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을 하면서 가장 익숙해진 것 중 하나가 식당에 들어가서 혼자 밥을 먹는 것이었다. 사실 혼자 바에 가서 술도 잘만 마시면서 그게 뭐 대수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진 바(bar)에서의 혼술보단 식당에서의 혼밥이 훨씬 더 낯설고 어렵다. 그래도 여행 중반 즘 되니, 어지간한 식당에는 혼자 서슴없이 들어가서 코스요리까지도 주문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정말 웃긴 건, 한국에 돌아오자 이 혼밥력은 고스란히 원래 수준으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아무튼, 스페인에서는 유독 이 혼밥력이 많이 성장했는데 이는 다름 아니라 타파스(Tapas)라는 음식과 까바(Cava) 때문이었다.
하몽과 감자와 계란을 함께 볶음 스크램블, 그리고 까바 한잔
바르셀로나의 햇볕은 피부가 타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강렬했다. 본디 이런 날씨엔 노상에 까는 시원한 캔맥주가 제격이겠으나, 이곳은 스페인이니 현지식으로 까바(Cava)를 즐겨보기로 마음먹었다. 앞서 혼밥력이 많이 늘었다고 이야기했는데, 사실 스페인에서 혼밥을 많이 했다기보다는 혼타파(Tapa)를 자주 즐겼다. 바르셀로나의 건축물들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다가 명절날 전 집어먹듯이, 배고프면 근처 식당에 들어가 타파스와 까바를 시켜서 더위를 피하곤 했다.
그냥 눈에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서 주문했던 타파스. 토마토가 아주 싱싱해서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타파스는 원래 애피타이저 같은 한입거리, 전채요리를 통칭한다. 보통 바게트 위에 이것저것 얹혀 있는 형태이지만, 꼭 바게트와 함께가 아니더라도 가볍게 집어먹을만한 요리를 통칭해서 타파스라고 부르곤 한다. 사진을 보면 절대 많은 양은 아니지만, 이게 또 주섬주섬 먹다 보면 은근히 배가 부르다.
타파스만큼이나 스페인에서 대표적인 것이 또 이 까바(Cava)라고 부르는 와인이다. 까바는 샴페인과 같은 방식으로 스페인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까바라고 부른다. 물론 똑같은 맛은 아니지만, 공법이 비슷한만큼 비슷한 캐릭터도 느껴볼 수 있지만 가격은 훨씬 더 저렴하다. 근처 대형마트만 가봐도 1~2만 원대에 쉽게 구할 수 있는 까바들도 많으니, 현지에서는 정말 맥주보다도 저렴한 가격으로 까바를 벌컥벌컥 마실 수 있다. 보통은 더운 날씨에 맥주를 많이들 선호하겠지만, 한 번 즘은 시원하게 칠링 된 까바 한 병을 시도해보길 권하고 싶다.
가우디의 유명한 건축물들을 구경하다가, 아는 분께 추천받은 Monvinic이라는 와인 바로 향했다. 규모가 상당히 큰 와인 바였는데, 인상적이었던 것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와인 셀러였다. 나는 들어가 보질 못해서 멀찌감치서 입 떡 벌리고 구경만 했는데, 훗날 바르셀로나로 여행 온 친구가 셀러에서 찍은 사진을 자랑할 땐 조금 배가 아팠다. 아무튼, 바에 앉으니 스토퍼로 닫혀 있는 정말 다양한 와인들이 눈에 띄었다. (아래 사진에서 오른쪽) 메뉴판 대신에 태블릿에 현재 주문 가능한 글라스 와인 목록과 간단한 소개글이 정리되어 있었다.
까탈루냐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몽비닉(Monvinic)... 지금은 검색해보니 폐업했다...
저번에 빈티지 포트와인에 대해서 소개했었는데, 까바나 샴페인 같은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빈티지가 붙어있지 않다. 이런 와인들은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여러 해의 원액을 섞어서 와인을 만들어 팔기 때문이다. 그래서 빈티지가 붙어있는 까바나 샴페인을 마셔볼 기회가 있다면, 꼭 마셔보길 권하고 싶지만... 당연히 글라스로 파는 곳도 별로 없을뿐더러 비싸기도 어마어마하게 비싸다 (까바는 그나마 괜찮은 가격이다). 마침 이 바에서는 빈티지 까바를 글라스로 팔고 있기에 날름 주문했다. 역시 여행을 왔을 때는 현지에서 만들고 파는 술을 찾아야 한다.
종종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세상에 얼마나 알려졌는지에 놀라곤 한다. 스페인의 와인 바에서, 소믈리에가 자기 한국음식 좋아한단 소리를 할 줄 누가 알았겠나. 듣자 하니 한식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좀 했었다고 하는데, 덕분에 이런저런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몇 가지 와인들을 편하게 맛봤다. 혼자 여행을 하던 중에는 이렇게 여러 와인들을 맛볼 수 있게 준비된 와인 바와, 나의 원산지를 알아봐 주는 바텐더나 소믈리에가 있는 바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어찌 지나치겠나, 유명 관광지보다도 나는 술병이 쌓여 있는 곳만 보면 기웃기웃거리다 일단 들어가 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