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黃泉)의 나루터
산군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분지를 감싸던 태고의 정적이 다시 돌아왔다. 오직 바람 소리와, 우물 안에서 들려오는 기묘한 물소리만이 남았다. 우물은 더 이상 어둡지 않았다. 그 안에서는, 밤하늘의 성운처럼 푸른빛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것은 길이 아니었다.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거대한 상처였다.
“들어가야 합니다.”
서화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녀의 눈은 우물 안의 푸른 소용돌이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 문은, 오래 열려있지 않아요.”
“잠깐만.”
박종윤이 그들을 막아섰다.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저긴… 대체 뭡니까. 웜홀이라도 되는 겁니까?”
그는 손에 든 소형 분석기를 우물을 향해 겨누었다.
지지직-
분석기는 알 수 없는 에러 메시지만을 띄우다, 이내 연기를 내뿜으며 꺼져버렸다. 그의 과학이, 다시 한번 무릎을 꿇었다.
“저곳은, 이승도 저승도 아닌 경계다.”
왕이 말했다. 그는 방금 전 자신의 의지를 거역하고 무릎을 꿇었던 한지운의 영혼을, 다시 깊은 심연 속으로 억누른 참이었다. 그의 비취색 눈동자는, 우물 너머의 ‘적’을 향한 분노로 다시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저 길의 끝에, 짐의 것을 훔쳐 간 쥐새끼가 있다.”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우물의 돌 두겁 위로 올라서서, 소용돌이치는 푸른 심연 속으로 몸을 던졌다. 마치 자신의 왕국에 있는 연못으로 뛰어들 듯, 너무나도 당연하고 오만한 몸짓이었다.
“젠장, 같이 가요!”
박종윤은 욕설을 내뱉으며, 서화의 팔을 붙잡고 그의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의 몸이, 푸른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화아아악-
세상은 빛과 소리의 혼돈으로 변했다. 몸이 원자 단위로 분해되었다가 재조립되는 듯한 끔찍한 감각.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찢겨나가는 느낌이었다. 수만 개의 바늘이 온몸을 찌르는 고통과 함께, 수천 년간 이 우물에 빠져 죽은 자들의 마지막 비명이, 그들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얼마나 흘렀을까.
쿵.
세 사람의 몸이, 딱딱하고 축축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지운은 가장 먼저 몸을 일으켰다. 왕의 영혼이, 이 기묘한 공간에 가장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그들은 거대한 동굴 안에 있었다. 천장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았고, 종유석 끝에서는 검은 물방울이 떨어져 영겁의 시간처럼 기이한 소리를 냈다. 공기 중에는, 썩은 물비린내와 함께 지독한 슬픔의 냄새가 진동했다. 그리고 그들의 눈앞에. 그것이 있었다.
황천(黃泉). 저승의 강.
그것은 강이라기보다, 끝없이 펼쳐진 검은 바다와 같았다. 수면은 기름을 부은 듯 고요했지만, 그 아래에서는 수억 개의 희미한 빛들이 원혼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망각의 강에 잠든, 죽은 자들의 기억. 강 건너편은, 짙은 안개에 휩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박종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의 머릿속으로, 스치듯 지나간 기억의 파편 하나가 날카로운 통증을 남겼다. 잊힌 전쟁터에서 죽어가던 병사의 마지막 후회였다.
“여기가….”
박종윤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모든 통신 장비는 먹통이 되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지식과 기술이 아무런 쓸모도 없는, 완벽한 미지의 영역에 던져진 것이다.
“나루터로군요.”
서화가 신음하며 말했다. 그녀는 강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낡은 나무 표지판과 함께 작은 선착장이 있었다. 그리고 선착장 끝, 검은 강물 위에는. 한 척의 나룻배가, 안개 속에서 스르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배는 오래된 흑단목으로 만들어진 듯, 칠흑같이 검었다. 뱃머리에는, 눈이 없는 용의 머리가 조각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배 위에, 삿갓을 깊게 눌러쓴 뱃사공이 서 있었다. 그는 노를 젓지 않았다. 배는 스스로, 주인을 알아보듯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왔는가.”
뱃사공의 목소리가, 안개를 뚫고 울려 퍼졌다.
“왕의 탈을 쓴, 길 잃은 영혼이여.”
“네놈이냐.”
왕이 나지막이 으르렁거렸다. 그의 손등, 옥 매미 문양이 검푸른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감히 짐의 백성을 능멸하고, 짐의 것을 탐낸 쥐새끼가.”
“왕이라….”
뱃사공이 비웃었다.
“이 강 앞에서는, 황제도 필부도 모두 그저 길 잃은 망자일 뿐.”
“네놈의 아비 또한, 아주 훌륭한 ‘뱃삯’이 되었지. 그 필부의 기억은, 유난히 슬픔의 맛이 깊더구나.”
