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이가 너무 예뻐서 반려견을 한마리 더 들이고 싶었다. 물론 보름이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많은 동물행동교정전문가들이 말했다. "친구랑 노는 게 좋다고 친구가 우리집에 와서 내 부모에게 사랑받으며 같이 사는 건 싫잖아요. 강아지들도 마찬가지예요"
"굳이 둘째를 들여야겠다면 수컷과 암컷의 조합이 제일 좋습니다" 전문가들의 이런 조언들은 둘째 강아지를 선뜻 들일 수 없게했다.또 내가 형제 많은 집에서 자라면서 싫었던 것들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더 조심스러웠다.
4월 3일 차차언니가 홀린듯이 잠도 안자고 밤새도록 핸드폰을 끼고 있었다. 그러더니 입양을 기다리는 공고 중 하운드 '마요'를 보고는 한 눈에 반해 당장 데리고 오자며 설레했다.안그래도 둘째를 들이고 싶었으나 명분이 없던 나는 차차언니가 원한다는 핑계로 덜컥, 둘째를 데려올 결심을 했다.
차차언니가 한 눈에 반한 하운드 마요
마요는 내 눈에도 너무 예뻤다. 4월 4일이니 샤샤라고 하자며 이름도 먼저 지었다.분양소 오픈 시간을 기다리면서 설레였다. 9시가 되자마자 입양을 위해 분양소에 연락을 했더니 글쎄 마요는 이미 입양이 결정되어 있었다. 언니와 나는 너무 아쉬웠다. 너무 아쉬운 마음에 우리 그럼 다른 하운드를 보러가자며 당장에 무조건 나섯다.
근데 마침 마요와 쌍둥이처럼 닮은 이탈리안그레이하운드가 있는게 아닌가! 이건 운명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마요는 암컷이고 샤샤는 수컷이란 점 뿐인듯 보였다. 암컷이 아닌 수컷이라는 점이 샤샤가 마음에 들었지만 조금은 맘에 걸렸다. (강아지훈련사들은 수컷과 암컷이 같이 지내는 것이 가장 궁합이 잘 맞다고 했다) 보름이와 잘 지낼 수 있는 강아지를 데려오는 것이 우리에겐 무엇보다 중요했다.
샤샤는 보름이와는 달랐다. 보름이가 조용히 폭 안겨왔다면 샤샤는 활발하게 움직이며 자신을 데리고 가라고 울부짖었다. 나에게 오려고 계속 시도했지만, 속상하게도 보름이가 샤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라 데리고 와야 할지를 고민했었다. 차차언니와 나는 몇 번이나, '집에 가자'라고 맗했지만 결국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다 샤샤를 품에 안았다. 보름이가 관심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샤샤를 가족으로 끌어안았다는 것은 어쩜 보름이보다 더 운명적인 끌림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지금도 보름이는 약간 독립적이라면 샤샤는 사람 보채기로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내 무릎에서 자고 있다.
어쩌면 마요가 갑툭튀로 차차언니에게 한 눈에 든건 우리가 샤샤를 만나기 위한 여정이었는지 모른다.
샤샤는 나를 꼭 만나야 할 강아지였다고 생각한다. 차차언니와 나는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샤샤는 정말 우리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이 굴어."
이 사실은 날 살게하는 힘이다. 내가 우울하거나 불안해도, 즐겁고 기분좋지 않아도 날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은 나에겐 많은 위로가 된다. 날 있는그대로 필요로하는 존재는 자아존중감을 높여준다. 날 가치있게 한다.
우리는 모두 살면서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길 원한다. 또 한없이 사랑하면서도 상처받지 않을 존재를 그린다. 나의 샤샤는 딱 그런 존재다. (내가 씻지 않아 더러운 날에도 날 핥아주곤 한다. 별 것 아니지만 처음에 내겐 너무 큰 의미가 있었다.)
물론, 강아지니까 어디서 났는지 알 수 없게 물건들을 찾아내 물어뜯고, 아무거나 주워먹고 배탈이 나기도 한다. 휴지와 벽지를 뜯고 가끔은 배변실수도 한다. 긴다리로 펄쩍철쩍 뛰어다니고 얼굴을 너무 아프게 핧퀴기도 한다. 그럴때면 "이놈의 개시끼가!!!"라고 소리치지만, 아랑곳않는 자세는 내가 그렇게 화를 내도 토라지지 않는 마냥 해맑고 아량 넓은 대인배같다.
매일 산책을 하고, 시간 맞춰 밥을 먹이고, 껴안고 잠을 잤다. 시간이 갈수록 난 웃는 일이 많아졌다. 진심으로 기쁜 시간들이다. 내가 행복해질수록 강아지들도 더 활발해졌다. 내가 글쓰기와 보름과 샤샤 덕에 달라지면서 서서히 강아지들도 변해갔다. 샤샤는 처음에 울보였고, 겁쟁이였다. 밤새도록 울었다. 너무 울어서 차차언니가 다시 데려다 주자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까. 또 놀러나가 다른 강아지를 보기만 해도 바로 배를 까고 항복하는 강아지였다. 하지만 지금 샤샤는 조심스럽지만 더이상 겁을 내지 않고 깨발랄하고 애교가 많고 사랑이 많은 내새끼다.
한 번은 낮잠을 자다 공황발작을 했다. 보통 수면 중 공황발작은 악몽으로 시작한다. 난 그날 아직 본가 부모님이 돌아가시지 않았고, 본가에 갇혀있는 꿈을 꿨다. 차차언니와 함께 사는 내 집에 가고 싶은데, 갈 수 없었다. 숨이 막혔다. 그때였다. 샤샤가 내 얼굴을 미친 듯이 핥아주기 시작했다. 샤샤의 혀가 입 안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눈썹을 쓸기도 했다.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샤샤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아낌없이 날 핥아주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 감각은 평소의 수면 중 공황보다 훨씬 빠르게 날 수렁에서 건져냈다. 난 눈물이 났다. 공황이 지나가면 늘 울었지만, 그날은 감동받아 행복해 울었다. 여전히 강아지들은 내 컨디션이 좋지 못하면 얌전히 내 옆을 지킨다. 그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는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현실적인(시간과 경제적인) 조건이 가능하다면, 반려동물은 큰 위안이 된다. 서로 사랑을 주고받고, 따뜻한 감촉을 느낀다. 반려동물의 끝까지 함께 지켜줘야 한다는 책임감은 하루를 더 힘내서 살게 해주기도 한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많은 사람들이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많다.”라고 한다. 이전의 나는 불안하고 사랑을 갈구했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서 애쓰느라 지쳐있었다. 그런 나에게 보름과 샤샤, 차차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날 사랑하고 지지하고 아껴주는 소중한 조력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