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년이싸롱 Dec 28. 2023

은하수마을

불안장애와 공황장애를 아시나요?

16.
샤샤와 보름이 자라면서 활동량이 많아지자, 차차언니와 나는 강아지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애견동반 숙소는 너무 비싸 애견동반 캠핑을 다녔다. 전국의 애견캠핑장은 거의 모두 가 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중에 우리는 은하수 캠핑장에 정착하게 되었다. 은하수 캠핑장은 감악산 아래에 있다. 물과 산이 좋은 배산임수 지형이고 사장님 내외는 정말 따뜻하고 정이 많으신 분들이다. 가끔 사장님이 내 엄마였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할 정도다.


다른 애견캠핑장과 비교했을 때 가장 좋은 점은 사이트가 넓고, 각 사이트마다 울타리가 쳐져있어 강아지들을 조금은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보름이는 지쳐도 놀고 싶은 것이 우선인 강아지라 토할 때까지 논다. (정말 토한다!) 적절히 쉬는 시간을 조절해줘야 하는데 울타리는 우리 보름이를 위해서는 너무 필요한 시설이다.

이건 정말 신기한 건데, 캠퍼들은 다닥다닥 붙은 사이트를 비선호한다. 은하수는 울타리들이 연결된 구조라 다닥다닥 사이트가 붙어있다. 특히 요즘은 큰 텐트들을 선호하는지라, 사이트마다 텐트가 꽉 차 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불편함이 없다. (아마 강아지들을 위한 캠핑이라는 특수성 때문인 듯하다.) 밥 먹고 쉴 때 빼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넓은 운동장에서 보내게 되기 때문이 아닐지!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을 극도기피하던 내가 사람과 강아지가 바글거리는 그래서 예약도 쉽게 못하는 캠핑장에서 매주 주말을 보낸다는 사실은 놀라운 발전이다.

23년 6월 우리는 은하수캠핑장에서 장박을 시작했다. 샤샤와 보름은 주말이면 2박 3일을 원 없이 뛰놀며 자랐다. 사장님 내외와 감악산 등산을 하기도 했고, 계절이 변화하는 냄새와 자연을 그대로 느끼면서 지냈다. 샤샤와 보름을 위한 장박이었지만 캠핑은 나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아름다운 산자락, 일출과 일몰, 밤의 장작불, 아름다운 저수지는 내 기분을 환기했다.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날 깨끗하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은하수 마을의 다른 식구들과 매주 만나며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다른 강아지들과도 친해지고, 서로 음식을 나눠먹고, 수다를 떨고 강아지들을 함께 사랑한다. 그곳은 행복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모인 하나의 마을이다.


은하수마을에는 내가 사랑하는 친구 마이, 벗도 함께 장박을 한다.

우리는 애견카페를 함께 가고 매주 은하수마을에서 만난다.

든든한 빽이 있는 은하수마을에서 어느샌가 나는 실장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호기심이 많은 천성을 버리지 못하고 여기저기 강아지들의 이름을 묻고, 보이는 응가를 치워주기도 하고, 보호자들과 즐거운 인사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샌가 은하수마을에 오는 강아지들 이름을 줄줄 외우게 되었다. 낯선 사람들이지만, 이름을 묻지도 않고(우리는 서로 강아지들 이름만 묻는다) 직업을 묻지도, 사적인 이야기를 하지도 않는 은하수마을의 이웃들은 나에게 타인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주었다. 평가받지 않는 기분이고 나는 그저 보름, 샤샤의 엄마일 뿐이니까. 또 스쳐 지나가는 (한 주만 와서 캠핑하고 철수하는 분들) 사람들은 그저 서로 좋은 이미지만을 갖는다. 이런 경험들은 내 몸에 밴 인간관계였기에 난 한없이 편안함을 느낀다.


