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없는 위로가 더 큰 상처를 줄 때
우리는 학교나 회사에서 업무 스킬은 배우지만, '타인의 슬픔을 대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동료가 부모상을 당했을 때, 승진에서 누락되어 좌절했을 때, 혹은 프로젝트 실패로 자책하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당황합니다.
"힘내"
"다 잘 될 거야"
"산 사람은 살아야지".
우리가 건네는 이 상투적인 말들은, 때로는 위로가 되기는커녕 상대방에게,
"내 고통을 가볍게 여기는구나"
"빨리 털고 일하라는 뜻이구나"
라는 또 다른 상처를 줍니다.
더 끔찍한 것은,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 수단으로 삼는 빌런들입니다.
그들은 장례식장에서 가장 크게 울고, 가장 요란하게 위로하지만, 그들의 눈은 상주가 아니라 '나를 지켜보는 관객들'을 향해 있습니다. 그들에게 타인의 슬픔은 자신이 얼마나 인간적이고 리더십 있는 사람인지를 증명하는 무대 장치일 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펜실베이니아의 제지 회사에서 벌어진 기상천외한 '장례식 소동'을 통해, 진정성 없는 위로가 어떻게 조직을 병들게 하고, 슬픔에 빠진 사람을 두 번 죽이는지를 목격하려 합니다.
이 시트콤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리더의 자기중심성이 어떻게 구성원들의 애도 과정을 방해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건은 지점장이 전(前) 지점장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지점장은 충격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충격의 이유는 죽은 전 지점장에 대한 그리움이나 슬픔 때문이 아닙니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죽어서 잊히겠지?"
라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입니다.
그는 직원들에게 이 슬픈 소식을 전하며 위로를 구하려 합니다. 하지만 직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합니다. 그들은 전 지점장을 잘 알지도 못하고, 지점장의 과장된 슬픔에 공감하지도 못합니다. 직원들의 무관심에 지점장은 분노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죽었는데 이렇게 냉정할 수가 있어?"
그는 자신이 '인간적인 리더'임을 증명하고, 직원들에게 '죽음의 무게'를 가르치겠다며 억지로 '슬픔 상담 세션'을 엽니다. 그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묻습니다.
"가족이나 친척이 죽었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해 봐."
직원들은 억지로 자신의 슬픈 기억을 꺼내 놓아야 합니다. 하지만 지점장은 그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지 않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슬픔을 평가하고,
"그건 별로 안 슬픈데?"
"더 극적인 이야기는 없어?"라며 재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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