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구멍

<홀(The hole)>_편혜영, 문학과지성사

by 피킨무무






잘 나가던 그에게 예고 없이 갑자기 들이닥친 불운의 사고. 이것은 이 사고로 인해 아내를 잃고 자신 역시 죽음의 문턱까지 굴러 떨어졌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은 오기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상상한 적도 없는 어둠의 구멍 속으로 떨어진 그의 막막한 처지 묘사가 실로 암울하여 살아남았다는 것이 그에게 있어 행운인지 불운인지 알 수 없다. 하여 이 이야기가 인간의 실존에 대한 사유에 관한 것인가 했는데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장모가 그의 보호자가 되면서 작품은 점차 스릴러에 가깝게 변모한다.


흥미로운 전개와 더불어 뼈를 쾅쾅 때리고 상처를 후벼 파는 것만 같은 문장이 결합되어 매우 음울하면서도 어두운, 묘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분명 너무 재밌는데 문장이 하도 무거워서 후루룩 읽혀지는 것이 아니라 결말을 향해 피를 뚝뚝 흘리며 가까스로 걸어간달까. 어쨌든 독보적인 분위기가 아주 맘에 들었단 말.


"오기가 생각하기에 죄와 잘 어울린다는 것만큼 사십 대를 제대로 정의 내리는 것은 없었다. 사십 대야말로 죄를 지을 조건을 갖추는 시기였다. 그 조건이란 두 가지였다. 너무 많이 가졌거나 가진 게 아예 없거나. 즉 사십 대는 권력이나 박탈감, 분노 때문에 쉽게 죄를 지었다. 권력을 가진 자는 오만해서 손쉽게 악행을 저지른다. 분노나 박탈감은 곧잘 자존심을 건드리고 비굴함을 느끼게 하고 참을성을 빼앗고 자신의 행동을 쉽게 정의감으로 포장하게 만든다. 힘을 악용하는 경우라면 속물일 테고 분노 때문이라면 잉여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십 대는 이전까지의 삶의 결과를 보여주는 시기였다. 또한 이후의 삶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영영 속물로 살지, 잉여로 남을지."p.78


"오기의 부상은 세상에 어떤 교란도 일으키지 못했다. 날마다 침대에 누워 오줌을 싸고 땀을 흘리며 실변을 누고 욕창을 염려하고 실제로 욕창을 앓고 약에 취해 계속 졸면서 기껏해야 천장이나 들여다보며 허송하는 건 오기뿐이었다. 그들의 삶에는 느닷없는 교통사고도, 그로 인한 장애도 결코 없을 것이다. 하필 오기에게만 그런 일이 닥쳤다. 오기의 세상만 무너졌고, 오기의 삶만 갈가리 찢어졌다."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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