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쇠약사를 바랍니다
<개인적인 체험>_오에 겐자부로
"느닷없이 버드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폴리네르처럼 머리에 붕대를 감고, 라는 이미지가 버드의 감정을 단번에 단순화하여 방향을 지워 준 것이다. 버드는 센티멘털로 질척 질척해진 자신이 허용되고 정당화되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눈물에서 단맛조차 발견했다."p.48
"글쎄, 태어나지 않는 것보다 태어나는 편이 좋은 건지 어떤지 확실히 알 수 없는 시대니까."p.63
'버드'라는 깜찍한 별명으로 불리는, 스물 일곱 해 하고도 4개월을 살아온 청년이 첫아들의 탄생을 복잡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긴 기다림 끝에 그의 첫아들은 뇌의 일부가 외부로 빠져나온, 뇌 헤르니아라는 장애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 살 가능성도 희박하거니와 수술이 잘 되더라도 세상의 그 어떤 감각도 느끼지 못할 "식물적인 존재"p.47로서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의사의 선고를 들은 어린 아버지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실제로 오에 겐자부로의 첫아들이 비슷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니 이는 작가의 진정한 '개인적인 체험'이라 할 수 있겠다. 작 중 히미코가 말하는 '다원적인 우주론'(요샛말로 멀티버스)을 이용하여 작가는 다원적인 작품 세계를 만들어낸다. 결말에서 장애아를 살리는 결심을 하는 <개인적인 체험>과 의사의 오진으로 장애를 판정받아 아이를 죽인 D의 이야기, <공중괴물 아구이>는 동일한 상황에서 다른 결정으로 인한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이런 독특한 작품 세계들은 작가 개인의 사적 치유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감히 나는 평생 자라지 않는 아이를 품고 키워내는 삶을 상상할 수가 없다. 내 아이의 쇠약사를 알릴, 병원에서의 전화 한 통만을 기다리는 버드의 극한의 절망과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해한 인생의 고통과 그 고통과의 영적싸움을 계속하는 인간에게 "희망"p.219과 "인내"p.276 를 역설하는 이 작품이 수작이라는 것은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