽤 늦었네. 점심 먹고 내려간다 그러지 않았어?"

 "그게 일이 있었어, 좋은 일이."


 녀석 목소리에 기분 좋은 흥분감이 맴돌았다.


 "뭔데?"

 "그게......"


 이러쿵저러쿵


 배경 묘사부터 시작할 때 이미 그 얘기는 30분 이상이 예약되어 있었다. 20분이 지났을 때 폰의 스피커를 켜고 빨래를 개기 시작했다.


 "암튼 이번 서울 방문은 좋았어?"

 "물론!"


 어제는 분명히 망했다고 한 거 같은데.


 "형은 어땠는데?"

 "뭐... 똑같지, 주말이라 바빴고."

 "그렇고만. 내일 최종면접이지? 준비는 했어?"

 "아니, 1차 때도 거의 준비 안 했는데 뭘. 합격해도 안 갈지 모르고."

 "공기업인데?"

 "한 달 전이었으면 가겠지만 지금은 일단 돈도 벌고 있고. 좀 생각해봐야지. 제주도에 가면 왠지 영화관 쪽 일을 영영 포기할 것 같아. 다음 달이면 공채도 시작할 텐데."

 "음, 그래도 왠지 이번엔 잘 될 거 같은데?"

 "무슨 근거야 그건?"

 "그냥 기분이 좋아서. 형한테도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어지간히 좋았나 보네. 오늘 날씨도 흐렸는데."

 "지금은 밤이잖아. 날씨가 어떻든 상관없는 시간이지."

 "그렇네."


 날씨가 흐리던 맑던 상관없는 시간. 밤이 되면 그 날이 흐렸는지 맑았는지의 의미는 옅어진다. 녀석에게 전염된 건지 저무는 밤에 내 우울함이 녹아 없어진 것 같았다.


 스탠드를 켜고 노트북을 폈다. 글을 쓰면서 아무 근거 없이 지금의 나도 꽤 괜찮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흐린 날의 끝에는 내일은 오늘보다 맑을 거라는 기대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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