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짧은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칼두 Aug 16. 2020

출소

         

두호는 출소했다. 이날이 오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25년간의 감옥생활은 너무도 갑갑했다. 차라리 다른 죄수들과 방을 같이 썼으면 말동무라도 했을 텐데. 하지만 두호는 독방을 썼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종종 간수들에게 물어보면 너는 알 필요 없다는 식으로 넘어갈 뿐이었다. 그래서 25년간 어떠한 죄수랑도 말을 섞지 못했다.  


억울했다. 사람을 죽인 적도 없고, 사기를 친 적도 없었다. 그저 한 여자아이를 사랑했을 뿐이고, 그 표현이 거칠었을 뿐이다. 원래 사랑이라는 것은 어설픈 게 아닌가? 물론 그 당시에 흥분했던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누구나 흥분할 상황이다. 심지어 근엄한 척하는 교도소장마저 그 상황엔 어쩔 도리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두호의 입장을 이해한다며 두호의 어깨를 위로했을 수도 있다. 또 두호의 용기를 칭찬할지 어찌 아는가? 


그렇게 귀여운 소녀와 어두운 방 안에서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성을 붙잡겠는가? 소녀의 눈은 반짝거렸고 두호의 심장은 뛰었다. 두호는 나름대로 이성을 붙잡으려고 노력했다. 바지를 내리지 않기 위해 질끈 붙잡았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것은 본디 이성적 동물이 아닌가? 이성과 감정, 즉 로고스와 파토스, 그 두 개의 투쟁에서 보통 파토스가 이기기 마련이다. 에토스는 로고스와 파토스의 엮임 속에서 성립된다. 그런데 로고스가 무너졌으니 에토스는 성립될 리가 없었다. 따라서 두호는 그 순간만큼은 어쩔 수 없는 동물이었다. 이성을 놓았고, 바지도 내렸다. 소녀는 소리를 질렀지만, 소녀 앞에 있는 것은 짐승이었기에 무의미한 아우성이었다. 짐승은 소녀를 먹어 치웠다. 소녀는 껍데기가 되었고, 배부른 짐승은 그제야 이성이라고 부르는 고깔모자를 다시 썼다. 짐승이었던 존재는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두호는 바지를 벗은 채 소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그 행위는 제사였다. 이미 소녀는 사체와 동일한 존재였으므로.


이제 두호에겐 죄책감은 없었다. 죗값은 25년으로 충분했다. 긴 세월은 소녀에 대한 미안함을 희석하기 충분했다. 소녀의 고통은 잠깐이었지만, 두호의 삶은 완전히 망가졌다. 존경받던 선생님이라는 명칭은 범죄자라는 낙인으로 변했다. 한 행복했던 가정은 완전히 무너졌다. 하지만 소녀에 대한 행위와 감정을 후회하는가? 교도소 안에 읽었던 롤리타라는 책을 떠올렸다. 험버트라는 중년의 남자는 소녀를 사랑했다. 하지만 소녀가 어리다는 이유로 험버트는 범죄자로 취급됐다. 그 남자의 사랑이 진심이었음을 믿는다.   


두호가 택시를 잡을지, 버스를 탈지 고민을 하고 있을 찰나에 간수가 달려왔다. 유일하게 두호의 말동무가 돼 준 간수였다. 간수는 요리 솜씨가 뛰어난 아내가 만들어준 사식을, 귀여운 딸이 써준 어버이날 편지를 몰래 전달해 줬다. 그 편지와 음식들은 두호에게 큰 힘이 되었다. 간수가 없었다면, 그 세월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혀 깨물고 죽었을지도. 간수는 두호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아내가 두호의 출소를 마중 나올 수 없어, 간수에게 마지막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휴대폰에는 아내의 번호만 있었다. 곧바로 아내에게 전화하려 하니, 간수가 말렸다. 지금 아내는 공장일로 바쁘니 먼저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간수 말대로 휴대폰엔 아내가 보낸 문자가 와있었다. 이사한 집 주소를 알려줄 테니 그곳으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오늘 마중하러 못 가서 미안하다는 말도 있었다. 두호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면회를 오던 아내가 어느 순간 오지 않았다. 못 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무너진 가장을 대신해 귀여운 딸을 키우려고 하려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가끔 사식과 함께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야간에 퇴근하고 새벽에 출근하는 탓에 면회 시간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간간이 편지와 사식을 보내겠다는 내용이었다. 아내와 전화를 하고 싶어도, 두호에겐 전화가 허용되지 않았다. 분명 인권유린이었다. 변호사를 만나고 싶었지만, 두호에겐 그런 기회조차 아예 없었다. 오직 두호에게 허용된 것은 책과 일기였다. 두호는 매일매일 일기를 써 내렸다. 출소하면 꼭 해야 할 것들을 기록했다. 인권 제소를 하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한 인간의 인권이 철저히 무너졌는지를 온 세상에 알릴 생각이었다. 두호는 간수와 작별 인사를 했다. 간수는 택시를 불러주며, 곧 다시 웃으며 보자고 했다. 


두호는 아내가 알려준 주소를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25년 만에 타는 차량이었다. 택시는 막힘없이 질주했고 창문 밖으로는 거리의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는 듯했다. 두호도 이젠 저 풍경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택시는 어느 건물 앞에 내렸다. 여기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된다고 했다. 두호는 돈을 내려했지만 택시 기사는 출소 선물이라며 가버렸다. 