그의 말이 끝나자, 뱃사공의 등 뒤, 검은 강물 속에서 수십 개의 하얀 손들이 솟아 나왔다. 그것은 왕에게 아비의 마지막 기억을 보여주었던, 바로 그 원혼들이었다. 그들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왕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마치, 물귀신처럼 그를 강으로 끌어들이려는 듯이.
“이 천한 것들이…!”
왕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는 손을 들어, 검푸른 패기를 강물을 향해 쏘아 보냈다.
콰아아아-!
하지만 그의 힘은, 강물에 닿기도 전에 허공으로 스르르 흩어져 버렸다. 이곳은 그의 왕국이 아니었다. 모든 힘의 법칙이, 강의 주인을 위해 뒤틀려 있는, 뱃사공의 영역이었다.
“어리석긴.”
뱃사공이 삿갓 아래에서 조롱했다.
“이곳에서는, 너의 힘이 통하지 않는다. 왕의 권위는 땅 위에서나 통하는 법. 이 물속에서는, 오직 나의 규칙만이 존재할 뿐. 너 또한, 나의 강을 채우는 또 하나의 기억이 될 뿐이지.”
그가 긴 장대를 들어, 강물을 휘저었다. 그러자, 검은 강물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솟아올라, 수십 개의 거대한 촉수가 되어 세 사람을 덮쳐왔다. 촉수 끝에는, 강물 속 원혼들의 고통스러운 얼굴들이 떠올라 있었다. 피할 곳은 없었다. 이 강 자체가, 그들의 적이었다. 검은 촉수들이 비명을 지르며 쇄도했다. 수천 년간 이 강에 잠든 모든 슬픔과 절망이, 실체를 얻어 산 자를 탐했다. 끝부분에 맺힌 원혼들의 얼굴은 저마다 다른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왕은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자신의 힘이, 권능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에게 무엇보다 큰 치욕이었다. 그는 다시 한번 패기를 끌어모았지만, 그의 검푸른 기운은 마치 물에 먹물을 푸는 것처럼 허무하게 흩어져 버렸다. 이 공간의 법칙이 그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고 있었다.
“소용없어요!”
서화가 외쳤다. 그녀는 너덜너덜해진 팔의 고통을 참으며 품속을 뒤졌다.
“이곳의 ‘법칙’을 깨야 합니다! 힘이 아니라, 이치로 맞서야 해요!”
그녀는 작은 비단 주머니에서, 오래된 놋쇠 거울 하나를 꺼내 들었다. 손때가 묻어 가장자리는 닳아 있었지만, 거울 면은 기이할 정도로 맑았다.
‘명경(明鏡)’.
진실을 비추고, 허상을 가르는 파수꾼의 도구. 그녀는 부러지지 않은 손으로 거울을 들어, 쇄도하는 촉수들을 비췄다.
화악-!
거울에서 뿜어져 나온 맑은 빛이 촉수에 닿자, 치이익- 소리와 함께 촉수 끝에 맺혔던 원혼들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촉수는 잠시 주춤했을 뿐, 그 기세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젠장, 너무 많아…!”
“패턴이 있어!”
그때, 박종윤이 외쳤다. 그는 공포에 질려 있었지만, 그의 눈만큼은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저 촉수들… 전부가 아니야! 저기, 저기, 그리고 저기! 세 개의 촉수만 진짜야! 나머지는 그냥… 홀로그램 같은 거라고!”
그의 눈에는, 진짜 촉수 주변으로 미세하게 공간이 왜곡되는 ‘노이즈’가 보이고 있었다. 마치 데이터가 깨진 이미지처럼, 허상의 경계선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과학자의 눈이, 오히려 이 주술의 허점을 간파한 것이다. 그의 외침에, 왕의 비취색 눈동자가 번뜩였다.
‘진짜와 가짜라….’
그 순간, 왕의 의식 너머에서 한지운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기록… 이 강의 기록을 읽어야 해…. 저 자의 근원을 알아내야 해….’
왕은 짜증스럽게 혀를 찼지만, 지금은 그 하찮은 필부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신의 의식을, 이 거대한 망각의 강 속으로 던져 넣었다.
화아아악-!
수억 개의 기억이, 그의 정신을 덮쳤다. 전쟁터에서 죽어간 병사의 공포. 사랑하는 이를 잃은 여인의 슬픔. 굶주림에 지쳐 죽어간 아이의 원망. 모든 기억이 그를 집어삼키려 했다. 왕의 오만한 영혼마저 이 거대한 슬픔의 무게 앞에 휘청거렸다.
‘아니야… 더 깊이… 더 근원으로….’
지운의 의식은 필사적으로 버텼다. 그는 이 모든 기억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단 하나의 ‘기록’을 찾아 헤맸다. 뱃사공의 기억.
“찾았다.”
