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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칼두 Aug 13. 2020

이해관계

"저는 아이를 낳지 않겠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면서 한 손엔 한약 한 봉다리를, 한 손엔 반찬 한가득 싸 온 시어머니를 보자마자 내가 한 말이었다. 남편은 왜 그러냐면서 황급히 나를 말렸고, 시어머니는 구겨진 표정을 애써 피며 괜찮은 척 나를 이해한다고 말을 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이미 식어버린 지 오래된 식탁 위 된장찌개처럼 싸늘했다. 남편은 상황을 모면하고자 시어머니에게 다정한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건 헛수고였다. 시어머니는 퉁명스럽게 짧게 대답을 했을 뿐이고 어색한 침묵은 우리의 식탁을 가득 채웠다. 우리 입에 들어가는 건 음식이 아닌 침묵이었다. 음식에선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자 시어머니는 급히 할 일이 생겼다며 부랴부랴 집을 떠났다. 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물론 그건 평소 나답지 않은 말을 한 내 탓이 크겠지만. 남편은 자신의 엄마를 배웅한 뒤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나를 보며 말 한마디를 툭 던졌다. 

"당신, 왜 그런 거야?" 

남편의 표정을 찬찬히 쳐다봤다. 화난 것 같진 않았다. 어떤 표정인 것 같다고 단정짓기엔 애매한 표정이었다. 

글쎄. 왜 그랬을까. 내가 무슨 바람이 들어서 평소에 하지도 않던 그런 감당도 못 할 말을 했을까.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모르겠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이었고, 그건 사실이며 진실이었다.  

"모르겠다고? 이유도 모르면서 그런 말을 한 거라고?" 

내 말을 들은 남편은 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나는 원래 무례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늘 내가 하는 행동은 남들에게 납득됐다. 나에겐 내 행동을 설명할 말주변이 없었고, 굳이 행동을 위해 말을 하는 것도 불편했다. 그래서 내 행동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가 될 행동뿐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상냥하다며 좋아했다. 

근데 그렇게 사는 거 이젠 너무 지긋지긋한 거 같아. 너무 지쳤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남편은 대화 좀 하자며 냉장고에서 그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맥주 두 캔을 꺼내왔다. 내 손에 맥주 한 캔을 쥐여줬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좋았다. 대화를 많이 하려 했고 나를 이해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결혼했던 것 같다. 그만큼 나를 위해 노력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한 노력이 결과로 이어졌는진 잘 모르겠지만.  

남편은 말을 시작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왜 엄마한테 그런 말을 했는지, 아이를 낳는다는 데 부담이 있는 건지, 아니면 아이를 키우는 것에 부담이 있는 건지. 그런 말들을 나에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특별한 말은 없었다. 내가 가진 언어 중 그가 이해할 언어는 없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우울증을 억지로 꾸며 동정이라도 받을 수도, 아니면 너무 부담감이 심해 말이 잘못 나온 거라며 변명하는 시늉이라도 했겠지만, 나에겐 그런 행동을 할 이유조차 없었다. 

남편은 맥주 몇 캔을 더 가져왔다. 이제는 다른 성격의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우리의 이야기는 해결되지 않았는데. 

우리가 행복했다고 믿고 있는 대학교 연애 시절부터, 그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이 맴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시하기 짝이 없지만, 그땐 왜 그렇게 울고불고 했었는지.  

그래. 그때의 추억들이 있어서 지금 함께 있는 거겠지.

 남편은 추억을 안주 삼아 계속 맥주를 들이켰다. 남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결국 몸을 휘청거렸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남편의 얼굴을 바라봤다. 추억 속에 있던 그 얼굴은 다소 남아있었지만 변한 부분이 더 많았다. 하지만 싫지 않았다. 그만큼 함께 한 시간이 오래되었다는 증거니까. 이 사람만큼 나에게 괜찮은 사람은 없었다. 그것만큼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난 당신을 아직도 잘 모르겠어···." 

남편은 술 냄새가 물씬 나는 말을 남기고 그대로 잠들었다. 

여전히 취하면 잠드는 건 변함없네. 

방에서 이불을 가져와 남편을 덮어줬다. 곤히 잠든 걸 확인하고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허공에서 남편의 말이 맴돌았다. 

나도 그래. 날 잘 모르겠어.     

아침이 되었다. 콩나물국을 끓였다. 남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없이 아침을 먹었다. 국그릇은 바닥을 보였다. 남편은 출근을 준비했다. 어제 일은 이렇게 희미해지나 싶었다. 

그건 착각이었다. 

“당신, 어제 생각 진심이야?” 

출근하기 위해 문 쪽으로 걸어가던 남편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나는 남편의 물음에 할 대답은 없었고, 대신 다른 말을 했다.  

“나 물고기 키우고 싶어.”

어디서 나온 생각인지 모르겠다. 

“물고기? 갑자기 웬 물고기?“ 

남편은 완전히 몸을 돌려 내 눈을 바라봤다. 

“그냥.”

정말 아무 이유도 없었다.

“그럼 어떤 거로 사다 줘?”

“아무거나.”

“아무거나가 어딨어. 기왕 키울 거면 잘 생각해야지.”

“고민해보고 말해줄게.”

“알겠어. 생각나면 문자줘.”

남편은 그렇게 출근을 했다. 오전 내내 어떤 물고기를 살지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물고기는 없었다. 아무것도 결정한 것은 없었고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남편이 문자를 보내왔다. 물고기를 골랐냐는 내용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고르지 못했다고 답장을 보냈고, 남편은 결정되면 알려달라는 문자를 다시 보내왔다.   

 나는 정말 물고기가 키우고 싶은 걸까. 왜 키우고 싶은걸까?

 곰곰이 생각했지만,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오늘은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남편이 올 시간에 맞춰 저녁 준비를 했다. 제육볶음을 했다. 남편은 내가 한 제육볶음을 좋아했다. 남편이 올 시간이 되었고 그 시간에 맞춰 식탁 위에 음식들을 가지런히 놓았다. 준비가 거의 끝날 때 남편이 들어왔다. 남편의 손에는 큰 어항이 있었다. 

남편에게 물었다. 

“웬 어항이야?” 

“당신 키우고 싶다며. 키울 준비는 미리 해야지.”

남편은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먼저 저녁 먹고 해. 당신 좋아하는 제육볶음 해놨어.”

“우선 이거부터 하고.” 

남편은 양복도 벗지 않은 채 어항 설치를 시작했다. 시간이 10분 남짓 지나자 남편은 쉽지 않은지 잠시 멈춰 허리를 폈다. 이마엔 땀이 맺혀있었다. 남편에게 수건을 가져다줬다. 남편은 나를 보며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식탁 위의 음식들은 그사이 서서히 식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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