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 價値 진짜 가치있는 것이란 무엇일까?

현대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일까? 그것을 구하는건 무슨 의미일까?

*첨부된 글 (하늘색)을 누르면 그것과 관련된 글로 넘어갑니다.

요즘 시대는 여행의 경험에 의의를 느끼는 시대다.


어딘가에 가서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 돈을 투자한다. 현재도 과거도 그러한 경험은 늘 중요시되어왔다. 주말이고 사람을 만나고 경험에 시간을 붓는 것.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맛있는 음식의 사진도 꼭 챙겨서 찍고, 자신의 젊음도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

하지만 그 경험들은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을까?

인간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자극은 존재할까?


변화. 변화한 사람들, 큰 기업가들의 이야기와 삶을 보면, 의외로 검소하다 못해 평범하고, 반복의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미국의 사업가이자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인물, 록펠러부터 시작하여 일론 머스크, 페이스북의 마크 주크버그.. 그런 삶을 살아간 이름들이 너무 많다.


건강한 삶의 모습은 의외로 꾸준함과 연속성이 항상 전제된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러므로 탁월함은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


라고 한다.


과연 나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이 글을 쓰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사실 늘 생각해야 할 항목이다.


때로 나는 나의 꿈을 사람들과 실컷 떠들어놓고는, 정작 살아내지 못할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을 볼 때도 많고 말이다. 이야기를 하고, 열심히 한다는 각오의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도 잘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계획이라도 일단 거창하게 잡는게 사람의 바램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이론이 아닌 실천 _ 그러니 그 존재 자체인 것 같다. 그러나 겉의 모습의 바삭한 모습을 따르기 쉬운 것이 인간이다.


대단해 보이고,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을

늘 쫓는다.

1년이 지나면 지나갈 유행도 지금 보기에 아름다우니

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튀김만 입힌 종이쪼가리 같이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무엇을 쫓아 살아야 할까?


영향을 주며 살아가는 사람


인간은 영향을 주며 살아간다 _ 모든 인간은 영향력을 원한다. 실제로도 삶에 영향을 가지고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유익하다. 그 효능은 우울증을 낮출 정도다. 하지만 나쁜, 더러운 영향을 다른 사람에게 끼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특별한 동기가 있는 이상) 그렇다면 과연 좋은 영향이란 과연 무엇일까?


모두가 나를 우러러보고 최고가 되는 것이 답일까?


'사람은 누구를 닮고 싶어 하는가 ‘


나는 요즘 말을 잘한다는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듣는다. 처음 보는 사람, 오랜만에 맞이하는 사람이면 더더욱 나에게 많은 고민을 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는 경향이 요즘 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를 움직이는 것은 같잖은 말 실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누군가의 삶을 움직이는 메시지는 자신의 입으로 말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말하지 않고 그 모습으로 살아갈 때 그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게 되는 것 같다. 살아가는 모습은 진짜다. 누군가가 낮은 자세로 섬길 때 그것을 보고 우리는 큰 사람이라고 여긴다. 실제로 넬슨 만델라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섬기는 자세를 진정한 리더십이라 정의했다.


섬기는 사람은 항상 자신의 존재 그 이상이다.

하지만 그는 전혀 대단한 사람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큰 자는 오히려 작은 장소를 세밀하게 관리하는 인물이다. 책임의 태도 때문이다. 또 스스로를 낮출 줄 아는 지혜를 아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을 자랑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작은 곳에 기쁨을 두는 인물이다. 그는 남의 잘됨도 축복하고 즐거워하는 인물이다. 그는 약자를 위해 말하고 선다. 나의 마음을 누가 움직이는가? 무언가를 빌려주고, 언제 갚나 두고두고 보는 사람?

아니면, 상대방을 위해 넉넉한 신뢰를 주고 인내하는 사람인가?


모든 사람은 자비에 목마르다.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자는 오류를 즉각 즉각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삶을 살아가며, 나에게 축복을 부어주는 사람이다. 자신의 권력을 자신의 취미 같이 쓰는 사람이 아닌, 목적을 다해 섬기는 사람이다 스스로를 원하는 것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 성실과 근면의 자세로, 매일 아침 같은 하루를 반복하며, 매일 겸손히 깨어지기로 작정하는 사람 말이다.


그러한 사람은 소금과 같이 짠 존재일 것이다.


매일을 살아가고자 하는 다짐. 신실한 자세가 필요하다.

진정으로 단단한 도구, 잘 베어지는 칼은 무엇일까?

장인의 손에 더 많이쓰는 도는 무엇일까?


날카로운 단련된 칼은

무작정 베는 재미의 도가 아니다.

매일 단련하는 칼이다.

가장 날카로운 쓸만한 칼은 자세이자 삶의 태도이다.

그것이 진정한 강함이다.


하지만 나는 겉이 날렵하고 산만한 무질서를 강함이라고 한때 착각했다.

그렇게 애석하게도 내가 붙을 수 있는 강해 보이는 사람을 찾느라 나는 20대 초반을 썼다.


