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녀와 야수' 감상문
미녀와 야수
Beauty and the Beast , 2017
똑똑하고 아름다운 ‘벨(엠마 왓슨)’은 아버지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에서 벗어나 운명적인 사랑과 모험을 꿈꾼다. 어느 날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아 폐허가 된 성에 도착한 벨은 저주에 걸린 ‘야수’(댄 스티븐스)를 만나 아버지 대신 성에 갇히고, 야수 뿐 아니라 성 안의 모든 이들이 신비로운 장미의 마지막 꽃잎이 떨어지기 전에 저주를 풀지 못하면 영원히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는 운명임을 알게 된다. 성에서 도망치려던 벨은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해 준 야수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차츰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하는데…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세계와의 조우
오랜만에 ‘미녀와 야수’를 보며 이 영화는 로맨스 서사이지만 동시에 권력주의적 세계에서 벗어나 벨이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게 되는 자기 성장 서사에도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벨이 속한 세계는 힘의 권력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권력주의적인 세계이다. 마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성인 개스톤은 사냥 실력과 뛰어난 힘을 이유로 마을 사람들의 숭배에 가까운 지지를 받는다. 힘이 있는 자가 당연히 원하는 여성을 차지할 수 있고, 자신이 힘으로 역전되자 순식간에 복종하는 개스톤은 야생의 짐승과 다르지 않은 힘의 서사를 가지고 있는 인물로도 보인다.
반대로 벨이 끝내 발을 내리게 되는 야수의 성은 힘이 가지고 있는 권력성이라는 세간의 당연한 법칙이 먹히지 않는 곳이다. 야수는 과거 왕자였으나 무시무시하고 힘이 쎈 야수가 되어버렸다. 누구보다 힘의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주위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고 성 안에 틀어박혀 스스로를 상처 입히기만 한다. 야수와 개스톤의 캐릭터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본다면 정작 야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개스톤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이러한 두 세계에서 벨은 아름다운 외모로 사람들의 이목은 끌지만 마을의 분위기에 반대되는 인물이다. 언제나 바쁘게 일을 하고 눈앞의 매혹적인 상대에 집중하는 마을 사람들과 달리 벨은 책 속 이야기에 심취하며 마을사람들에게 중요한 가치들은 거들떠 조차 보지 않으려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마을사람들은 벨을 예쁘장하지만 꿈속에 사는 것 같은 이상한 사람이라 치부해버린다.
이 때문에 벨은 권력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질서가 팽배한 마을에서 벗어나 멋진 왕자를 만나 새로운 세계로 떠나고 싶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벨이 원하던 것이 왕자와의 사랑이 아닌 자신이 이해받을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나서는 행위 자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벨은 자신이 원하던 대로 모험을 통해 미지의 새로운 세계, 야수의 성으로 진입하지만 막상 새로운 세계는 또 다른 억압을 가하는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거대한 야수라는 더 큰 힘이 벨을 감금하고 아버지와 분리시키게 한다. 이에 벨은 더 없는 슬픔과 배신감을 느끼며 결국 야수의 성에서 견디지 못하고 나가버리게 되지만 변곡점이 발생하게 된다.
권력으로의 억압 밖에 없었던 야수의 성이 변화하게 되는 변곡점은 늦은 밤에 성을 빠져나간 벨이 늑대에게 공격을 받게 되자 야수가 벨을 구하기 위해 늑대와 싸우는 장면이다. 이때에 벨은 힘을 쓰는 목적이 달라지는 경우를 처음으로 보았을 것이다. 마을에서 힘의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인 개스톤은 사냥을 하여 사냥감을 정복하듯 벨을 정복하고자 자신을 위해 힘을 썼다. 하지만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타인을 위해 힘을 쓰는 야수는 힘으로의 권력을 억압으로 느끼던 벨에게 유의미한 변곡점이 되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벨은 단순히 자신을 구해준 야수에게 이성적 감정을 느낀 것을 넘어, 힘을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쓸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감명을 받고 야수의 성이 사실은 누구보다 권력성이 먹히지 않는 세상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야수의 성에서의 생활에 적응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미녀와 야수’는 세상에게서 왕따 당하고 있는―벨은 힘의 권력을 용납하지 않는 자이기에, 야수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 자이기에― 소외된 자가 이해받을 수 있는 세계를 필요로 하였고, 서로를 통해 그러한 세계와 조우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로 보인다.
야수가 보편적으로 여성이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는 초콜렛, 장신구, 달콤한 말 대신 도서관을 선물해주었을 때 벨은 처음으로 자신이 진정 이해받는 순간을 느꼈을 것이다.
좋은 관계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누군가 자신이 자신다울 수 있는 관계가 가장 건강한 관계라는 답변을 남긴 것에 공감한 적이 있다. 외부의 억압에서 벗어나 스스로 나아가려는 자생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는 생명은 누구나 자신이 있는 그대로 이해받고 이해할 수 있는 세계를 만나고 싶어 할 것이다. 이러한 보편적 욕망을 미녀와 야수의 사랑이라는 서사로 풀어낸 것이 영화 ‘미녀와 야수’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 한 번 미녀와 야수를 되돌려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