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냄새나는 아이.
불안장애와 공황장애를 아시나요?
4.
중학교에 들어갈 때 엄마는 교복을 맞추자며 나를 어떤 공장으로 데리고 갔다. 당시엔 교복의 브랜드화로 ‘엘리트교복’이 유행했다. 다들 엘리트교복을 입고 싶어 했다. 하지만 엄마는 엘리트교복이 비싸다는 이유로 공장에서 교복을 맞춰주었다. 치마의 주름시접 등이 확연하게 짧아 주름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고, 옷 색깔은 같은 듯하면서 아주 미묘하게 달랐다. 다들 자기 몸보다 큰 교복을 넝마처럼 걸치는 입학식에서부터 난 섞이지 못했다. 모두가 엘리트교복을 입지는 않았지만, 나에겐 나만 빼고 모두가 엘리트교복을 입은 것이었다. 위축되었고 어린 시절부터 천천히 스며든 타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반 친구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워 난 책상에 엎드렸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친언니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롯데리아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언니가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이다. 언니는 예쁜 옷을 샀다. 난 그 옷을 언니 몰래 훔쳐 입기 시작했고.
원래도 살갑지 않던 자매 사이는 급격히 나빠졌다. 언니는 내가 무엇을 하든 싫어했고, 난 어떻게든 언니 것을 탐했다. 그런데다 멍청하게도 난 위생관념이 없었다. 배운 적이 없었다. 머리를 어떻게 감아야 하는지, 손, 발을 어떻게 씻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무좀으로 늘 발을 긁었고, 머리카락은 머릿기름으로 뭉쳐있고, 치아는 누렇게 바랬다. 언니는 자기 물건을 더럽히고 망치는 나를 증오했다.
내가 얼마나 더러웠는지에 대한 사실은 아직도 날 갈기갈기 찢는다. 중학교 2학년 6반에는 어느 때부턴가 된장 썩는 냄새가 난다는 소문이 났다. 일진들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아, 씨발. 된장 썩는 냄새 나.”
아이들은 서로서로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녔다. 냄새를 맡으며 “넌 아냐”라는 말을 하는 놀이가 한창이었다. 특별한 친구가 없던 나에게도 한 두 명이 다가와 가슴팍에 코를 댔다가 “넌 아냐”라고 말했다. 그 말을 신앙처럼 믿었다. 내심 속으로 조금 기뻐하기도 했다.
봄날이었다. 날이 너무 좋아서 벚꽃길로 유명한 우리 중학교는 벚꽃비가 흩날렸고 삼삼오오 모여 등교하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도 괜히 설렜다. 일교시 교과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창문 좀 다 열어라, 여자애들만 있는 교실에서 이게 무슨 냄새고?”
하며 창문을 열었다. 날이 너무 좋아서 열린 창으로 기분 좋은 바람이 춤을 추듯 너울너울 밀려 들어오는 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고 나와는 3 분단 정도의 거리에 앉는 예쁘고 공부 잘하는 아이가 나에게 성큼 다가왔다. 너무 성큼성큼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가오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엉거주춤 일어났다. 닿을 듯 가까이 온 아이가 갑자기 내 교복치마를 위로 확!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된장 썩는 냄새가 내 코를 덮치듯 찔렀다. 난 주저앉았고 아이는 의기양양한 뒷모습으로 자기 친구들 무리로 돌아갔다.
“나는 범인이 누군지 알지~.”
라고 나를 바라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누군지 알지, 누군지 알지, 누군지 알지가 귓가를 맴돌고, 책상에 코를 박고 엎드렸으나 책상에서도 그 냄새가 나고 있었다. 나는 알지 못했다. 범인이 나라는 사실을.
아이들은 아이를 빙 둘러싸고 연신 물어댔다. “누군데?” “누구야?” “어떻게 알았어?” 하지만 아이는 새침하게 말했다.
“프라이버시가 있으니까 그건 비밀이야. 근데 계속 된장 썩는 냄새가 난다면 우리 반 환경을 위해서 어떻게든 해야겠지”
엎드린 내 심장은 요동쳤다. 눈앞이 깜깜했다. 저 아이가 말하면 어떻게 하지, 다들 내가 범인인 것을 알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되지? 두려움이 심장을 입 밖으로 튀어나오게 할 것만 같았다. 지금 움직여서 화장실을 가면 다들 나라고 눈치채지 않을까? 온갖 상상으로 가득 찬 머릿속은 악어가 들끓는 늪지대다.
불안장애가 있는 환자들은 불안을 일으키는 정보들을 모은다. 잘못된 신념으로 불안한 마음을 더 크게 만든다.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며 더 불안해하기도 한다. 나는 이때부터 '나는 냄새가 나는 아이고,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싫어한다'는 왜곡된 신념을 갖게 되었다. 한 번 머리에 박힌 왜곡된 신념은 무섭다. 일부러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어느샌가 마음으로 그렇게 자신을 여기고 있는 것이다.
2교시 교과 선생님은 얼굴이 노랗게 뜬 날 보고 보건실에 다녀오라고 했다. 덜덜 떨리는 걸음으로 최대한 조심스럽게 교실 문을 나서던 나를 아직도 나는 만난다. 화장실로 뛰어가 팬티를 벗었다. 팬티는 너무 오랫동안 갈아입지 않아 누렇게 삭았다. 곧 구멍이 나려던 참이었다. 나는 휴지로 내 밑을 세게 닦았다. 닦고, 닦고 또 닦아 휴지에 피가 묻어 나왔다. 팬티를 휴지에 싸서 버렸고, 속옷을 입지 않은 채 교실로 돌아가 종일 돌처럼 앉아있었다.
나의 불안장애가 시작되었다.
TIP.
1. 너무 아픈 기억은 할 수 있다면 구체적으로 서술하여 여러 번 글로 써본다. 그때로 돌아가기를 회피하는 것은 불안을 더 크게 만든다. 우리의 생각은 큰 바위를 산처럼 크게도 만든다.
2. 우리는 너무 큰 상처는 기억하는 것만으로 그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보고 위로를 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