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페이지 분량의 위용을 자랑하는 이 작품은 부덴브로크 가문의 4세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덴브로크가는 군수물자에서 시작하여 성실과 근면의 시민정신으로 집안을 일으킨 명망 있는 상인가문이다.
그들은 사랑보다는 가문과 회사에 이익이 되는 결혼을 선택하고 예술이나 꿈보다는 현실의 부를 추구한다. 이 현실과 이상의 대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은 3세대 토마스와 4세대 토마스의 아들 하노라고 할 수 있다.
토마스에게는 일종의 강박이 있는데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가문의 수문장이라는 역할 이외의 다른 길은 보지 못하도록 자신을 채찍질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는 이러한 방식(시민정신을 강조하는)으로 부와 함께 시의원이라는 권력도 손에 넣었기에 그에 반해 음악에 탐닉하는 그의 아들, 하노의 유약한 기질과 게으른 천성을 싫어한다. 반면 하노는 그의 아버지의 사회적 위선과 가면을 간파하였으므로 이 두 부자의 상성은 그야말로 최악인 셈이다.
그러나 이토록 다른 그 둘에게 공통된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죽음이다. 죽음은 이 둘에게 돌연히 찾아온다. 토마스는 '내리막길'을 향하고 있는 가문의 운명을 인지하였으나 유약하고 현실적이지 못한 아들에게 가문의 회생을 기대할 수 없음을 받아들인다. 발치로 인한 고통으로 괴로워하던 그는(우리 현대문학 <오발탄>이 떠오르기도 하는 대목이다.) 역시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져 얼굴을 부딪쳐 죽고 만다. 사는 내내 청결과 깔끔의 강박을 보였던 그였건만, 진창에 코를 박고 지저분하고 처참한 몰골로 죽게 된 것이다.
하노 역시 티푸스를 앓다 죽게 되는데 이것은 신열로 꿈과 환상 속을 헤매다 삶에서 도망치는 예술가의 말로를 보여주는 것과 같은 죽음이다. 현실에의 혐오와 예술에로의 열망, 이 둘의 화학작용이 불러일으킨 (하노로서는) 당연한 결과랄까.
이 두 부자의 죽음으로 부덴브로크가의 몰락이 완성된다. 이 가문의 몰락은 성공과 동시에 예견되었던 것으로, 넓게 보아 인간사의 흥망성쇠를 보여준다. 현실을 좇든, 이상을 좇든 인간은 몰락, 다시 말하면 죽음을 향해 달리는 길 위에 있다. 토마스와 하노의 결말이 그러했듯, 어떻게 죽을 지도 선택할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에게 남은 것은 우연한 죽음과 맞닥뜨리기 전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토마스 만이 보여주는 독일식 현실과 이상 절망편은 다소 이분법적인 세계관이다. 그의 세계에서 현실과 이상은 물과 기름마냥 절대 섞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세계에서 그와 달리 좀 더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토니의 초긍정과 크리스찬의 고상함, 클라라의 신실함을 섞는다던지, 토마스의 성실함과 하노와 게르다의 예술성을 적절하게 분배한다던지.
우리의 세계는 토마스 만의 세계보다 확장될 수 있고 행복의 가짓수 또한 늘어날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의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으나 최소한 어떻게 살 것인지는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