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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년이싸롱 Dec 26. 2023

MY, BUT.

불안장애와 공황장애를 아시나요?

15.

보름이를 만나고 피부병이 있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오래된 친구에게 연락했다. 20살 때부터 친구인 '마이, 벗'은 2살 난 말티푸 다솜을 키우는 개엄마다.

꼼꼼하고 똑똑한 친구라 다솜이를 되는대로 그냥 키우지 않을 것이 분명한 친구였다. 사느라 바빠,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없어, 직장생활에 치여, 우리는 한동안 소홀하게 지냈다. 일 년에 한두 번 연락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녀는 내게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너 괜찮아? 이상하게 네 생각이 나."라며 전화를 하곤 했다.(평소에는 남에게 정말 전화 안 하는 사람이다.) 그럴 때마다 난 속으로 앓고 있던 이야기들을 하게 되는 이상한 친구다.


보름이가 나에게 오고 '마이, 벗'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필요한 강아지용품을 한 아름 싸다 안겨주었고, 애카가 뭔지도 모르는 나에게 애견카페를 알려주었다. 강아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이 가르쳐 준다. 이렇게 강아지라는 공통관심사가 생기면서 우린 24년 만에 가장 절친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시절인연이라고 요즘이 마이, 벗과 나의 시절이다.


하지만, 20살에 그녀는 나에게 "나 너랑 친구 못하겠어. 너 너무 힘들어"라며 절교선언을 했던 년이다. 타인과 깊이 사귀지 못하는 성격 탓에 또 친해질 만하니 배려 없이 행동하자 그녀 나름은 단전에 힘을 주고 던진 폭탄선언이었다. 그래도 난 별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인연들이 내 상처와 이기심으로 떨어져 나갔지만, '마이,벗'은 그녀가 가진 배려심 많은 천성 탓에 그럭저럭 인연이 깊게 이어져 왔었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친년아, 그만 좀 해~"라고 내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의 아들은 조용히 그녀에게 "엄마, 이모가 욕하는데 기분 안 나빠요?"라고 물었단다. 그녀는 "미친! 년아. 하면 기분 나쁘지만, 미친년아~ 하면 기분 안 나빠"라고 했다며 웃었다. 난 내가 욕을 했는지도 몰랐다. 조카가 듣고 있는데 너무 허물없이 막 말을 하는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그녀에게 아랑곳없이 대하는 건 안 변했나 보다.


하지만, 나의 벗 그녀는 내 친구다.


약을 잘못 먹고 정신이 몽롱해서 기절할 것 같은데 정신을 놓으면 꼭 죽을 것 같던 두려운 날이 있었다. 차차언니는 회사에 있으니 전화했다간 너무 걱정할 것 같아 차마 전화를 못했다. 정신줄을 놓고 싶지 않은데 제정신이 아니란 것을 스스로 알았다. 난 하이빅스비를 여러 번 불러 '마이, 벗'에게 전화를 거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나를 안심시켰고 내가 횡설수설하는 것을 침착하게 잘 들어줬던 것 같다.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내가 뭐라고 온 힘을 쥐어짜 말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지나고 나니, 놀라지 않고 침착했던 그녀가 감탄스러웠다. 난 그 뒤로 그녀를 더 깊이 신뢰하기 시작했다.


혼자 있는 낮이면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매일 확인한다. 지난 10개월 간 난 거의 매일 그녀에게 전화했다. 단 한 번도 그녀는 왜 이렇게 자주 전화하느냐고 짜증을 낸 적이 없다. 늘 나는 그녀에게 내 맘대로 한다. 내 마음대로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고, 내 마음대로 말하고, 내 마음대로 대한다.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그렇게 하는 것도 괜찮다. 마이,벗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녀가 무슨 짓을 해도 그녀를 편들 준비가 되었다.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남들에게 깊은 애정과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늘 얕은 인간관계를 추구하던 내게 선을 넘어도 두렵지 않은 친구가 생겼다. 하지만 괜찮다. 그녀는 '마이, 벗'이니까.


나는 점점 더 나아가고 있다. 불안과 공황증세가 느리지만 천천히 좋아지고 있다. 그건 내가 내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고 믿게 해주는 보름이와 샤샤, 차차와 마이, 벗 같은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병증을 처음 인정했을 때, 공황장애를 꼭 치료하고 싶었다. 깨끗하고 완벽하게 완치되어 앓은 적이 없던 것처럼 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마이, 벗을 비롯한 소중한 관계들이 내 바운더리 안에 천천히 들어와 나와 함께 살듯이 불안과 공황증세를 가지고도 살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공황증세와 불안은 날 지키기 위한 내 몸부림이다. 소중한 나의 그들도 날 지켜주기 위해 애써준다. 난 그 애씀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나의, 하지만 친구.

나의, 하지만 가족.

나의, 하지만 공황.

나의, 하지만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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