나의 외적 강함을 좇던 시절의 실수, 깨달음

젊었을 때 외면에 관심이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 카메라로 온갖 것을 찍었다. 개부터 시작해서, 레고 애니메이션, 내 몸. 그러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서는 조금 열정이 불타올랐다. 조금은 엇나간 방향으로.

나는 영향력이라는 키워드에 사로잡혀 내가 마치 기관단총과 같은 세련되고 날렵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힘과 강력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열정과 꿈이 있어 보이는 사람. 자유분방하고 늘 놀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 아름답고 부각되는 외모를 가진 사람 말이다. 예쁜 사람을 보며 나는 환호했었다. 대단하다고 그런 이들은 칭송하였고, 그게 자유라고 착각했다.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오늘 밤 늦게까지 대화해도 되는 자유.


나는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사랑일거라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삶을 살아가면서 배웠다. 여러 공동체를 옮겨 다니고, 미군교회부터 시작해, 작은 교회, 자유로운 곳 등 정말 손가락 갯수만큼이나 경험을 해보니, 그러한 겉만 날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일종의 결론에 다다랐다. 그것은 외면의 것에 가치를 두는 것보다 무책임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그들은 사실 가치에는 관심이 없다. 자신의 지금 느끼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고 또 믿는다. 다만 나는

자신을 꾸미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자신의 모습을 정돈하고 가꾸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외적인 가치만 강조하는 것이란 이와 같다. 자신이 땀 흘려 일하며 성실하고 건실한 자세 없이, 다른 사람의 돈, 즉 다른 사람의 수고롭게 일한 돈과 관심등을 값싸게 빼앗는 자세를 의미하는 것이다.


'재밌으면 된거지 뭐.'


일론 머스크는 여전히 출근을 두 회사로 하면서, 가끔씩은 회사를 위해서 밤새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고 한다.


그들은 왜 그럴까? 돈에 대한 야망?


이게 요즘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에 하나이다.

돈은 재미있는 것에 모인다. 하지만 그 진정한 가치에 대해 질문할 생각 마음의 여유는 없다. 일단 너무 바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자신 스스로 무엇이 좋은지에 대해 질문을 해야만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정의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그것을 역이용해, 당신을 사용할 것이다.


잠시 매춘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다.

매춘, 한국에도 있었고, 한국전쟁 당시에도 미군을 대상으로 흥행했다. 동남아의 나라 중에 경제가 그것에 의지하는 곳도 있다.

매춘은 몸을 파는 행위, 성의 목적으로,

상대방이 쾌락을 누리고 싶고, 돈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몸을 상대에게 내어주는 행위를 뜻한다.


자신을 함부로 여기는 것
나는 자신의 몸을 파는(매춘)과 같은 욕구적 행태보다, 자신의 몸과 삶을 함부로 여기는 행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애초에 돈이라는 것이 수고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라는 점을 잘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자립성을, 돈과 재정 앞에 팔고, 돈이라는 것을 첫 번째로 두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 돈은 무엇인가 한번 질문을 해보기를 바란다. 돈이란 누군가의 노력한 자산인가, 혹은 누군가의 쾌락을 위한 도구인가.

하지만 나는 매춘의 행위를 욕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사실은 그것을 소비하는 소비자도 말하고 싶다. 그들도 그들의 시간과 기회로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과 다를 것 없다. 자신의 돈과 시간을 그러한 콘텐츠에 쓰는 사람보다 자기 스스로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사람은 없다. (나도 정말 긴 세월 영상 중독자였다) 자신이 열심히 일해 노동한 수고로운 돈이 있지만, 그것을 자신에게 좋아 보이는 것에 쏟아붓는다. 하지만 그러한 도파민 터지는 행위들은 사실은 결실이 없다. 보통은 자신에게 해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담배만 생각해 봐도 그렇다. 나쁜 것을 알지만, 돈과 기회를 그곳에 붓는 것과 같다. 마음 아픈 일이다.

자신의 가치는 결국 자신에게 지금 주어진 시간과 자산을 어떻게 살아내는가를 보아야 한다. 나는 얼마나 나를 소중히 대하고, 나의 일상의 행복과 건강을 귀중하게 여기는지 질문해보아야 한다.


‘나의 돈과 시간은 어떻게 허비되고 있는가?'
'혹은 투자되고 있는가'


가치 있는 사람이란?

그 질문은 내가 누구인가를 증명하기도 한다. 나는 가치를 주는 사람인가?

가치는 번쩍이는 것에서 오지 않느다.

가치는 바로 희생에서 온다. 가치는 소비를 통해 내가 내 스스로의 왕이 되어, 나의 욕구를 조금이라도 더 자극하는 일이 아니다. 가치를 위해 희생하고 최선을 다해 경작하려는 자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주변에 셀럽들, 내가 동경하는 이들을 보면 사실 대부분 껍데기에 집중을 한다. 새로운 껍데기, new 껍데기, 탱탱한 껍데기, 젊은 껍데기. 하지만 나는 그 이면과 깊은 것을 알고자 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책임지는 리더는 사람들의 모순을 짚어내는 날렵한 사람이 아니다. 그게 지혜가 아니다.

