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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년이싸롱 Nov 14. 2023

타인에 대한 두려움

불안장애와 공황장애를 아시나요?


3.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좋은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한다. 새로 시작한 필라테스 강사는 나를 만나서 정말 행운이라고 말했다.
“피드백이 너무 좋아서 수업하는 게 신나고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 즐거워졌어요!”
이 얼마나 큰 칭찬인지. 나는 남들의 인정과 칭찬을 좋아한다. 그래서 늘 웃으며, 친절하게 행동한. 하지만 나의 마음의 바닥은 우울과 어둠으로 가득하다. 연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친절한 하이톤의 목소리도 지속되지 못한다. 사람들은 나와 조금 친해지면 어리둥절함을 느낀다. 어느 순간 그들의 입장에서는 내가 변하는 것이다.

난 깊게 오랫동안 타인을 사귀지 못한다. 아주 오래된 친구들이 몇 있지만 그들은 날 긍정적인 사람, 좋은 에너지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나의 어둡고 부정적이고 슬픈 현실들을 묵묵히 들어주었을 뿐이다. 그러면 그들이 매우 소중해야 하는데, 사실은 많이 부담스럽다. 진짜 나를 아는 사람들이 무섭기도 하고, 수치스럽기도 하다. 난 친한 친구들을 멀리하고 가끔만 만난다. 자주 연락하지 않는다. 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려고 하고, 얕은 인간관계를 원한다. 이것은 두려움이다.

나의 타인에 대한 두려움은 후에 불안장애로 발전했다. 타인이 나를 싫어하는 것 혹은 비난하는 것,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에 크게 불안을 느낀다. 또 상대에게 마음을 주었다가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신념은 깊은 인간관계를 막아선다. 남들은 나를 ‘Power E’라고 하지만, 사실은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크기에 불편한 상황에서 웃는 것으로 모면한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상대가 누구든 비호감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더 크게 오버하고 능력보다 무리하게 된다. 이 불안은 후에는 또 공황장애로 이어졌다.


불안과 공황이 심할수록 타인에 대한 친절도는 급상승한다. 지나가는 노숙자한테도 애교를 부릴 판이다. 부자연스러운 친절과 호응은 아닌 척하기다. 예쁜 척, 애교 많은 척, 친절한 척, 좋은 사람인 척, 사랑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인 척, 관대한 척, 늘 웃는 척, 모두가 괜찮은 척하며 사는 세상이듯 나 역시 그렇다. 그래서 아마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는 나의 아는 사람들은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광년이쌀롱이 이런 사람이었어?'라고. 또 갑자기 불안해진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사실이.


불안과 공황의 굴레에 갇히게 된 진짜 이유는 뭘까? 난 한 없이  자신과 경험에 대해서 쓰고 또 썼고, 글을 쓰면 쓸수록 어린 시절 에피소드들을 기억해 냈다.
어릴 적부터 동네 친구들에게서도, 집 안에서도 소외감을 많이 느꼈다. 또래 친구들이 없는 동네여서가 아니라, 지금 생각해 보면, 잘 씻지 않았기 때문에 나와 어울려주는 이가 별로 없었다. 나는 사람을 참 좋아하는데 말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 같은 반 아이가 물었다.
“넌 왜 맨날 같은 옷만 입어?”
(그때 난 꽃무늬가 화려한 분홍 상의와 청바지를 입고 다녔다.)
당황한 나는 “아니야, 나 같은 옷 4 벌 씩 있어!”라고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렇구나”하는데, 안도감을 느꼈다. 며칠 후에 그 아이 집에서 열린 생일파티에 초대받지는 못했다.

같은 반 친구들 무리에 끼고 싶었다. 그때 내 무의식은 재밌고 착한 아이를 선택했다. 장기자랑을 하라면 제일 먼저 손을 들고 나서서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고, 같은 반 아이가 수업 도중 갑자기 토했을 때, 솔선수범해 치워주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희생정신을 갖고 애써도 나와 특별하게 친한 친구는 없었다. 내가 어울리지 못하는, 나를 끼워주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알지 못한 채, 그저 어리석은 노력만 하고 있었다. 일단 도시락을 같이 먹는 친구가 없었다. 엄마는 억척스럽게 알뜰히 돈을 모았고, 한 번도 친구들에게 내놓을 만한 도시락을 싸주지 않았다. 햄을 싸줘도, 굽지 않은 생햄을 싸주는 식이었고 난 그런 점이 내가 혼자 밥 먹는 이유라고 여겼다. 물론 다른 아이에게 같이 밥 먹자고 말해보지도 않았다.

다행인 건, 자존심이 세서 혼자 하는 것들을 개의치 않으려 했다. 개미와 이야기하고 놀았고, 혼자 밥 먹기, 혼자 화장실 가기, 쉬는 시간에는 음악 듣기(혹은 책상에 노래가사 적기) 책 읽기, 낙서하기 등 할 일은 많았다. '너희가 나랑 안 놀고 싶으면 나도 너희랑 놀기 싫어'라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내가 남들에게 거부당하는 사람이란 것은  상처 입히고 있었다. 불안이란 것은, 내가 원하는 나와 실제 나의 괴리감에서 오는 건지도 모른다.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불안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사춘기 이전에는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불안에 시달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성당에서도 어떤 아이가 내 손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기피했던 적도 있었다. 근데 난 왜 씻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 내가 더럽다는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거부당할 것이라는 막연한 타인에 대한 불안감과 경험이 쌓여가고 있었다.


TIP.

1.  불안의 뿌리를 찾아보자. 한 가지가 아닐 수 있다. 날 제대로 직면하는 것이 날 성장시키는 길이다.

2. 불안할 때는 생각을 버린다. 가장 좋은 방법은 명상이다. 숨을 쉬면서 내 신체 구석구석에 마음을 둬본다. 너무 큰 일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외면이 아니라, 내가 힘이 생겨 문제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잠시 미뤄두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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