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한하고 발랄한 페미니즘

<가녀장의 시대>_이슬아

by 피킨무무


명랑하고 가볍게 가부장적 사고체계를 뿌셔뿌셔~>_< 하고 있는 이모티콘이 생각나는 소설이다. 페미니즘 하면 왠지 날카롭거나 뾰족할 것 같은 편견(네네, 편견이죠, 편견)을 깨부수고 에세이와 소설 그 중간에서 쾌활하면서 심드렁하게 웃긴달까.



낮잠출판사의 사장님이자 소설가 슬아는 엄마 복희와 아빠 웅을 직원으로 고용한다. 가사와 자잘한 대외업무를 모부직원에게 일임한 그녀는 고용주로서 그들에게 노동에 대한 임금을 재화로 꼬박꼬박 지급함으로써 그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인 셈이다. 바야흐로 가부(아비)장이 아니라 가녀(딸, 계집)장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할아버지가 근엄하게 해설했고 그것은 가부장의 말이었다. 감히 내 말을 부정하는 것이냐는 질문과도 같았다. 말은 우리를 '마치 ~인 듯' 살게 만든다. 언어란 질서이자 권위이기 때문이다. 권위를 잘 믿는 이들은 쉽게 속는 자들이기도 하다. 웬만해선 속지 않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속지 않는 자들은 필연적으로 방황하게 된다. 세계를 송두리째로 이상하게 여기고 만다."



가부장적 권위가 실린 말을 태어나면서부터 들으며 살아온 대한민국의 여성들은 선택해야 한다, 속을까, 말까. 체제에 녹아들까, 겉돌까.



"자신에 관한 긴 글을 듣자 오랜 서러움이 조금은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슬아의 해설과 함께 어떤 시간이 보기 좋게 떠나갔다. 이야기가 된다는 건 멀어지는 것이구나. 존자는 앉은 채로 어렴풋이 깨달았다. 실바람 같은 자유가 존자의 가슴에 깃들었다. 멀어져야만 얻게 되는 자유였다. 고정된 기억들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p.109



가부장적 가치관이 굳건했던 세계에서 노동의 가치를 어떤 식으로든 환원치 못하고 희생당했던 여성의 어떤 순간이 손녀의 글을 통해 객관화되는 순간 해방감을 느끼는 장면은 따뜻하면서도 목가적이기까지.



직접적이면서도 쾌활하게, 이런 이상하고 발랄한 페미니즘 소설은 반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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