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손 끝과 머리맡을 떠나지 않을 시취에 비하면 그나마 덜 직접적이고 비구체적이며 이름 붙이기엔 어려운 지금의 불가해한 감정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모를 삶의 지표면 아래서 내내 여진으로 맴돌아, 그것이 비록 산사태를 일으키거나 교각을 깎지는 못할 테지만, 최소한 마지막 숨을 쉴 때 찾아오는 완전한 적막 안에서 자신의 탄착점을 찾으리라는 것을."p.91
구병모 작가의 장점은 이런 거다. 한 문장 안에 쉼표가 세 개나 들어가더라도 할 말 꾹꾹 눌러 담아 온전하고 적확하게 전달하는 것.
아주 짧은 단편인데 읽다 보면 이게 메인 스토리가 아니라 프리퀄 혹은 번외 편이라는 걸 바로 느낄 수 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파과>라는 작품 속 주인공의 옛 사정이라는데 이게 바로 본편을 부르는 번외 편이라 할 수 있겠다. 나로서는 거꾸로 된 순서로 읽은 셈인데 기대되는 작품이 생겼다는 장점으로 소화하련다, 룰루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