마침내, 그는 보았다. 수천 년 전, 이 강은 검지 않았다. 맑고 투명한, 생명의 강이었다. 그리고 뱃사공은, 사람이었다. 그는 이 강을 지키는 신관(神官)이었다. 하지만 역병이 돌고, 나라가 망하고, 그가 지키려 했던 모든 것이 죽어갔다. 절망 속에서, 그는 금지된 주술에 손을 댔다. 자신의 생명을 바쳐, 이 강에 죽은 자들의 기억을 가두고, 그들의 슬픔을 양분 삼아 영원히 이 강을 지배하는 존재가 되기로. 그는 스스로, 저승의 신이 되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 의식은 불완전했다. 그의 영혼은 강과 하나가 되었지만, 그의 육신은 이 나루터에 묶여버렸다. 그리고 그의 가장 큰 공포는.
‘자신이 가두어 둔 그 수많은 죽음들이, 언젠가 자신을 집어삼킬 것이라는 것.’
“서화 씨!”
지운이 눈을 뜨며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다시 한지운의 것이었다.
“그 거울! 촉수가 아니라, 강물 자체를 비춰요! 저놈은 이 강을 지배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강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 겁니다!”
서화는 그의 말을 믿었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명경을 검은 강물 수면으로 향했다.
“진실을 보여라!”
콰아아아아아아-!
거울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강물에 닿는 순간. 고요하던 수면이, 거대한 폭풍을 만난 것처럼 들끓기 시작했다. 강물 속에 잠들어 있던 수억 개의 원혼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솟구쳐 올랐다. 그들의 목표는 더 이상 세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가두고 있던 유일한 간수. 뱃사공을 향했다.
“크… 크아아아아!”
뱃사공이 처음으로, 당황을 넘어선 공포의 비명을 질렀다. 그를 덮치던 수십 개의 물 촉수가 방향을 바꿔, 그의 나룻배를 휘감기 시작했다. 강물 속에서 솟아 나온 수천, 수만 개의 하얀 손들이, 그의 몸을 붙잡고 물속으로 끌어당겼다.
“감히…! 이것들이…!”
“지금이다!”
왕이 포효했다. 그는 이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강의 법칙이 무너지고, 뱃사공이 자신의 피조물에게 공격당하는 순간. 그는 자신의 모든 패기를, 단 한 점에 응축했다. 그의 손끝에서, 검푸른 빛이 창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것은 강물이 아닌, 오직 뱃사공. 그 자신을 향했다.
콰르르르릉-!
검푸른 창이, 뱃사공의 몸을 정확히 꿰뚫었다.
“커헉…!”
그의 몸이 뒤로 크게 튕겨 나갔다. 머리를 가리고 있던 삿갓이 벗겨져,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 아래 감춰져 있던 뱃사공의 진짜 얼굴이. 세 사람의 눈앞에, 마침내 드러났다. 삿갓 아래에는, 얼굴이 없었다. 눈도, 코도, 입도 있어야 할 자리가, 마치 덜 마른 찰흙을 손가락으로 후벼 판 것처럼 매끈했다. 그곳은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공허이자, 수천 년의 절망을 먹고 벌어진 거대한 상처였다. 그 상처뿐인 얼굴 중앙의 찢어진 입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크아아아….”
그것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의 몸을 꿰뚫은 왕의 패기와, 그를 물고 늘어지는 수억 원혼들의 원념이 충돌하며 내는, 존재 자체가 붕괴하는 소음이었다. 뱃사공의 몸이, 검은 모래처럼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패배를 직감했다. 하지만 순순히 스러져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손에 쥔 긴 장대를 강바닥 깊숙이 찔러 넣었다.
“나의 강과… 함께… 모두… 잠들거라….”
쿠르르르르릉-!
그의 말이 끝나자, 동굴 전체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강바닥이 갈라지고, 그 틈으로 칠흑 같은 강물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천장의 종유석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뱃사공은, 이 저승의 강 자체를 무너뜨려, 모두를 함께 수장시키려 한 것이다.
“젠장, 동굴이 무너진다!”
박종윤이 외쳤다. 그들의 뒤, 인왕산의 우물로 통하던 푸른빛의 소용돌이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다, 이내 펑- 소리와 함께 닫혀버렸다. 유일하게 알고 있던 퇴로가 사라졌다.
“어리석은 놈.”
왕은 혀를 찼다. 그는 서화와 박종윤의 앞을 막아서며, 검푸른 기운으로 방어막을 펼쳤다. 쏟아지는 바위들이 방어막에 부딪혀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도 초조함이 서려 있었다. 이 공간 자체가 붕괴하는 것을, 그의 힘만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었다.
‘길… 다른 길이….’
