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도 남지 않는 대회. 나는 160bpm을 최종 속도로 정하기로 했다. 마르타의 연주는 170까지인 것 같지만 악보에서 제안하는 속도가 153이기도 했고 현재 140에서 더 나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아 1악장과 맞출 수 있는 속도인 160을 기준으로 삼았다. 170까지 맞추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지금 140을 연습으로 해도 원래 잘나가던 부분까지 틀리기 시작해서 연습해야할게 산더미다.
단순하게 건반 세 개 누르는건데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
속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잘 치던 부분도 틀리기 시작하니 과연 한 번도 안틀리고 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만약 이 부분이 소리가 영원히 변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한 번이라도 옥타브(도 - 도까지)를 깔끔하게 칠 수는 있을까
160bpm 은 커녕 지금 145도 겨우 치는데 과연 쫓기는 느낌 없이 칠 수 있는 날이 올까
갑자기 악보의 모든 요소하나하나가 너무나 막연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140에서 한 번도 안틀리고 치는 날이 있는가 하면 130이 너무나 빠르게 느껴져 미스터치 투성이일 때도 있었다. 늘 팔과 손가락은 욱신욱신 거렸고 힘이 풀리는 순간은 연주도 연습도 끝나버렸다. 치면 칠수록 인간 신체의 자연 법칙에 역행하는 행위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세상 더러워진 악보, 악보를 처음 받을 때 사진을 찍지 못한게 너무 아쉽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다가도 갑자기 마르타 아르게리히의 연주가 너무 잘 들려서 나도모르게 정말 많이 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예전엔 연주를 들으면 너무 빨라서 악보가 읽히지 않았는데 이제는 연구용으로 듣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막연하게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언젠간 이 속도도 느리게 들리는 날이 오겠지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한다. 나 꼭 상 타야겠어.
그렇게 이삼일에 한 번 꼴로 이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다시 연습을 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