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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년이싸롱 Nov 09. 2023

프롤로그

1.

심각한 수준의 불안장애와 공황장애로 고생하다가 좋은 치료사를 만나서 회복하고 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공황장애로 고통받는다. 주변에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알고 보면 어디에나 공황장애 환자가 있다. 마치 우리 주변에 어디에나 숨어있는 성소수자가 있듯이. 내 경험을 나누면서 각자 다르지만 서로 비슷한 증상으로 고통받는 다른 이들에게 공감과 정보제공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글을 쓴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필라테스와 요가 스튜디오가 생겼다. 오픈 기념으로 50% 할인 행사를 한다며, 룸메이트 언니가 필라테스를 추천했다. 여러 해 동안 꾸준히는 못해도 간헐적으로 셀프요가를 해왔다. 요가보다는 스트레칭에 가까운 수준이었지만, 공황장애치료를 위한 노력이었다. 처음 시작했던 5년 전보다 많이 정돈되고 유연해진 몸을 갖게 되었다. 비싼 비용의 필라테스가 굳이 필요할까? 요즘에는 좋은 콘텐츠들이 많다. 홈트레이닝을 조금 더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망설였다. 룸메이트 언니의 강력한 권유로 반은 떠밀리다시피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세 번, 50분씩 레슨.      

첫 수업 때부터 내 다리는 사시나무 떨 듯이 떨렸고, 두 번째 수업 이후에는 온몸이 녹아내리듯이 아팠다. 움직임도 크지 않은 간단한 동작들로 많은 운동효과를 준다. 세 번째 레슨 후 ‘돈을 주고 전문가에게 자세교정을 받으면서 하는 운동은 운동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혼자 5년을 홈트레이닝으로 했던 운동보다 단 3일 만에 몸이 달라진다. 슬림해지는 것을 느꼈고 가벼워졌다. 나의 공황장애와 트라우마장애 역시 마찬가지다.

2020년 나는 갑작스럽게 지하철에서 침을 질질 흘리면서 구역질을 했다. 퇴근길 신분당선 안에서 내 주변에는 동그랗게 막이 생기듯 사람들이 자리를 피했다. 식은땀이 줄줄 났고 주변사람들이 일그러지며 녹아내리듯 보였다 심장은 미친 듯이 빨리 뛰었고 나는 트림을 멈출 수 없었다. 아무도 감히 나에게 괜찮으냐 말을 걸지 않았다. 그 짧았던 몇 분을 마치 몇십 년 인양 기억한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저 살아야겠다는 집으로 가야 한다는 강렬한 의지가 날 질질 잡아끌었다. 집에 도착하여 현관에 쓰러졌고 그 자리에 토했다.

전조증상이 있었지만 무시했던 결과였다. 속이 더부룩하여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 지 여러 날이었다. 체중은 급격 줄었다. 이유 없이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이 막히는 기분을 경험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회사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할 일은 너무 많았고 김국장은 한마디로 지랄 같은 사람이라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말은 사치 같은 날들이었다. 나는 내 능력을 증명해야 했고, 인정받아야 했다. 김국장에게, 팀원들에게 일 잘하고 성격 좋은 팀장으로 보이길 간절히 바랐다.

자아존중감은 소속감, 능력감, 가치관으로 나누어진다. 내가 안전한 가족 구성원에 속하며, 스스로 유능하다고 믿는 자기 효능감,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는 가치관으로 구성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소속감과 가치관이 낮아 자기 효능감으로 자아존중감을 높이고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팀장으로 승진하면서 내 직장생활은 지옥이었다. 내가 스스로 만족할만한 관계와 일처리가 되지 않았다. 나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간헐적으로 나타나던 전조증상들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이 되자, 여러 병원들을 다녔다. 공황장애 환자의 대부분이 정신과를 가기 전 내과, 심장외과, 대학병원, 응급실 등을 여러 차례 방문하게 된다. 나는 분명히 아픈데 검사결과는 정상이다.

어느 날, 동네의 오래된 내과에서 정신과 진료를 권유받았다. 그 내과는 2020년에도 의사 선생님이 수기로 차트를 쓰는 아주 오래된 병원이다. 평일 5일만 진료를 하고 오후 5시면 병원 진료를 끝내 직장인들은 선뜻 가기 어려운 병원이다. 하지만 오전 10시부터 환자들이 대기의자에 꽉 차는데 대부분의 환자가 노인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병원을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냈다!      

내과에서 정신과 진료를 권유받던 날도 마음이 망설여졌다. 정신과보다는 세밀한 건강검진을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많은 공황장애 환자들이 치료가 늦어지는 이유가 바로 정신과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정신과 진료기록만으로도 보험 가입을 할 수 없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있기도 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또 ‘현대인치고 정신적으로 문제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라고 치부하는 경향도 정신과를 가기 망설이게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여서 출퇴근이 힘들었지만 정신력으로 이기겠다는 굳은 마음으로 정신과 방문을 미루었다.