지운의 의식이, 필사적으로 활로를 찾았다. 그의 눈에, 부서져 가는 뱃사공의 형상이 들어왔다. 그의 몸은 거의 다 사라지고, 희미한 인간의 형태만이 남아 있었다. 수천 년 전, 절망했던 신관(神官)의 마지막 모습. 그리고 그의 심장이 있던 자리에서, 다른 모든 것과는 달리 조금도 바스러지지 않는, 작은 빛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다.
“저기!”
지운이 소리쳤다.
“저 빛!”
왕은 그의 의도를 즉시 알아차렸다. 그는 방어막을 유지한 채, 남은 한 손을 뻗었다. 검푸른 기운이 뱀처럼 날아가, 뱃사공의 마지막 남은 잔해를 휘감아, 그 안의 빛을 낚아챘다.
촤악-
왕의 손아귀에 들어온 것은, 손바닥만 한 검은 옥 거북(玉龜)이었다. 그것은 뱃사공이 신관이었을 때 사용하던, 물길을 다스리는 신물(神物)이었다. 그의 타락과 함께 힘을 잃고 잠들어 있었지만, 그의 소멸과 함께 다시 희미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옥 거북은 왕의 손바닥 위에서,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한 방향을 가리켰다. 무너지는 동굴의 벽. 아무것도 없는 그곳을 향해.
“저쪽이다!”
왕은 두 사람을 이끌고, 거북이가 가리키는 벽을 향해 달려갔다. 그들이 벽에 닿기 직전, 거대한 바위가 천장에서 떨어져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비켜라!”
왕이 포효하며 바위를 향해 패기를 쏘아 보냈지만,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산군의 힘이 깃든, 이 동굴의 주춧돌이었다.
“내가 할게요!”
서화가 외쳤다. 그녀는 부러진 팔의 고통을 참으며, 왕의 손에 들린 옥 거북을 향해 자신의 검게 변한 팔을 뻗었다. 파수꾼의 피와, 왕의 독이 뒤섞인 그녀의 힘이, 옥 거북에 흘러 들어갔다.
“물의 길은, 물로 여는 법.”
그녀가 읊조렸다.
화아아아-!
옥 거북이 눈부신 푸른빛을 발했다. 빛은 바위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러자, 단단했던 바위가 마치 물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새로운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또 다른 ‘길’이었다.
“가자!”
왕이 가장 먼저, 망설임 없이 소용돌이 속으로 몸을 던졌다. 서화와 박종윤이 그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자, 소용돌이는 이내 닫혔고, 바위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콰과과과과과과광-!
그리고, 거대한 동굴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수천 년간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존재했던 황천의 나루터는, 그렇게 지도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첨벙!
세 사람의 몸이, 차갑고 더러운 물속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콜록! 켁!”
지운은 허우적거리며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지독한 하수구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들은 더 이상 저승의 강에 있지 않았다. 희미한 불빛이 비치는 곳으로 헤엄쳐 가자, 낡은 콘크리트 바닥이 나타났다. 그들은 서울의 어느 낡고, 버려진 지하 하수 처리장에 있었다. 뱃사공의 강과, 도시의 가장 더러운 물길이. 아주 오래전에는, 하나로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살았…나….”
박종윤이 바닥에 대자로 뻗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서화 역시, 마지막 힘을 다한 듯 벽에 기댄 채 미동도 없었다. 왕은, 아니 지운은, 젖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손에는, 빛을 잃은 검은 옥 거북이 들려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왕의 힘은 여전히 그의 안에 있었지만, 이전처럼 날뛰지는 않았다. 뱃사공과의 싸움, 그리고 지운 자신의 저항으로, 힘의 균형이 미묘하게 변해 있었다.
그때, 박종윤의 주머니에서 -지지직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방수팩에 넣어두었던 것은 단순한 무전기가 아니었다. 모든 종류의 전파를 수신하고 해독할 수 있도록, 그가 직접 만든 비상 통신 단말기였다. 그는 필사적으로 안테나를 세워, 외부의 신호를 잡으려 했다.
“…서울 전역, 원인 불명의 대규모 정전 사태 발생… 지지직… 방송 시스템 일부 마비….”
“……주요 도로에서 동시다발적 연쇄 추돌… 통신 장애로 구조 지연….”
단말기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경찰 무전이 아니었다. 그것은 재난 상황에서 송출되는, 긴급 방송 채널의 단편적인 소음이었다. 수십 개의 채널에서, 비슷한 내용의 절망적인 소식들이 뒤섞여 들려왔다. 박종윤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단말기를 조작해, 가장 신호가 강한 뉴스 채널 하나에 주파수를 고정했다. 앵커의 목소리는 공포로 떨리고 있었다.
“…지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서울 상공에… 마치 오로라 같은 기이한 빛이… 전문가들은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아, 지금 속보입니다! 한강 다리 곳곳에서… 사람들이… 사람들이 강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제보가….”
“세상이….”
박종윤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세상이, 미쳐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