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_임선우, 위즈덤하우스
매우 짧은 글인데 기억에 남는 문장들은 길다. <유령의 마음으로>의 임선우 작가의 작품으로 특유의 따뜻하고 감성충만한 분위기의 글. 모든 것을 비우고 가구로, 사물로 살았던 인간에게 다가온 엉뚱한 인연. 지금 좌절하고 있다면 이 책을 만나보십셔, 혹여 당신이 고양이 집사라면 필독. 무지갯빛으로 휘황찬란하게 빛날 미래의 어느 날을 고대하게 될 겁니다. 그 때에 또 우린 만나게 될 테니까요.
우리는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자유로워, 그리고 너는 사랑스럽지. 가로등이 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 내 머리에 환한 빛을 너는 찾아낼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때 다시 만나.
"고양이들이 영역동물인 이유는 지난 생에 만났던 소중한 존재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야. 한 번의 생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지만,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마음은 무한하니까. 그러니 다시 태어나서도 그 고양이의 영역을 찾아가던가, 아니면 내가 있던 영역에서 기다리는 거야. 서로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순간 다시 만날 확률은 극히 낮아질 테니까."p.36
"가로등이 된다는 것은 오래도록 견디는 일. 낮에는 무용함을 견디고 밤에는 피로를 견뎌야 해. 주변이 밝아지면 어두워지고, 어두워지면 홀로 밝아져야 해.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고 어둠 속에서 집요하게 빛을 상상하는 것이 좋아. 모든 기운을 위로 끌어올린다면 한밤중 머리에 환한 불이 켜지는 순간이 마침내 찾아올 거야."p.44
"지난 생의 연에 매달리는 것은 나무가 자신을 스쳐 간 수천의 바람 중 하나를 떠올리는 일, 호수가자신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은 하나의 돌멩이를 좇는 일이라고. 그렇지만 나는 기억해 낼 수 있어. 나를 전부 뒤바꿔놓은 한 줄기의 바람, 하나의 돌멩이를 나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어. 그 바람이 아니라면, 그 돌멩이가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p.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