예수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예수는 분명히 사람들에게 회개(죄로부터 돌이키라)와 같은 critical한 말을 하였다. 그런 말을 하였음에도 모순적으로 예수의 주변에는 새리와 창녀들이 모였다. 왜? 그의 용납하심(Grace)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난한 자들, 가난하고 궁핍한 마음을 가진 모두에게 초청권을 주었다.

이처럼 진정한 리더십은 '정답'을 재빠르게 말하는 자가 아니다. 오답을 범하는 자를 위해 용서하와 기다림의 싸움이다.

나도 여전히 그러한 진정성을 두고 씨름한다.


나는 과연 진정성 있는 사람인가?



세상의 번잡함 속 필요한 최종 가치

지금 현대 이 세상은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혹은 그릇된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을 안 한다. 아니, 진지한 고민도 별로이고, 그러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좀처럼 대화해 보기 쉽지 않다. 그리고 그 고민 많은 사람이 믿을만한 사람인지 의심부터 들기 시작한다. (나조차 의심한다.) 그냥 스트레스 받는다.

말할 수 있는 틈 자체가 거의 없다. 셀럽, 화장품, 옷, 트렌드, 음악 등. 변동되는 욕구의 꿈틀거리는 한국의 땅에서 나도 흐름을 잡기 위해서 민감하게 이슈를 보는 것뿐이다. 생각할 수 없게 번잡한 것들이 많은 시대와 같다.

정답은 피해 주지 않고 사는 것이라 정의를 내려버린 사회인 듯하다. 그렇게 계산이 완료되었다. 피해주지만 않고 소소하게 살자. 그러니 종교는 더더욱 별로이다. 남을 사랑하라고? 어림없는 소리.

차라리 그냥 시행 착오 속 내 스스로를 속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믿을 것이 되지도 않는다고 느껴진다. 차라리 속이고 안보이게 가리는게 낫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인간이 인간과의 관계 속에 어떻게 의로움을 찾을 수 있을까. 이러한 모호하다 못해 답을 내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인생에 원래 답은 없어.’라는 일종의 답을 내린다. 그리고 나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나의 감정에 집중을 한다. 뭐가 좋은 느낌을 주지, 뭐가 보기 좋아 보일까. 양상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그런 상황에서 뉴스는 더 혼돈스럽다.
그러한 상황에서 뉴스나 부각되는 것은 ‘돈'이나, 누가 더 부각되고 아름다운가 와 같은 ‘유명세’,
그리고 유명한 사람들이 그렇다 해서 의로운 것은 아니니 ‘깍아내리기’와 같은

분노와 비교의 혼돈이 모두 안에 내재되어 있다.


사람들은 갈 곳을 잃은 깨지고 깨지는 빙하 속에

차가운 바다를 표류하며

마침내 혼자가 되었다. (+스마트폰이랑 TV)


인생에서의 ‘가치'에 대한 질문을 내버려놓고, 자본과 소득을 첫 번째로 둔 인류의 모습은.. 결국 껍질 속에 스스로를 숨기게 되었다. 내 연약함, 내 아픔, 혹은 나의 추한 마음말이다.

나도 나의 그릇됨을 사람들에게 보이게 되면, 나도 같은 꼴을 당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미움받을 바에는 남들과 동일하게 Ctrl C 복사 Ctrl V 붙여 넣기를 하기를 원하는 것 아닐까?

가치 value.

전쟁이 재개되고 있는 나라들 사이에,

과연 전쟁은 옳은 것인가? 과연 정치는 옳은 것일까?

관세는 옳은 것일까?


이 모든 세상의 전쟁 속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으니, 인간 우리 모두는 자비와 은혜(grace) 바로 후한 대접과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선택이 아닌 필수와 같다. 우리는 불완전함, 불완벽함을 넘어선, 깨어진 존재, 구원자가 필요한 존재이다.

정말 진심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사람은 홀로 살수 없다.


그렇기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그것은 사실 가치 Value이다. 가치가 있는 일을 모색하고 좇는 것은 반드시 장려되어야 한다. 나의 가치의 충족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알아가는 삶의 여정 또한 필요하다.


앞으로의 글에서 더욱 이러한 내용에 대해 써 내려가보겠다. 신앙과 가치에 대한 고찰의 한 에피소드는 여기서 마치겠다.


*이 글을 like it 하는 것만으로 글을 쓰는 것을 이어가는 것에 도움이 됩니다.

* 일론 머스크는 여전히 출근을 두 회사로 하면서, 가끔씩은 회사를 위해서 밤새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고 한다. 그들은 왜 그럴까? 돈에 대한 야망? 나는 적어도 한가지 역할이라도 수행하고 싶은 마음에 그러한 자세로 글을 적는다. 언젠가 받은 은혜를 갚을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금요일 연재
이전 02화一 驕慢교만과 겸손