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만지지 말았어야 했다
이 글은 금제록 연재 전 작성해 본 초고입니다.
실제 1편은 여기를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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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키려는 듯한 매미들의 소리.
DMZ는 거대한 가마솥이었다.
끓어오르는 대지는 숨 막히는 지열을 뿜었고, 녹슨 철책의 쇠냄새와 썩은 풀의 비린내가 뒤섞여 머리를 어지럽혔다.
“젠장할….”
한지운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중얼거렸다.
그의 세상은 에어컨이 쾌적하게 돌아가는 박물관 수장고, 완벽한 항온·항습이 유지되는 전시실이어야 했다.
먼지 하나까지 통제된 그의 세상.
이런 생과 사의 경계선, 통제 불능의 자연은 질색이었다.
“한 박사! 한 박사! 이리 와서 이것 좀 보게! 신의 작품이야, 신의 작품!”
지뢰처럼 널린 돌부리를 피해 다가가자, 발굴 피트안에서 김정호 교수가 아이처럼 소리쳤다.
명예와 발견에 굶주린 늙은 하이에나.
지운은 속으로 그리 폄하하며 구덩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푸른 안광 같은 것이 번뜩였다.
흙을 걷어내는 병사의 손길 끝에서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청동 거울이었다.
하지만 그 형태는 지운이 아는 어떤 유물과도 달랐다.
기름을 부은 듯 음산하게 번들거리는 녹청색. 그리고 거울 뒷면에 새겨진 열두 마리의 짐승.
“십이지신상…? 하지만 이건…”
지운의 미간이 좁혀졌다. 무언가 근원적으로 ‘틀렸다’.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십이지신은 언제나 정해진 방향으로 달려야만 했다.
그것은 우주의 법칙이자 질서였다.
하지만 저 거울 위의 짐승들은, 마치 그 질서를 비웃듯 역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세상을 거꾸로 돌리려는 저주처럼.
“이런 건 본 적이 없어.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형식이야. 이건…대체..”
“반역이지! 한 박사, 시대를 거스른 장인의 위대한 반역이지! 이거 하나면 내 이름으로 된 박물관 하나는…”
흥분한 김 교수가 맨손으로 거울을 잡으려는 순간이었다.
“만지지 마십시오.”
얼음장 같은 지운의 목소리가 현장을 갈랐다.
“유물은 기록입니다. 조심하세요.”
차가운 지적에 김 교수의 얼굴이 붉어졌지만, 그는 이내 헛기침하며 손을 거두고 장갑을 꼈다.
거울을 소중하게 들어 올린 바로 그때였다.
한여름의 햇빛을 정통으로 받아낸 거울의 빛이 맞은편에서 흙을 파내던 젊은 병사의 얼굴에 그대로 꽂혔다.
“으악!”
병사가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뭐야!”
“죄, 죄송합니다! 저, 거울 속에… 거울 속에…!”
“정신 나갔나! 더위 먹었어? 네 얼굴이 비친 거겠지!”
장교의 호통에도 병사는 사색이 되어 중얼거렸다.
“아닙니다… 제 얼굴이 아니었습니다…눈알이 없는 노인이...”
지운은 코웃음 쳤다.
파레이돌리아(Pareidolia).
무의미한 자극과 패턴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뇌의 착각일 뿐.
그는 언제나처럼 과학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재단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멎었다.
지옥처럼 울어대던 매미 소리가, 마치 누군가 전원을 내린 것처럼 일순에 끊겼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이명이 느껴질 정도의 완전한 정적. 모두가 본능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보았다.
푸드덕, 소리도 없이.
수십 마리의 새 떼가 허공에서 중심을 잃고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기괴한 풍경을.
“……!”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정적은 불과 3초.
이내 매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울기 시작했다.
“방금… 뭐였지?”
“기압 차 때문에 새들이… 뭐 그런 거 아닌가?”
사람들은 애써 자신을 납득시키려 했지만, 그 누구도 방금 전의 기이한 정적과 새들의 추락을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오직 한 사람, 한지운만이 중얼거렸다.
“자기장 이상인가… 드문 현상이군.”
그의 눈은 여전히 거울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것이 나온 순간, 세상이 잠시 멈췄다.
인과관계는 없었다.
우연의 일치일 뿐. 당연했다.
하지만 심장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길한 감각은, 그의 이성적인 통제를 벗어나고 있었다.
“자, 자! 다들 서둘러! 이 귀한 보물, 어서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지!”
김 교수의 외침에 현장은 다시 분주해졌다.
‘역십이지신상 동경’은 특수 제작된 보관함에 담겨 조심스럽게 트럭으로 옮겨졌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저 기이한 우연이 겹친, 무더운 여름날의 해프닝일 뿐이라고.
김 교수가 흙 묻은 손을 털며 지운의 어깨를 툭 쳤다.
“한 박사 덕분에 귀한 구경 했네. 서울 가서 시원한 냉면에 소주나..”
거기까지였다.
“크, 허억…!”
김 교수의 말이 기괴한 소음으로 변했다.
그의 몸이 갑자기 뻣뻣하게 굳으며, 목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교, 교수님?”
김 교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려갔다.
8월의 폭염 속에서, 그는 마치 북극의 빙하 위에 던져진 사람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치아가 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추… 워…너무.. 추.....워.”
그는 허우적거리며 무언가를 뿌리치려는 듯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 그 초점 없는 눈동자가 지운의 등 뒤 어딘가를 향해 고정되었다.
지운은 차마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김 교수의 눈에 비친 것은, 죽음을 목전에 둔 자의 공포.
먹잇감이 포식자를 마주한 원초적인 절망이었다.
“교수님! 정신 차리세요!”
지운이 흔드는 손길에도 김 교수의 몸은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
그는 마지막 남은 숨을 몰아쉬며, 지운의 팔을 부서져라 움켜쥐었다. 그리고 귓가에 속삭였다.
“거울...거울에...거..”
툭.
김 교수의 고개가 떨어졌다. 그의 손은 무언가를 움켜쥔 채 그대로 굳어 있었다.
정적.
지운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군용 트럭의 짐칸을 보았다. 굳게 닫힌 유물 보관함.
그 안에 담긴, 시간을 거스르는 짐승들이 새겨진 청동 거울.
그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