두호가 내린 곳에는 김밥 가게가 있었다. 어차피 아내는 저녁에 온다고 했다. 두호는 허기졌고 김밥을 먹기로 했다. 감옥에서도 김밥을 많이 먹었다. 아내는 사식으로 김밥을 많이 넣어줬다. 처음에는 시금치를 넣어서 보내왔다. 두호에게 시금치 알레르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은 듯했다. 편지로 그 사실을 전달했고, 그다음 편지엔 미처 공장일이 바빠서 잊어버렸다는 답장이 왔다. 그 이후엔 시금치를 늘 빼서 보내왔다. 그 생각을 하며 두호는 김밥을 시켰다. 아주머니는 두호가 요구하기도 전에 시금치를 뺄지 물어봤다. 두호는 끄덕였다. 아주머니는 능숙한 솜씨로 김밥을 싸기 시작했다. 두호는 시금치를 빼는 손님이 많은지를 물었다. 아주머니 말에 따르면 수십 년간 단골이 있었는데, 늘 시금치를 빼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모든 손님에게 물어보는 게 버릇되었다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말을 마치자 김밥을 두호에게 가져다줬다. 두호는 김밥을 먹었다. 아내가 사석으로 넣어준 맛과 비슷했다. 워낙 아내 김밥을 오래 먹어서 입맛이 둔해진 듯싶었다. 이 김밥이 인생에서 마지막 김밥이 되길 바랐다. 더 이상 감옥의 생활을 기억하기 싫었다. 


혹시 아내가 전화를 받을 수 있나 싶어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오랜 통화음 끝에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각해보니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본 것도 오랜만이었다. 고작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흥분하다니. 너무 오래 갇혀있었다고 생각했다. 곧 아내에게 문자가 왔다. 지금은 작업 중이라 소음이 심해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집에서 보자는 것이다. 두호는 딸 목소리도 듣고 싶었다. 아내에게 딸 전화번호를 문자로 물어봤다. 아내는 문자로 딸 번호를 보내줬다.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아내와 달리 한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25년 만에 들어보는 딸 목소리였다. 전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여자의 목소리는 떨려왔다. 두호는 오랜만에 듣는 딸 목소리에 흥분했다. 하지만 잘 지냈냐는 두호의 말에 딸은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긴 침묵 끝에 좀 이따 보자 아빠, 라면서 딸은 전화를 끊었다. 오랜만에 딸의 목소리를 들어서일까. 전화는 끊겼지만, 여전히 가슴은 쿵쾅댔다.


시계를 보니 곧 아내가 퇴근할 시간이었다. 김밥 아주머니 역시 출소 선물이라며 두호가 낸 돈을 받지 않았다. 두호는 오늘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알려준 주소로 향했다. 길이 낯설지 않았다. 익숙한 풍경을 지나자 익숙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낡은 아파트였다. 아파트 벽에 적혀있는 브랜드는 희미해져 알 수 없었고 201동이라는 숫자만 보여 아내가 말한 건물이라는 사실만 알았다. 계단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한 발씩 더딜 때마다 계단은 울렸고 온 건물이 계단 소리로 가득 찼다. 낯설지 않았다. 아내가 알려준 집 앞에 섰다. 비밀번호가 있었다. 아내에게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냈다. 아내에게 답장이 금세 왔다. 곧 갈 테니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호는 귀신에 홀린 듯 비밀번호를 눌렀다. 어떤 숫자를 생각한 것도 아니었는데 손이 자연스럽게 숫자를 눌렀다. 두호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느니 깨달았을 때, 이미 손가락은 확인 버튼을 눌렀고 문에서는 소리가 났다. 두호는 그대로 문을 열었다. 집 안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자연스레 불을 켰다. 집 안에는 가구가 거의 없었다. 조그마한 냉장고와 매트릭스뿐이었다. 그리고 온 벽에는 신문지 스크랩이 붙어있었다. 두호는 신발을 벗고 방 안에 들어가 신문 기사들을 읽기 시작했다. 


‘초등교사, 딸 성폭행’, ‘변태 초등교사, 체포’, ‘변태 초등교사 아내, 극단적 선택’, 

두호의 다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아내가 죽었다고? 그럴 수 없었다. 그럼 25년 동안 두호에게 편지를 쓰고, 사식을 보내주고, 오늘 오기로 한 사람은 누구인가?  

밖에서는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헤드라인을 읽었다. ‘국회, 성폭행 특별법 통과’, ‘첫 대상은 변태 초등교사’, ‘인권단체, 사형 반대 시위’.

 그리고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호가 마지막으로 읽은 헤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변태교사 피해자, 사형 요청.‘ 


두호는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낯익은 모습의 여자와 간수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간수는 거대한 도끼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간수보단 여자에 눈이 갔다. 여자가 누군지 한눈에 알아봤다. 여자와 이 방, 처음이 아니었다. 세월은 귀여운 소녀를 아름다운 여성으로 성장시켰다. 25년이 흘렀지만 두호와 소녀는 여전히 이 공간에 있었다. 두호는 흥분되기 시작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그려왔는가. 하지만 그 흥분도 잠시. 간수는 도끼를 들고 성큼성큼 두호에게 다가왔다. 간수는 활짝 웃었고 두호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방 안은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해관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