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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초 Aug 02. 2024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계기

종이에 펜으로 초상화 그리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계기


초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일단 그림이라는 것을 그리게 된 계기는 이렇다.


소설을 썼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느 날 갑자기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회사 사무실에 앉아서 여느 때처럼 일을 하는데 문득 가슴이 꽉 막혔다. 당시 나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있었고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자리는 정돈되지 않아 정신 사나웠고 피로감만 증가시켰다. 


어김없이 늘 찾아오는 점심시간. 잠시 숨통이 트였다.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모니터를 멍하니 보던 나는 저도 모르게 종이에 펜으로 사무실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고갱이 은행에서 일하다가 어느 순간 그림에 이끌려 그리기 시작한 게 이런 거였을까? 정말 홀린 듯이 그렸다. 


당시 책상 위에는 깨끗한 A4 용지가 놓여있었고 내 손에는 싸구려 모나미 볼펜이 쥐어져 있었다. 눈앞에는 그려달라고 놓여있는 어지러운 광경이 있었다.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형태가 삐뚤빼뚤했지만 그림은 마음에 들었다. 마음속을 짓누르던 갑갑함이 조금 가신 느낌이었다. 작은 일탈은 약간의 해방감을 느끼게 해줬다. 마음에 드는 감각이었다.


▼ 처음으로 그린 그림 






왜 초상화를 그렸는가? 


풍경이나 사물을 그리다가 초상화로 넘어가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풍경을 몇 개 그리다 보니 불현듯 사람이 그리고 싶었다. 그렇게 그린 초상화들을 인터넷에 올려서 반응을 얻으니 좋아서 계속 그리게 되었다. 


맨 처음으로 그린 초상화는 악동뮤지션의 이찬혁이다. 악동뮤지션의 노래를 처음 들은 건 막 성인이 된 무렵 백반집에서였다. 젓가락으로 계란말이를 집어 우물거리고 있는데 ‘정말이야 널 좋아하는데 빨갛게 익은 내 얼굴이 그걸 증명해~’하는 노래가 들렸다. 


음색이 굉장히 맑고 좋았고 가사가 풋풋했다. 그러면서도 노래가 전체적으로 독특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취향에서 조금 벗어나는 듯하면서도 마음에 들었다. 그 뒤로 종종 생각날 때마다 찾아서 들었다.  


그러다가 초상화를 그리던 당시,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낙하’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다. 그게 너무 좋았다. 출근길에도 듣고 퇴근길에도 들었다. 전화벨 소리로도 설정해 뒀다. 노래에 대한 호감은 가수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번졌고 이것저것 찾아서 보다 보니 이찬혁이 나온 예능까지 보게 되었다. 


MC들의 짓궂은 질문도 재밌었고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이찬혁의 답변도 유쾌했다. 무대 위에서의 기행(?)에 대해 설명하던 그는 “아예 무대 위에 드러눕고 싶다”라는 말을 했는데 나는 그 말이 몹시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 예술가라면 그래야지, 따위의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영상을 일시 정지하고 종이를 찾아 그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옆으로 째진 눈이었다. 그래서 눈부터 그렸다. 전체적인 비율 잡는 법 따위는 모른다. 눈부터 그리고 싶었다.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콧대를 그리고 입술을 그렸다. 흐트러진 앞머리의 가르마와 머리카락 결을 대충 쓱쓱 그어서 표현하고 툭 튀어나온 광대를 강조했다. 자막까지 다 그리면 완성. 참 쉽죠?


▼ 처음으로 그린 초상화






나의 뮤즈 보리스 존슨


이찬혁을 그리는 게 아주 재미있었던 나는 본격적으로 유명인들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젝스키스의 강성훈, 백종원, 서남용, 침착맨, 이순재, 오징어 게임에 나왔던 허성태, 엑소의 오세훈, 나훈아, 서장훈…. 


그러다가 좀 더 개성 있게 생긴 사람들로 넘어갔다. 아무래도 생김새가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이 특징 잡기도 수월하고 그리는 것도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특히 외국 정치인들이 눈길을 끌었다. 도널드 트럼프라든지 존 F. 케네디,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등. 트럼프는 표정이 다채로워서 자주 그렸다. 


간간이 그림을 그려서 올리던 어느 날, 인터넷에서 누군가가 보리스 존슨을 그려달라고 했다. 미국에 트럼프가 있다면 영국에는 보리스 존슨이 있다며. 누군지 몰라서 구글에 검색해 보니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이상한 표정을 짓는 아저씨가 나왔다. 


‘이 부스스한 사람이 무려 총리라고…?’


높은 지위와 남루한 행색의 갭이 흥미를 돋웠다. 머리카락이 펄펄 나부끼는 사진을 두어 개 골라서 순식간에 초상화를 그렸다. 인터넷에 올리자 반응이 뜨거웠다. 역대급으로 댓글이 많이 달려서 신이 났다. 키읔의 향연 속에서 뿌듯함을 느꼈다.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고 웃을 때가 가장 좋았다.


▼ 보리스 존슨 초상화 



                    


보리스 존슨을 그린 것을 기점으로 그때부터 폭발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사람을 그릴 때도 보리스 존슨은 항상 내 마음에 남아있었다. (혹시 몰라서 쓰지만 정치인은 그려도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강성 보수당 지지자 같은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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