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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킨무무 Nov 03. 2023

너와 나 사이, 미세하고 미묘한 균열

<각각의 계절>_권여선






"어디로 들어와?

어디로든 들어와.

어디로 들어와 이렇게 갇혔어?

어디로든 들어와 이렇게 갇혔어. 어디로든 나갈 수가 없어. 어디로든..."_<사슴벌레식 문답>


"참 고귀하지를 않다, 전혀 고귀하지 구나 우리는... " _<하늘 높이 아름답게>


"그때 우리는 젊었으며... 두렵고 또 두려웠지. 현수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가끔 그 말이 떨쳐지지 않는 주문처럼 소미의 머릿속을 맴돈다. 그때 우리는 젊었으며...현수가 그때는 그때가 아니었지만, 자신들이 다시 만났던 그때가 그래도 자신들이 마지막으로 젊었던 시절이었다는 것을 이제 소미는 안다. 그래서 여전히 두렵고 또 두려웠다는 것을. 그래서 그렇게 많이 웃고 죽자고 담배를 피워대고 겁없이 땅을 사고 했다는 것을."_<무구>


"그는 자신이 가까운 이에게 그런 분노를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알았다면 그렇게 했겠는가. 무지는 가장 공격받기 쉬운 대상이지만, 무지한 자는 공격 앞에서 두려워 떨 뿐 무지하여 자기 죄를 알지 못하므로 제대로 변명조차 할 수 없다. 차라리 자신이 딸이었다면. 모든 걸 희생하고 차별받고 살아온 그런 존재였다면 오숙처럼 무섭게 돌변할 기회라도 있었으련만. 그는 한없이 억울했고 뭔지 모를 감정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_<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


<사슴벌레식 문답>이 김승옥 문학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작품을 포함한 작가의 단편 여섯 작품을 함께 실은 이 단편집을 굉장히 귀하게 읽었다. 의외로 기대했던 <사슴벌레식 문답>보다는 같이 실린 다른 작품들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아주 미세한 균열이나 미묘한 까슬거림을 조심스레 훑는듯한 부드럽고 포곤한 문체가 특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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