난 아직 투병 중이다. 아직도 약이 없이는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때가 있다. 약을 줄이지 못했고, 상담치료 시간에는 눈물을 흘리는 날도 있다. 가끔은 하루에 여러 번 속옷을 갈아입고, 안절부절못하며 집안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손을 덜덜 떨기도 하고 공황발작을 겪고 악몽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점점 좋아지고 있다. 내게는 사랑하는 보름이와 샤샤, 차차, 마이, 벗과 많은 친구들이 있다. 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있고, 지나간 순간은 허상일 뿐, 현실로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나를 정리하고 깊이 사유하게 되는 글쓰기도 있어 점점 단단해져 가는 중이다. 꾸미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다. 난 믿는다. 언젠가는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뿐 아니라,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더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우리는 마이,벗네 가족들과 주말마다 은하수마을에서 따로 또 같이 이번 겨울을 잘 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연재일이 다가온 지금 우린 더 이상 은하수마을에 가지 못하고 있다. 보름이가 갑작스레 "전완골격기형"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완골격기형은 전완골(2개의 뼈로 이뤄져 있음)의 뼈 하나가 성장판 조기폐쇄로 자라지 못해 길이성장에 문제가 생기며 다른 뼈가 휘어져 자라는 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상은 더 심해지고 장기적으로 재생 불가능한 상태로 진행된다는 수의사의 설명을 들었다.


심하게 뛰어놀기를 좋아하는 녀석이라, 계속 캠핑을 하면 더 다리에 무리가 갈까 장박을 철수했다. 그리고 뼈를 잘라 휘어진 뼈를 곧게 펴고 보형물을 넣어 고정시키는 큰 수술을 받았다. 수술 전 2주 정도를 평소보다 높은 불안증세에 시달렸다. 하지만 내가 단단해야 우리 보름이가 잘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상담 선생님은 "부모가 자식을 믿어주는 것이란, 어떤 면에서는 부모의 두려움을 자식에게 들키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다. 보름이가 수술 후 재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그건 내 탓일 거라는 죄책감을 가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생각을 "보름이가 수술 후 재활을 잘 이겨내면 정말 내가 뿌듯할 거야"라는 긍정의 말로 바꿨다. 또한 보름이가 내 반응과 표정, 기분에 두려워지지 않도록 나를 다스려야 했다. 나를 위해서는 못해도 보름이를 위해서는 날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 불안을 더 잘 다스리는 것이 보름이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상담선생님은 늘 내가 부정에서 긍정으로, 우울에서 밝음으로, 비관에서 희망을 찾는 길을 안내하신다. 그녀의 진심어린 경청은 단순히 치료사가 아니라 내 마음을 보듬어주는 그리고 진심으로 날 응원해서 내가 꼭 살아가야함을 느끼게 한다. 난 병을 앓으면서 좋은 상담사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고 있다. 예전에 내가 만났던 상담치료사는 내 말을 전혀 공감하지 못했고 난 한 번에 상담비용을 결재한 나를 탓하며 돈이 아까워 꾸역꾸역 상담을 받으러 갔었다. 난 상담사에게 거짓말을 했고, 질문에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그 분은 스스로 촌철살인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프로라고 여기는 듯 했지만, 그 뒤로 나는 상담치료에 매우 회의적이라 거의 10년정도 시간을 허비했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하여 상담선생님의 실명을 밝히고 싶지만,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지도 못했고, 섣부른 짓 같아서 참는다.)


우리는 요즘 한창 보름이 다리가 제대로 낫기를 바라며 지낸다. 나는 더 여유롭게 생각하려고 매일을 노력하고 있고,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을 위해 나를 더 보살피고 사랑한다.

보름이 다리가 잘 나아, 다시 움직이는데 무리가 없을 때가 되면 우리는 또 은하수마을에 돌아갈 것이다. 자연의 냄새를 맡고 자유롭게 뛰놀고,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하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밝은 미래가 있다는 사실은 오늘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우울함과 공황, 불안들이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고, 가끔 감정이 치밀어 오를 때는 난 다시 돌아갈 은하수마을에서의 보름이와 샤샤를 상상한다.


삶이란, 슬픔과 고난과 힘듦이 점철되어 있다. 하지만 동시에 빛과 그림자처럼 행복과 평안과 기쁨도 존재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공황과 불안,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갖고 있지만, 일상을 살아가는데 그것이 단지 그림자일 뿐임을 알게 되었다. 잘 관리하고 빛을 더 눈부시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전 15화 MY, BU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