그러던 어느 날, 룸메이트 언니와 집 앞의 단골 껍데기 집에서 술을 가볍게 한 잔 하고 들어와 씻고 잠자리에 들려는데 갑자기 심장에 우직하는 느낌이 들며, 누군가 젖은 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은 것 같았다. 숨이 들이쉬어지지 않는 기분이어서 어떻게든 숨을 쉬려고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난 계속 심한 호흡을 하고 있었다. 과호흡이었다. 룸메이트 언니는 처음 보는 광경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난 몸부림치며 손을 뻗었고 힘들게 말했다. “봉투” 그 한마디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경험해보지 않은 자는 알 수 없으리라. 숨이 껄떡껄떡 넘어가는데 말을 해야 하다니.

발작을 일으키고 룸메이트 언니가 적극적으로 정신과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유명하다는 정신과들을 한 달 정도의 기다림이 필요했다. 하지만 한 번 시작한 과호흡발작은 언제 또 생길지 모른다는 예기불안을 가지고 왔다. 긴장은 몸을 굳게 했으며 전신에 식은땀을 나게 했다. 그 긴장이 또 발작을 불러오는 악순환이다. 난 그냥 편안하게 도보로 갈 수 있는 집 앞 정신과를 선택했다.

첫 방문에 홍원장은 말했다.

 “원래 정신과에 오면 일단 다른 과 진단들을 받고 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내과에서 정신과를 권유했다고 하니, 증상을 들어보죠”

난 그간의 경험을 간략하게 말했다. “출퇴근하기 어려워요. 지하철을 타면 숨이 막힙니다. 가끔 숨을 못 쉬는 발작을 하고요”

오분 정도의 상담 후 홍원장은 3일 치 약을 지어주었다.

그날이 금요일 오후였는데 나는 약을 먹은 금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계속 잠만 잤고 구역질이 났으며 음식은 더 먹지 못하게 되었다.

아침저녁으로 말라가고 있었다.  앙상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내 상태를 심각하게 걱정하던 룸메이트 언니는 다음 정신과에 갈 때 일부러 휴가를 내고 따라왔다.

홍원장은 약을 먹기 시작한 뒤로 나의 상태가 심히 걱정된다는 말에 매우 공격적인 어투로 “지금 환자 상태에 대해서 알고나 있습니까? 보호자라면서 지금까지 뭐 했습니까? 약 처방에는 문제가 없습니다.”라고 쏘아붙였다.

우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내가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기에 홍의원을 계속 다닐 수밖에 없었다. 정신이 몽롱한 날들이 이어졌다.

필요한 것은 필요한 때 나타난다고 했던가! 갑작스럽게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룸메이트 언니의 직장이 멀리 잡히면서 우리는 예정에 없던 이사를 했고, 이사한 곳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정신과를 옮겨야 했다. 나는 댓글과 평가를 보고 또 보면서 병원을 찾았다.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정신과를 찾았고 다행스럽게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원장님은 내 처방전과 상태를 점검하고는 본인의 병원에서는 치료가 쉽지 않으니 전원을 위한 진료의뢰서를 써주었다. 신사동의 정신과를 소개해주며, 친절하게도 본인이 아는 선에서는 최고의 의사라고, 그분은 당신을 모르신다는 말씀을 덧붙이며 웃었다.

그 후 나는 신사동의 정신과를 4년째 다니고 있다. 상태는 많이 호전되었고, 말라서 아무 옷이나 입어도 예쁘던 몸매는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필라테스처럼 전문가의 도움으로 건강해진 나는 지금의 내 몸을 사랑한다. 약부작용으로 빠진 체중은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든다. 요즘은 항정신성의약품의 힘을 빌어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이 있다고 한다. 단언컨대, 만약 당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피트니스 이용권을 구매하라. 적절한 운동과 건강한 식단으로 조절된 몸매가 아니라면 당신을 절대 행복하게 할 수 없다. 물론 나도 가끔 말랐던 시기의 수영복 차림의 내 사진을 들여다보며 다시 날씬해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시 공황증세와 약 부작용으로 인한 체중감소는 거부한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수십 번하는 고통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지하철이나 버스 등의 대중교통을 타는 것이 부담스럽거나, 이유 없이 속이 메스껍고 소화가 안 되며, 자꾸 구역질이 나고, 심장이 미친 듯이 빨리 뛰는 기분을 가끔 느낀다면,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신체적인 이상이 있을 수 있으니 건강검진이 우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위의 증상들로 응급실에 가거나 병원에 갔으나 아무런 이상도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면, 제대로 된 의사가 있는 정신과를 가야 한다. 어떤 정신과가 제대로 된 정신과인지 모르겠다면, 첫째, 초진 시 질의응답의 상담만으로 약을 처방하는 병원은 피하라. 검사비가 들 수 있으나(내 경우에는 진단검사비로 20만 원 정도를 썼다) 기준과 절차가 있는 진단검사를 하는 병원을 찾아라. 두 번째로 필요시 상담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권한다. 전문적인 임상심리학자가 상담을 해주는 병원으로 가는 것이 좋다. 정신과 진료는 단순히 약 몇 알을 먹는 것이 아니다. 약 선생님은 대기 환자가 많고 10분 전 후의 근황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신적인 문제에 시달리는 공황장애나 불안장애 트라우마장애 환자들은 내 몸이 기억하는 깊은 상처들이 신체적 문제로 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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