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배운 나를 지키는 방법

by 로보트황

요즘 나는 인간관계를 다시 배우고 있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어디까지가 나의 영역인지 천천히 살펴보게 되었다.

최근 읽은 다크심리학 책의 문장들이 유독 마음 속에 오래 남았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끊임없는 호의를 베푼다면,

그것은 당신이 ‘선택할 수 없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다.” (p.192)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예전부터 타 팀에서 일하던 분이었는데,

특별한 이유도 없이 늘 나에게 잘해주던 분이었다.

좋은 의도일 거라고 스스로 해석했지만,

속으로는 ‘언젠가 나에게 무언가를 부탁하시겠지?’ 하는

막연한 부채감이 늘 따라다녔다.

책의 문장을 보고 나서야 그 감정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호의 뒤에는 목적이 있을 수 있다.

공짜 호의는 없다.

이제는 상대의 행동을 미리 단정 짓지는 않되,

왜 그러는지 차분하게 관찰하려고 한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내 마음을 내어주지 않기로 했다.

책은 또 이렇게 말한다.

“서로가 원하는 것과 줄 수 있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서로 동의하는 과정을 거친다.” (p.199)

이 문장을 보면서

나는 그동안 ‘상대가 원하는 것’만 먼저 생각했지,

정작 내가 줄 수 있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 불균형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마음에 남았던 문장은 이것이었다.

“상대의 고통은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p.201)

나는 그동안 거절이 어려운 사람이었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면,

그게 어떤 부탁이든 ‘내가 해줘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필요로 한다는 말 뒤에 숨은 의무감이 늘 내 어깨를 잡아끌었다.

최근에 그 성향 때문에 오래 알고 지낸 친구와 크게 싸운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어진 인연이었기에

그 친구는 내 감정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그 친구와 사이가 좋지 않은 또 다른 친구가 결혼 소식을 전하며

청첩장을 전해왔다.

“너와의 인연은 꼭 함께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나는 자연스럽게 결혼식에 참석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든,

결혼이라는 일생의 순간에 초대받은 마음을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초등학교 친구는

엄청난 분노를 표현했다.

나를 이해하기보다

자신의 상처를 기준으로 나를 판단했고,

결국 손절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며

1년 가까이 연락을 끊었다.

그때의 나는 깊은 혼란 속에 빠졌다.

“내가 잘못한 걸까?”

“내가 그 결혼식에 가지 말았어야 했나?”

예전 같았으면

이 질문의 책임을 모두 나에게 돌리고

머릿속을 뒤척였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읽은 책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1. 상대의 고통은 내가 책임질 문제가 아니다.

2. 내가 준 적 없는 빚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3. 거절은 공격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권리다.

이 세 문장이 나를 단단하게 일으켜 세웠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었다.

그 친구는 나를 존중한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덜어내기 위한 쓰레기통처럼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 결혼식에 간 선택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기준으로 나를 통제하려는 방식이 문제였다.

그제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관계에서 중요한 건

상대의 감정을 모두 안아주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이 침해되지 않도록 지키는 일이다.

한 번 깨닫고 나니

다음부터는 절대 같은 방식으로

내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조용하지만 확고한 약속을 나 자신에게 할 수 있었다.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관계를 지키기 위해 나를 버릴 필요는 없다.

진짜 중요한 건

그 관계 속에서도 ‘나’를 지키는 일이다.

오늘도 나는

타인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나를 이해하려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연습은

생각보다 훨씬 더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keyword
이전 05화나의 특기는 꾸준한 덕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